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ki를 통해 보는 자막의 가치
2013년 02월 07일

비디오 서비스에 있어서 자막의 중요성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보통 자막은 이미도씨나 네이트 자막팀이 알아서 만들어주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사업자 입장에서도 부가적인 Cost Factor에 불과하기 때문에 최대한 저렴하게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비디오 서비스를 구현하는데 있어서 자막의 중요성은 생각보다 큽니다. 국내 컨텐츠만으로 국내에서 서비스하는 경우에는 자막이 필요없지만, 대부분의 컨텐츠 사업자가 컨텐츠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고 서비스들 역시 외국 컨텐츠를 함께 서비스하고 있기 때문에 자막에서 자유로운 Player는 거의 없습니다. 특히, 드라마나 예능 등의 TV 시리즈물은 방영한 직후부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격이 급격하게 낮아지기 때문에 자막을 최대한 빨리 붙여야 컨텐츠 매출이 극대화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같이 특정 매니아 층이 열광하는 컨텐츠의 경우 시청자가 자막의 퀄리티에 크게 민감하여 번역이 이상할 경우 크게 반발하기도 합니다. (애니메이션 자막은 뜨거운 감자같은 이슈로, 미국에서 제작사/DVD 수입사의 발번역에 분노한 매니아들이 직접 자막을 만들어 배포하자 제작사/DVD 수입사가 이를 막는 등 “Fan-subbing“에 대한 공방이 수년간 오고간 분야이기도 합니다.)

그 중요성 못지 않게, 자막 제작은 그렇게 단순한 작업이 아닙니다. 2개 언어를 구사하는 고급 인력이 필요하며, 뉘앙스와 문화적 코드를 반영하는 것은 언어 이상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자막과 대사를 맞추는 싱크(Sync) 작업은 백분의 일초 단위까지 감안해야 하는 엄청난 노가다이기도 합니다. 실제 서비스까지 되려면 자막을 서버에 올리고 필요하면 동영상 인코딩 작업까지 해야 합니다. 이 모든 작업을 다음날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저녁시간 방영이 끝나면 밤을 새워 반나절 내에 완료해야 합니다. 한두명이 처리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작업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건비가 상당히 많이 발생합니다. 단순 smi 파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말풍선이나 CG라도 넣으려면 자막 하나 만드는데 며칠이 소요됩니다.

이 인건비를 누가 부담하느냐도 관건입니다. Content Owner가 자막을 만든 후 컨텐츠를 판매할 때도 있고, 서비스 사업자가 자막 없이 컨텐츠를 사서 직접 자막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가 부담하든, 결국 컨텐츠 가격/비용에 반영되는 것은 똑같고 양 측의 수익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사업자들이 아무리 돈을 들여 자막을 붙여 서비스해봐야 이미 그 전에 웹하드, 토렌트 등 불법 시장에서는 자막이 제작되어 돌아다닌다는 점입니다. 이 자막을 사업자들이 그대로 쓰거나 일부를 베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돈을 주며 전문 제작팀에 의뢰하는 것보다, 돈 한푼 받지 않는 일반 유저들이 더 빨리 만들어낸다는 것은 사업자 입장에서는 씁쓸한 일입니다.

Viki는 이렇게 유저가 직접 자막을 만들 수 있게 구현한 Crowd-sourcing 비디오 서비스입니다. 별도의 자막 제작 어플리케이션이 필요하지 않고 웹 상에서 바로 자막을 제작할 수 있고, 자막 제작자들의 Community가 활성화되어 있어 방영 후 몇시간 안에 양질의 자막이 다양한 언어로 완성되어 영상에 붙습니다.

이러한 Crowd-sourcing 방식의 놀라운 점은, 돈을 주고 사람을 쓰는 것보다 더 빠르면서도 퀄리티가 높다는 점입니다. 의학드라마에는 의학계 종사자가, 법률드라마에는 법조인이 참여하기도 하여, 전문 번역자들보다 더 매끄러운 번역을 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Wikipedia가 만들어진 과정을 통해 볼 수 있듯이, Crowd-sourcing의 가장 큰 장점은 만드는 사람의 완벽주의와 장인정신입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들여도 얻어내기 힘든 경지입니다.

하지만, 자막을 유저가 직접 제작하게 허락하는 플랫폼은 Viki를 제외하고는 쉽게 찾기 어렵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유저가 만든 자막이 허접할 경우 컨텐츠 자체의 판매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에 Content Owner들이 Crowd-sourcing을 꺼리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일본 애니메이션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두번째 이유는, 유저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매우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자발적으로 재능과 시간을 내놓게 하기 위해서는 매우 정교한 서비스 설계와 Community 관리 역량이 필요합니다. 특히 Crowd-sourcing과 Monetization은 상극입니다. 주변에서도 매우 활성화된 인터넷 카페 등 커뮤니티가 ‘지나친 상업화가 싫어서’ 순식간에 해체되는 경우를 흔하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K-POP이 인기를 끌면서 재미있는 자막 형태가 등장했는데 바로 “따라읽기” 입니다. 뮤직비디오의 경우 가사의 의미보다 따라부를 수 있는 가사 Diction을 자막으로 넣어달라는 유저들의 니즈가 존재하기 때문에, “Nazeneun Dasarowun Inganjugin Yeoja” 같은 자막이 의미만을 번역한 자막보다 인기입니다. 혹은 두가지 다 넣는 경우도 보입니다. 덧붙여, 문맹률이 높거나 습관상 자막 읽는 것을 싫어하는 국가에서는 자막 상영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자막을 만드는데 무조건 Crowd-sourcing 방식이 가장 우월한 것은 아닙니다. 직접 Fact를 확인한 것이 아니어서 언급하기 조심스럽지만, 중국 Youku, Tudou, Sohu 등의 온라인 비디오 사업자는 한국 방송사에서 한류 드라마를 합법적으로 소싱해 상영하면서 직접 자막팀을 운영해 한국 내 방영 후 대략 3~4시간 이내에 완벽하게 자막을 만들어 올립니다. Cost를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부담하느냐에 따라 속도와 퀄리티가 정해집니다. 오히려, Crowd-sourcing을 위한 Community 운영 비용이 더 들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골치아픈 자막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분명히 의미있는 비즈니스 기회로 보입니다. YouTube를 제외한 대부분의 온라인 비디오 서비스가 미국 및 각 지역별 Local로만 서비스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자막의 중요성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Netflix와 Hulu 등의 해외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점차 이슈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Content Owner들 역시 온라인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방송국, 케이블로의 컨텐츠 수출이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Needs가 증가할 것입니다. Viki의 실험은 분명 의미가 있으며, Flitto같은 시도도 재미있어보입니다. Google Translation이 극도로 고도화되면 그냥 자동으로 해결될 문제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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