이스라엘 VS 실리콘밸리, 벽을 뚫을 때는 다른 무기가 필요하더라고요
2014년 09월 30일

미국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의 문제 해결방식을 재미있게 비교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신은 가전제품을 만드는 미국회사의 중역입니다. 시장조사팀에서 곧게 뻗은 바나나에 대한 수요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 이유인즉슨 미국인들은 바나나를 썰어서 샌드위치나 시리얼에 넣어서 먹기를 좋아하는데 곧게 뻗은 바나나라면 더 썰기 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미국과 이스라엘, 두 개의 연구개발팀을 통해서 이 문제 해결을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당신은 두 팀 대표를 불러 바나나를 넣었을 때 곧게 펴주는 기계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팀 대표는 곧장 실행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일단, 링크드인에 바나나 전문가를 찾는다며 구인공고를 냈습니다. 그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CalTech)에서 바나나의 분자구조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 엔지니어 2명과 산업 디자이너 한 명을 고용합니다. 그다음 24~30개월의 고된 노력 끝에 굽은 바나나를 넣었을 때 100% 확률로 바나나 곧게 펴내는, 아주 세련된 기계를 만들어냅니다. 이 기계는 300달러이며, 냉장고만큼의 전력을 필요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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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스라엘 팀 대표는 3분간 당신 이야기를 듣다가, 뭐 이런 멍청한 생각을 다했냐고 말 중간에 끼어듭니다. 그는 바나나를 썰어 먹는 사람을 여지껏 본 적이 없으며, 이스라엘 사람은 바나나를 그냥 까먹고 만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럴 바에야 차라리 바나나 껍질을 까주는 기계를 만드는 게 낫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논쟁이 번복된 긴 미팅 후에 당신은 포기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팀 대표는 집에 오면서 멍청한 아이디어지만 한번 시도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키부츠에서 바나나를 키우는 몇 명의 친구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다음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 1주일 안에 기계를 완성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11일 후 기계가 완성되었고, 데모를 선보이기로 했습니다. 기계는 우지 기관단총의 부품으로 만들었으며 13달러면 만들 수 있습니다. 위급할 때는 손전등으로도 쓸 수 있습니다. 기계의 외면은 작은 경운기와 흡사합니다. 곧게 펴진 바나나를 만들어내긴 하지만… 62.5%의 확률입니다. 37%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으깨지거나 구워져서 나옵니다. 반 정도는 신기하게도 감쪽같이 사라져버립니다. 당신이 이런 결함을 눈치챘을 때, 이스라엘 팀은 제품 요구 사항 문서에 모든 바나나를 완벽하게 펴야 한다고 기술되어있지 않았고, 처음부터 바나나를 편다는 것은 멍청한 생각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다시 돌아와 점차 불량률을 줄이는 기계를 제작해 내갑니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이스라엘 사람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원문)

"이스라엘 사람들은 뭐든 임기응변으로 잘해냅니다. 스스로 남들보다 좀 더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도와줍니다. 우리는 경비를 줄이고 바로 작업에 들어가는 것을 선호합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바로 말해버립니다. (비판을 들어 기분이 좋을 리는 없지만요.) 우리는 논쟁하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우리는 군대에 가서는 지휘관과 논쟁을 벌이고, 대학에 가서는 교수님과 논쟁을 벌이고, 직장에 가서는 상사와 논쟁을 벌입니다. 우리는 권력에 대해 “건강한” 무례를 범합니다. 우리는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고, 실력을 낭비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

실리콘밸리, 이스라엘의 벽

위의 이야기에서 이스라엘 사람은 인력공고가 필요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아는 사람을 고용하거나, 그래도 모르겠으면 아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되니까요. 이스라엘은 유대인 네트워크가 무척 크게 작용합니다. 8200, 탈피오트(Talpiot) 등의 엘리트 부대에서 만난 친구들(참고로 이 엘리트 부대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은 한국의 수능시험을 방불케 합니다), 이스라엘 최고의 공대인 테크니온(Technion)이나 텔아비브 대학교, IDC의 Zell 프로그램 등의 창업가 수업을 밟은 친구들이 모여 함께 사업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미 ‘유대인’으로 태어나, 함께 군 복무를 하고, 함께 수업을 받았다는 점에서 강력한 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은 사회 안에서 서로서로 알고 있습니다. 가령, 고작 7개월 이스라엘에 살았지만, 이스라엘 내에서 링크드인을 하다 보면 처음 만난 사람도 이미 2nd라고 표시되는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일찍이 작은 나라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인지 처음 만난 사람에게 열린 태도로 다가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함께 도전해나가는 데 집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새로 이 사회에 진입한 실력자라 하더라도 히브리어라는 장벽이 존재합니다. 비즈니스로는 늘 영어를 쓰지만, 이스라엘 사람들끼리는 히브리어로 대화해서 저절로 유대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경계가 만들어집니다.

미국의 경우, 전 세계에서 워낙 다양한 인종과 배경의 실력자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검증해나가는 것이 무척 중요해졌습니다. 공용어로 쓰이는 영어를 할 줄 알면 되고, 모두에게 부여된 기회 속에서 신용을 쌓아가는 것이 무척 중요해진 것입니다. 이 가운데 좋은 대학을 나오거나 과거의 경력 등을 확인하여 최고의 전문가를 데려오기 위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최고의 프로덕트를 만들기 위한 최고 전문가의 발굴. 자신이 찾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면 겉치레만 하다가 무참히 그 사람을 외면하는 일도 생깁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모든 이에게 동등하게 보여주는 친절한 태도, 그 태도를 넘어선 진짜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실리콘밸리에 온 지도 두 달이 지났습니다. 두 스타트업 생태계를 비교하자면 미국은 최고급 부품으로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 그리고 이스라엘은 손에 집히는 부품으로 돌아가는 작은 기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기계 속에 제가 부품으로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IMG_1500▲초기에 페이스북 메시지로 인터뷰 요청을 허락해준 멀티다인(MultiDine)의 이단 다돈(Idan Dadon)

첫 만남

이스라엘에서의 인터뷰는 정말 막무가내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대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이제 막 스타트업에서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한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테크블로그인 긱타임(Geektime)에 들어가, 최근에 기사가 나온 스타트업 순서대로 인터뷰 대상을 선정했습니다. 그다음 그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온 에바입니다. 한국의 테크블로그인 비석세스를 통해 인터뷰기를 올리고 싶습니다만 연락처 좀 알려주시겠어요?” 놀랍게도, 이 방법이 통했습니다. 인터뷰이 중에는 저에게 기사 링크를 요구하거나, 비석세스의 정보를 세세하게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대체로, 당장 만나고 보자는 투였습니다. 이메일을 보내면 대체로 하루 이틀 이내에 바로바로 답장이 날아왔습니다. 인터뷰 2시간 전에 없던 약속을 잡은 스타트업도 있을 정도니까요.

실리콘밸리에서는 좀 더 갈고닦은 솜씨를 필요로 했습니다. 이메일을 보내도 답장을 주지 않거나 1주일 후에 답장을 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규모가 더 큰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이메일을 보내서 그런 면도 있지만, 대체로 답장은 매우 느렸습니다. 정규 기자교육을 받지 않은 경우라면 인터뷰가 어렵다는 답장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Introduction의 중요성

이스라엘에서 막무가내로 페이스북 페이지에 메시지를 보내는 단계를 넘어서서 긱타임의 기자 아비 슈네이더(Avi Schneider)에게서 팁 한 가지를 전수받았습니다. 링크드인으로 친구신청을 하면서 인터뷰 요청을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이런 식으로 제 목적을 밝히면서 친구신청을 했을 때 대부분의 스타트업에서 흔쾌히 친구수락을 하며 답장으로 이메일을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경우에는 링크드인을 통한 접근이 어림도 없었습니다. 미팅을 전제로 한 친구신청이라도 직접 만나지 않은 사람은 링크드인으로 친구수락을 받아주는 경우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원하는 사람이나 조직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늘 아는 사람의 소개를 받아야 했습니다.

솔직한 피드백

스타트업을 하면서 매우 친한 이스라엘 친구에게 저희 서비스를 소개했습니다. 늘 개구쟁이 같은 친구였는데 서비스에 대한 비판은 정말 칼 같았습니다. 그 친구는 조목조목 이유를 대면서 저희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를 죄다 읊고 나서는, '이런 이유로 가입할 수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속상했지만 솔직하게 말해준 것이 나중에 가서는 고마웠습니다.

반면 실리콘밸리의 경우에는 서비스에 대해 ‘cool’이라고 말하면서 이야기를 들어주다가도 이후에는 반응이 없었습니다. 멘토나 직설적인 투자자가 아니고서야 서비스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듣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한 번은 제가 피칭한 서비스를 굉장히 칭찬한 사람이 있어서 다시 이메일로 팔로우업을 보냈는데 답장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이메일을 보내자, 우리 쪽에서 니즈가 없는 것 같아서 답장을 주지 않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방법론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중에 밋업(Meetup)을 통해 만난 이스라엘 사업가분이 그동안 제가 이메일을 통해 썼던 표현이 다소 이메일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 부적절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들었고, 대신 이런 표현을 쓰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었습니다.

IMG_4670▲샌프란시스코에서 아침운동을 하다가 만나게 된 IT컨설턴트 벳시

 인맥과 실력을 바탕으로 한 신용 사회에서 발견한 작은 통로

미국은 철저한 신용사회입니다. 한국과는 달리 신용 점수를 성실하게 쌓아야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는 까다로운 구조입니다. 실리콘밸리에 들어서는 수단 역시 신용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신용의 벽을 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지인을 통해 원하는 사람을 소개받는 것입니다. 둘째, 실력과 검증을 거쳐 누군가의 눈에 띄는 것입니다. 그 통로가 되는 것이 스타트업 피칭이 될 것 같습니다. 셋째는 다소 주관적일 수 있지만, 진심입니다.

미국 사람들과 친해지는 방법은 사업 이외의 자기 자신에게 충실히 하는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해두고 싶습니다. 첫 번째 예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내면서 등산을 했던 경험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모험이라는 다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밋업에서 16명이 참가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중 6명이 모두 각기 다른 스타트업 엔지니어였다는 것입니다. 취미로 시작한 등산이었는데 결국 이 친구들과 깊은 사업 이야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제가 만나게 된 벤처캐피탈리스트가 있습니다. 모두의 존경을 받는 그분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많은 사람이 그분 앞에 나와 자신을 소개하고, 그 분과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명함을 청했습니다. 그분은 친절하게 모든 사람들을 대하셨으나 명함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후 그분과 인터뷰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연설을 들으면서 궁금했던 것도 여쭤보고 조언도 청했습니다. 제가 무척 놀랐던 것은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나서 그분이 먼저 명함을 건네셨을 때였습니다.

셋째, 한 번은 아침에 산책을 나와, 혼자 벤치에 앉아있는 중년의 백인 여성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너무 수박 겉핥기식 네트워킹을 한 것 같아, 사람들이 무슨 일을 어떤 동기로 하는지 질문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처음에는 경계하시다가 이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분은 스타트업 컨설턴트였고, 나중에는 본인이 운영하는 밋업에 저를 초대해주셨습니다.

1년 동안 계속해서 명함을 돌리며 내 서비스와 나 자신을 똑똑히 소개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친구에게서 이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명함을 잔뜩 들고 와서 이벤트홀 모두에게 자신을 소개하려는 사람의 명함은 집에 와서 던져버려. 그 사람은 자신이 누구를 만났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거야.” 이 말을 듣고, 돌리는 명함의 양을 늘리는 것에만 급급하던 제 모습이 떠올라 무척 민망해졌습니다. 좋은 서비스나 실력으로 신용을 쌓기 전,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마주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공동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하물며 신용에서 信 (믿을 신)도 사람(人)의 말(言)은 믿을 만해야 한다는 의미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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