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면, 처음 연애를 시작하는 친구들을 눈치 챌 수 있는 힌트는 바로 ‘알’이었다. 문자 메시지 한 건당 1.5알. 그 아이와 한마디라도 더 나누기 위해 친구들에게 알을 구걸하기도 하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엄마인척 연기를 해서 알을 충전하기도 했다. (물론 발연기도 그런 발연기가 없었으므로 대부분 실패)
집에 오면 컴퓨터를 켜고 바로 메신저에 접속한다. 그마저도 몇 시 쯤 그 아이가 로그인을 하는지 생활패턴을 분석해야 했다. 세이클럽 타키, 버디버디, 드림위즈 지니, 그리고 네이트온까지.. 몇몇 메신저들이 나의 사춘기 시절을 떠올리면 함께 생각난다. 타키는 예쁜 아바타 꾸미기가 관건이었고, 지니는 상대방의 마지막 로그인 시간을 볼 수 있어서 짜릿했다. 싸이월드가 인기를 끌면서 자연스럽게 네이트온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팀 프로젝트나 학교과제를 할 땐 네이트온만한 메신저가 없는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의 첫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상대가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 했는지- 말 주머니 옆에 ‘숫자 1’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오고가는 하트 속에 마음을 확인하겠지. 내가 10대를 떠올리면 세이클럽 타키와 알요금제가 생각나는 것처럼, 언젠가는 카카오톡도 추억속의 옛 유물이 될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생각이나 했겠는가, 문자 메시지를 거의 쓰지 않게 되는 날이 올지.
실제로 사람들의 시간 속에서 카카오톡을 밀어내기 위해 다음, 네이버, 삼성전자까지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녹록치 않았고, 급기야는 거대기업으로 대표되는 이동통신 3사가 힘을 합치기에 이르렀다. 조인은 과연, 우리의 한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대표 메신저가 될 수 있을까?
도전하는 자의 실패는 용인되지만 대기업의 실패는 오만이다.
도전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어김없이 듣곤 한다. 반대로 실패를 두려워해야 하는 집단도 있는데, 바로 ‘대기업’이다.
대기업의 실패가 용인되지 않는 이유는 ‘할 수 있는데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카카오톡에 밀린 이동통신사다. 이동통신사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시장 환경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내노라하는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고 자금도 여유롭다. 변화하는 환경의 열쇠를 쥐고도 카카오톡에 밀려났다. 결국 3개의 대기업이 손을 잡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물 ‘조인’이 런칭 된지 꼭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조인은 여전히 오만한 이통사들의 꼼수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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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료냐, 무료나 또 다시 시작된 신뢰의 문제
조인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유료화’다. 현재 조인은 무료로 운영되고 있지만, ‘5월 31일까지’라는 전제를 달아놓은 상태이다.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는 이통3사간의 협의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이미 ‘어쩌면 유료가 될지도 모른다는 전제’를 접한 소비자들은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처음 카카오톡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 ‘무료’라는 점을 생각할 때 카카오톡을 잡겠다고 내놓은 조인의 유료화 논의는 대기업을 향한 불신에 기름을 붙는 격이다.
사실 조인의 가장 큰 위기는 카카오톡이 아니라 ‘불신’이다. 이동통신사를 향한 소비자들의 불신은 여느 대기업을 향한 불신보다 골이 깊다. 지난 해 2월 녹색소비자연대 그린디지털네트워크는 스마트폰 이용요금 문제점과 개선사항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제4 이동통신사 도입과 관련해 “현재 스마트폰 소비자들 대부분이 이통사의 서비스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브랜드 충성도가 떨어진 상태이며, 불만이 생긴 소비자들은 언제든지 요금이 저렴한 이동통신 사업자로의 이동을 고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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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톡의 대항마’라는 이미지 메이킹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조인은 출시와 함께 수많은 언론들이 대대적인 보도자료를 내놓았는데, 한결같이 ‘카카오톡의 대항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 물론 이통사로써는 눈에 가시 같은 카카오톡을 잡기위해 개발한 것이 당연했겠지만, 꼭 이렇게 대놓고 말해야 했을까? 오히려 시장 환경의 열쇠와 수많은 인재, 자금 등 갖출 것 다 갖춘 이통사들이 카카오에 메신저 시장을 빼앗기고 이제야 제 밥그릇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꼴만 되어버린 것 같다.
또한 이런 보도자료 이후 다른 어떠한 프로모션도 없어 아쉬움이 크다. 대기업이 가진 환경들을 잘 이용하여 참신하고 멋진 프로모션을 진행했다면 조인의 이미지 쇄신이 가능할 법도 했는데 말이다. 사공이 너무 많은 것일까, 조인은 출시 이후 어떠한 액션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조인은 카카오톡과 연결시키면 연결시킬수록 '패배자'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조금 늦었더라도 뻔뻔하리만큼 당당하게 조인만의 이야기, 조인만의 이미지를 찾아 소구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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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ke-Break-Make 아닌, Make-Make-Make 통할 리 없다.
카드 광고계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대카드 광고,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카피는 바로 ‘Make-Break-Make’. 개인적으로 진정한 스타트업 정신이 아닐까 싶은 명카피라고 생각한다.
조인을 접하면서 느낀 점은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였다. Make-Break-Make라기보다는 Make-Make-Make의 느낌이랄까. 카카오톡에서는 되지 않는 이런 저런 기능들의 나열. 하지만 근본적인 끌림이 없다. 그러니 ‘카카오톡의 대항마’라는 뻔한 슬로건 밖에 나오질 않는 것이다.
유저들은 앞서 틱톡, 라인, 마이피플, 챗온 등 수많은 카카오톡의 대항마들을 경험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깔아도 봤지만 결국엔 모두 카카오톡으로 돌아왔다. 대항마들이 카카오톡보다 서비스가 못해서 일까? 마이피플은 카카오톡의 보이스톡보다 먼저 무료 통화 기능을 제공했지만, 추월에는 실패했다. 단순히 카카오톡 보다 기능이 많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미 ‘카카오톡’만한 메신저가 없다는 것을 경험한 유저들이 조인을 다운로드 받을 확률? 극히 적어 보인다. 실제로 조인 런칭 한 달이 지난 지금 81만 유저들이 조인을 다운받았지만 사용을 하고 있는 유저는 10%도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설상가상 카카오톡은 익숙하면서도 신선하다. 카카오스토리, 카카오게임을 히트시킨 데 이어 카카오페이지, 채팅플러스가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마치 마인드맵의 가지를 치듯 뻗어나가는 카카오의 서비스를 Make-Make-Make전략으로 잡을 수 있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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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초등학생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의 뜻을 풀이하라는 시험문제에 ‘여럿이서 힘을 합치면 못할 일이 없다.’라고 적었다고 한다. 거물급 사공이 셋이나 함께하는 ‘조인호’가 과연 앞서 언급했던 우려의 목소리를 극복하고 카카오톡이라는 산을 넘어 정상에 깃발을 꽃게 될지, 아니면 원래의 공식대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는 난파선이 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다. 혹시 아는가, 앞서 말한 엉뚱한 답이 예언이 되어 이 초등학생의 사춘기가 ‘조인’으로 채워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