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태워버려라, 또 다른 창조를 욕망하게 될 것이다” – 버닝맨 페스티벌과 실리콘밸리의 파괴적 혁신
2014년 0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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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의 황량한 사막에 단 며칠 만에 도시가 세워진다. 수 만 명의 히피들이 모여, '공동 생산'의 규칙에 따라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며 눈을 감고 오토바이를 몰거나 나체로 거리를 활보한다. 해가 지면 몽환적인 음악과 함께 춤판이 벌어진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약물과 마약물은 물론 불법이지만, 이 축제 기간 동안은 할로윈 때 사탕 구하는 것만큼 쉽다고 한다. 참가자들은 코드가 맞고 취향이 비슷하면 함께 캠핑을 하며 일주일간의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남으면 나누고, 모자라면 얻는다. 필요한 물건을 얻을 때도 현금으로 구매하는 것보다는 가급적이면 물물교환이 권장된다. 서로 물건을 바꾸며 지급하고 연대한 것이 이곳의 특징이다.

뉴욕타임즈는 그 연대의 정신은 식사에서 시작하여 때때로 타액(키스)까지 이른다고 표현한 바 있다. '버닝맨 페스티벌(burning man festival)'은 매년 8월 월요일에서 9월 첫 월요일까지 일주일간 미국 네바다주 북부 블랙록 사막에서 28년째를 이어져 온 축제로, 축제 기간 중 토요일 밤 나무 인형 불태우는 의식으로부터 명칭이 유래됐다.

버닝맨 축제의 주요한 모티브 중 하나인 '각성(Awakening)'을 상징적으로 실천하는 행사의 마지막 토요일은 모든 것을 불태우는 날이다. 8일간 수백, 수천 달러를 들여, '공동 생산'한 공동작품과 구조물들을 불태우는 캠프파이어가 펼쳐진다. 이와 같은 버닝맨 축제의 제품이 아닌 경험을 창조하는 모티브, 죽여서 새로운 것을 생산해 낸다는 전복적(Disruptive) 민중 문화, 공유기반의 공동 생산(Common Based Peer Production)등의 특징들은 구글을 비롯하여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에게 서비스 설계 및 비전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직관을 제시한 바 있다.

구글 캠퍼스, 버닝맨의 모티브를 반영하다.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의 CEO 에릭슈미츠와 만나 도원결의를 한 계기가 바로 버닝맨 축제라는 사실도 재미있다. 에릭 슈미츠는 "우리는 놈(Norm, 규범)이 같지. 버닝맨에서 놀아 본 우린 베이베, 베이베, 뭘 좀 아는 놈(Man)"이라며, 놈의 라임에 맞추어, 즉흥적인 랩 가사를 창작하기도 했다고 한다.

손재권 매일 경제 기자의 '파괴자들(Disruptors)'에 따르면, 구글 캠퍼스는 일반인에게 알려진 놀이터라기 보다는 조각공원에 가까운 인상을 주는 데, 이는 두 창업자가 캠퍼스를 버닝맨의 현장처럼 만들고자 구상한 결과라고 한다. 프레드 터너 스탠퍼드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구글은 버닝맨을 문화 인프라스트럭처로 보고 있다. 회사를 형성하는 문화 인프라가 축제인 것이다. "라며, 버닝맨 축제의 모티브에 입각한 문화가 곧 인프라스트럭처가 되어 이하 물적 토대에 영향을 주고 이를 규정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적 관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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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맨의 프라야와 사용자 경험 

2013년 싸이는 뉴욕대학의 스턴스쿨에서 수여하는 트라이베카 필름 페스티벌 ‘디스럽티브 이노베이션 어워드’를 수여하며, 명실상부한 혁신가로 인정받았다. 그는 상을 받으며, “음….내가 잘생겨서가 아닐까요? 하하, 농담입니다. 누가 알겠어요?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수상한 본인은 정작 그 답을 모르고 있어 보이는, 싸이가 혁신하고 파괴한 것은 무엇일까?

손재권 기자의 ‘파괴자들(Disruptors)’에 따르면 싸이는 음악을 듣는 것, 보는 것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재정의했다. 1980년대 초, 마이클 잭슨이 <스릴러>라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연 것처럼 싸이는 2012년  ‘경험하는 음악’의 시대를 열었고, 유투브라는 미디어 채널과 빌보드가 이와 같은 시대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경험한다는 것은 참여한다는 것보다 적극적인 개념이다. 단순히 직접 뛰어들어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가져와 재창조하는 의미이다. <강남 스타일>의 수많은 패러디는 창작자의 것이지 싸이 본인만의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처럼 경험에 근거한 판단은 정보를 대체하고 넘어선다. 버닝맨 페스티벌의 마지막 행사, 프라야가 추구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은 '경험' 중심의 프레임이다. 버닝맨 행사가 남기는 것은  수 백, 수천만 달러의 구조물들이 아니라,  남김없이 불태우고 남은 희열과 또 다른 창조를 위한 욕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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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생산(Common based peer production)과 인터넷 경제의 원리  

"구글은 혁신을 창조하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창조적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뿐이다.” 구글이 공짜 점심을 주고, 회사 내에 의사와 세탁소, 볼링장, 수영장을 두고, 와이파이가 가능한 출퇴근 버스를 운영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어쩌면,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추구하는 것은 버닝맨의 축제 현장을 구글 캠퍼스의 일상으로 이식시키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공유기반의 공동생산 문화는 구글의 내부 구성원들을 위한 복지 차원을 넘어, 인터넷 경제의 원리와도 맞닿아 있다. 유저들이 만들어가는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시작하여, 새로운 기부모델인 크라우드 펀딩, 유저들의 인게이지먼트에 기반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까지, 구글은 공동생산에 의한 인터넷 경제의 원리에 충실한 오픈 소스를 위한 축제를 벌이며, 사업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최근, 몇몇 실리콘밸리의 거부 기업가들과 헐리웃 스타들이 몰려들면서 ‘호화캠핑촌’으로 변질된 버닝맨 페스티발을 비판한 바 있기도 하다. 하지만 버닝맨 페스티벌을 처음 열었던 하비는 본인이 보유하고 있는 블랙록 데저트의 지분을 팔고, 축제의 기획을 17명으로 구성된 비영리 재단 ‘버닝맨 프로젝트’에 맡겼다. 하비는 "버닝맨 페스티벌은 상품이 아닌 선물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함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글을 마치며, 필자는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의 문화의 원형과 DNA를 제시할 수 있는 축제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단순히 버닝맨 페스티벌과 실리콘벨리의 파괴적 혁신문화를 벤치마킹하는 수준을 넘어,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의 혁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를 열어가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몫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손재권 기자의 저서, 파괴자들(Disruptors)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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