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관람가 68. ‘몬스터 콜’ – 나쁜 사람은 없고, 나쁜 상황만 있을 뿐
2017년 11월 10일

스포일러 있습니다.

돌아이 질량 보존의 법칙과 돌아이 육성이론

'돌아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란 우스개가 있죠. 어느 조직을 가도 일정만큼의 돌아이가 존재한다는 요지의 농담입니다. 법칙에 따르면 돌아이를 못 견뎌 회사를 옮겼을 때 그곳에도 또 돌아이가 있다고 합니다. 만약 강력한 돌아이가 없다면 덜 돌아이 여러 명이 그 총량을 맞춘다네요.

꾹 참고 버텨서 돌아이가 퇴사한다면? 그럼 해피할 것 같지만 곧 새로운 돌아이가 나타난다는 슬픈 시나리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침내 우리 주변에 아무 돌아이도 없는 것 같다면, 그땐 그게 자신이라는 반전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웃픈(웃기고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네요. 역시 우릴 지치게 하는 건 일 자체가 아니라 인간관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해보겠습니다. '돌아이 육성이론'입니다. 어느 집단의 돌아이 총량이 계속 보존된다면, 그 집단은 필연적으로 그만큼의 돌아이 역할이 필요한 조직일 수 있습니다. 싫든 좋든 누군가 악역을 맡지 않으면 원활히 유지되지 못하는 구조인 것이죠. 헉 이런 생각을 하다니... 혹시 제가 그 돌아이입니까? (편집자주: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영화 <몬스터콜>(A Monster Calls, 2016)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인간의 울퉁불퉁함을 비추는 영화입니다. 대형 주목나무 모습을 한 몬스터는 12시 7분마다 소년을 찾아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소년이라기엔 너무 성숙한, 어른이라기엔 너무 어린 코너(루이스 맥두걸)는 실의에 빠져있습니다.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엄마를 지켜보는 게 무섭고 괴롭습니다. 엄마 곁에서 코너를 데려가려는 할머니도, 보기만 하면 때리는 같은 반 아이들도 코너를 힘들게 합니다.

" 가지 이야기를 들려줄게. 그러고 나면 네가 4번째 이야기를 해야 . 마음 가장 깊은 곳의 진실을 말하면 ."

몬스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곤 세 편의 동화를 들려줍니다. 그 중 첫 이야기는 '왕자와 마녀'였습니다. 젊고 아름다운 마녀를 왕비로 맞은 늙은 왕이 죽습니다. 어린 왕자는 사랑하는 농부의 딸과 달아나지만, 곧 왕비의 손에 농부의 딸이 죽습니다. 왕자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은 횃불과 곡괭이를 들고 진격합니다. 왕비는 화형에 처하고 왕자는 왕이 됩니다.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농부의 딸을 죽인 건 왕비가 아니었습니다. 왕자였습니다. 왕위를 찬탈하려는 계략이었죠. 그렇게 왕이 된 왕자의 통치 아랫마을은 번영을 이룹니다. 왕자는 평화롭고 자비롭게 마을을 다스리며 죽는 날까지 시민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이야기죠. 몬스터가 소년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은 모두 그랬습니다. 결국엔 '인간이라는 그 복잡한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설화들이었습니다. 사람은 겨우 선과 악으로만 나뉘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넌지시 알려줍니다. 우리는 늘 좋은 사람도, 항상 나쁜 사람도 아니며 그 중간의 어디쯤 서성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늘 좋은 사람도, 항상 나쁜 사람도 아니다'라는 말은 곱씹어보게 됩니다. 그럼 그런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어느 조직에나 있다는 그 ‘나쁜 사람’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걸까요. 그게 아니면 어떤 '상황'이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걸까요.

나쁜 사람은 없고, 나쁜 상황만 있을 뿐

몬스터의 세 이야기가 끝나고, 마침내 소년은 자기 내면 깊숙한 이야기하게 됩니다.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이야기, 매일 밤 반복해서 꾸던 악몽을 이야기합니다. 끝내 말하지 않으려던 소년은 엉엉 울며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은 너무 괴로워서,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소년을 괴롭힌 건 스스로의 죄의식이었습니다. 등뼈가 앙상한 엄마를 지켜보는 일이, 헛된 희망을 품고 실망하는 일이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자신이었습니다. '나쁜 생각'을 하는 자신을 벌하고 싶은 마음에 같은 반 아이들한테 얻어맞을 일을 자꾸 만들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라도 자신을 벌주고 싶을 만큼, 그 마음 깊은 죄의식은 소년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몬스터’였습니다.

누구의 안에도 몬스터는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괴물은 아닙니다. 많은 경우에 나쁜 사람은 없고, 나쁜 상황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니 좀 너그러워지는 것도 그리 손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나도 은연중에 우리 스타트업 내의 돌아이를 만드는 일에 한몫하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이런 말을 한다고 제가 돌아이는 아닙니다. 진짜입니다. 믿어주세요.

 

 

영화 이미지 ⓒ Summit 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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