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안 싸네
2012년 10월 23일

종잇값도 안 들고, 배송비도 없는 전자책은 왜 종이책보다 훨씬 싸지 않을까? 2천 원이면 안 될까? 2011년 『출판저널』 2월호의 독자 설문조사 결과 전자책 가격이 2천 원이면 적당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고 한다.

2012년 4월 기준으로, 국내 전자책 초(超) 베스트셀러 『스티브 잡스』는 2만 원에서 딱 2천 원 빠지는 정가(종이책 대비 72%)에도 첫 석 달간 1억 원어치 팔렸고 판매량은 6천 부다. 애걔, 종이책 판매 부수(55만 부)의 1%다.

아무튼 출판사 이익을 계산해보자. 판매부수 × 전자책 정가 × 출판사 정산률(70%) = 7,560만 원이다. 비용으로 1,800만 원—인세 1,500만 원(주1), 전자책 제작 원가 300만 원(주2)—을 빼면, (직원 인건비를 포함한) 일반관리비를 무시하면 전자책으로만 5,760만 원 남는다. 쏠쏠해 보이지만 스티브 잡스가 매년 죽지는 않는다.

2천 원에 잡스~

『스티브 잡스』 전자책 정가를 2천 원으로 하면 남나? 같은 부수를 팔았다 치자. 전자책 정가가 아무리 낮아도 비용은 같으니 출판사는 960만 원 적자다. 이쯤 되면 출판사가 독자를 착취하는 게 아니라 정반대가 된다.

출판계에서 말하길 한 권이 나머지 아홉 권을 먹여 살린다. 출판사는 매 한 권이 바로 그 ‘효자’ 한 권이라는 확신을 하고 판돈을 던진다. 그런 심사숙고 끝에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판단되는 책을 내도 열에 아홉은 돈만 까먹는다. 출판 열차는 계속 달리고 싶다.

5,760만 원 이익을 정밀 분석해보자. 5,760만 원을 공평하게 나눠 다른 아홉 권에게 준다면 한 권당 보조금이 640만 원이 된다. 전자책 한 권 내기 빠듯한 액수다. 결론적으로 출판업은 한 권 대박 내고 튀는 장사가 아니라서, 전자책 정가를 종이책의 70~80%로 책정한 출판계의(정확히 말하면 출판인회의) 결정은 정당방위다. (전자책 『스티브 잡스』는 72%)

전자책만 내면 안 되겠소?

이때 (야망에 불타는) 영세 전자책 전문 출판사에서 6,000원이란 가격으로 (이류 베스트셀러 작가) 전자책을 냈는데 (죽은 스티브 잡스가 격찬을 해서) 기적같이 6천 부를 소진한다고 해도 출판사 정산액은 2,520만 원이다. 정산액의 50%를(주3) 인세로 주고 제작 원가 200만 원(표지 디자인 + 교정교열)을 빼면 1,020만 원이 남는다. 사실상 첫 1년에 1,020만 원으로 봐야 한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전업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아무나 6천 부 파나?

스티브 잡스·월터 아이작슨·민음사가 총출동한 희대의 베스트셀러도 6천 부 팔리는, 척박한 한국 전자책 시장에서 전자책 베스트셀러 기준은 몇 부일까? 고작 1천 부다. 1천 부면 일반관리비를 무시하면 10만 원 흑자다. 국내에서 전자책은 종합 베스트셀러에 오르지 않으면 0~250부 팔린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출간한 전자책은 (『스티브 잡스』 전자책을 제일 많이 판 리디북스에서) ‘비즈니스와 경제’ 분야 베스트셀러 10위 내에 들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에게 선인세도 안 줬는데) 나머지 온라인 서점 판매를 다 합해도 아직 외주 비용 200만 원을 못 뽑았다. 전자책 전문 출판사 현장은 카메라만 들이대면 바로 『카메라 출동』·『VJ 특공대』·(밥만 주는) 『체험 삶의 현장』이다.

종이책도 만들면 되지 않겠소?

정가 1만 원인 종이책 초판 3천 부를 다 소진하면 출판사는 손익 분기점에 도달한다. 이때 인건비를 무시하고도 적어도 직접생산비로 6백만 원(필름 출력, 종이, 인쇄, 책 매기. 단색 기준)을 투자해야 한다. 종이책을 만들면 (국내 전자책 시장규모를 종이책의 5%로 보고, 전자책 정가를 종이책 대비 70%로 놓고 역산을 하면) 판매 부수가 전자책 대비 평균(!) 28배로, 전자책 대비 직접생산비 비용 3배를 훨씬 뛰어넘는 성적이 나온다. 돈 천만 원 있으면 종이책부터 만들면 된다.

전자책 안 만들면 되겠네

-.-;;

종이책 반응 봐서 전자책은 늦게 내면 어떻겠소?

극장 개봉하고 3개월 후에 DVD로 출시하는 ‘홀드백’ 모델은 이제 영화계에서도 끝났다. 3개월이면 독자가 변하고 대통령도 바뀐다. 디지털 시대에서 같은 콘텐츠라면 거의 동시에 출시하는게 요즘 추세다. 물론 아직도 미국 대형 출판사가 견장정 하드커버를 먼저 내고, 1~2년 후에 연장정 페이퍼백을 내는 관행은 여전하다.

헷갈리는데 정리 좀 해주소

같은 콘텐츠가 동시에 출시됐는데 종이책에는 정가에 ‘위험 부담금’을 넣고 전자책에는 안 넣는다는 게 어불성설 하다.(주4) 즉, 손익분기점을 넘지 않은 상황에서 전자책만 종이책 정가 70% 이하로 팔기는 어렵다. 전자책 제작 수수료도 리스크라서, 국내에선 전자책제작업체와 수익배분을 하는 출판사도 있다.

‘뭘 더(!) 싸게 해? 콘텐츠가 변하니?’

결정적으로 전자책이 아주 싸지 않은 이유는 종이책 제작단가가 아주 비싸지 않아서다. 국내 출판계는 과문한 탓에 모르겠지만, 적어도 미국 출판계의 입장은 '종이책 제작단가가 1~2달러 수준인데 얼마나 더 깎아?'다. 미국은 주로 1도 단색 위주의 책을 초판 5천 부 이상 찍기 때문에 제작 단가가 낮다.  국내에서 2도짜리 종이책을 내면 제작단가가 얼추 3,300원 든다.(주5) 예를 들어, 같은 조건의 2도짜리 종이책 『스타트업 바이블』은 13,000원 정가에 전자책은 7,500원이다. 할인 액수가 5,500원이니 (앞에서 추정한) 제작단가보다 3,300원보다 2,200원을 더 깎아줬다. 종이책 대비 57% 정가. 와. 단, 해당 출판사는 해당 책으로 18개월 전에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었고, 이후에 전자책를 냈다. (2012년 10월 현재, 나는 『스타트업 바이블』 1편과 아무런 경제적 이해관계가 없다.)

유통이 문제야, 답은 전자책 직거래?!

(민망해서 공개하기는 그렇지만 공익을 위해 고백하는데) 한번 3천 원에 직거래 실험을 해봤는데 첫 2달에 2부 나갔다..

외신

외국 사례를 보면 제각각이다. 미국에서는 싼 전자책은 아주 싸고, 비싼 전자책은 견장정 종이책 가격과 맞먹기도 한다. 도서정가제라는 규제법령도 없다. 영국에서는 종이책은 면세품이지만 전자책에는 20%(!) 부가가치세가 붙는다.

자기출판(self-publishing)

전자책 전문 출판사는 미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작가가 출판인이다. 이런저런 사유로 대형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못 한 작가가 자기 돈으로 사람을 사서 원고를 손보고, 책 표지를 완성해서, 최종 워드 문서를 Smashwords.com 같은 중간유통사에 제출한다. 중간유통사는 자동 변환 프로그램으로 워드 문서를 재주껏 전자책으로 변환해서 아이북스, 아마존, B&N에 납품하고 수금도 해준다. 물론 이런 전자책은 수작업이 들어간 작품보다 품질이 낮다. 그래도 팔리는데, 뭐하러? 수요가 있을 때마다 한 권씩 종이책을 찍어내는 POD(print on demand) 출판을 하는 작가도 많다. 미국 양대 POD 인쇄소는 초기비용이 공짜거나 몇백 달러 수준이다. 유통하고 수금도 해준다. 물론 땅에 백 달러 지폐가 떨어져도 줍는 게 오히려 손해인 유명 작가는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산다.

신세계는 백화점밖에 없나

책 원고를 받으면 딱 독자 수요가 몇 권인지 알 수 있는 신세계가 열리기 전에는 출판업자는 리스크를 달고 살아야 한다. (특성상 수요 예측이 속수무책인) 신상품 그러니까 신간은 위탁판매 형태를 지닐 수밖에 없다. 위탁판매를 하면 책이 최종 소비자에게 팔리기 전까지 책의 소유권자는 출판사다. 따라서 책이 안 팔리면 소유권자에게 반품된다. 반품된 책은 책 상태도 안 좋고, 무게 단위로 파는 ‘땡처리’ 옷만도 못한 존재라서 그냥 폐기된다. 팔려도 대금은 3~6개월 어음결제다. 출판 도매상이 부도나면 출판사도 휘청거린다.

결론은 전자책은 종이책과 신상품 공동운명체라서 전자책 정가가 6,000원 아래로 내려가지 못한다. 국내 전자책 수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전자책으로만 대박 사례가 나오기 전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싸게 공급하면 수요가 급증한다, 못 한다 싸울 수밖에. 그렇지않아도 ‘카톡’·영화·게임·드라마·‘미드’ 등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경쟁자가 속출하는 마당에 전자책을 봐주겠다는 독자가 있다니 고맙긴 하다. 전자책도 제값 주고 사주시면 감개무량하겠다.

 


@eh_dirty 요구맹

재택 출판인·편집자·디자이너(?)

주1) 『스티브 잡스』 같은 번역서의 경우 인세는 보통 7%라고 하지만, 번역자 인세를 포함하면 적어도 총 10%는 고려해야 한다. 국내 저자의 인세가 보통 10%이니 편의상 10%로 통일한다. 계약에 따라 다르겠지만, 출판사가 저자와 계약하면 종이책·전자책 독점 출판권을 명시하는데, 전자책 한 권의 인세 액수를 종이책 한 권의 인세 액수와 똑같이 책정한다고 들었다. 전자책 정가가 종이책의 70%라고 가정하면 전자책 정가 대비 저자 인세는 24.5%고, 출판사 몫은 45.5%(70%-24.5%)다.

주2) 민음사는 한글 서체 제작사 산돌커뮤니케이션에서 전자책용 한글 서체 두 벌을(바탕체·돋움체) 라이선스했다. 라이선스 값만 (아주 보수적으로 잡아) 총 200만 원으로 희망해본다.

주3) 앞의 주1과 다른 점은 전자책만 내는 희귀한(해괴한?) 계약을 한 경우다. 초기투자비용이 1/3이고, 반품이 없고, 결제가 비교적 투명해서 리스크가 적다. 따라서 인세를 높게 책정한다. 정산액의 50%까지 인세로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자책 정가대비 35%다.

주4) 『출판의 이론과 실제 (8판)』에 보면 "영국이 직접생산비의 4배를, 일본이 3배를, 미국이 적어도 6배를 정가로 매기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2배 반 안팎"이라는 종이책 ‘위험 부담금’(내 자작 용어다) 설명이 있다.

주5)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2012)』의 제작단가 계산법을 참조했다. A5신판 240쪽 연장정 3천 부 인쇄 기준이며, 1도 단색이면 2,300원 정도다.

* 원고를 검토해주신 현직 (종이책) 편집자 김류미 님께 감사드린다.

* 2012-10-30 '도서정가제' 관련해서 오해를 사는 문장을 지적해주신 노승영 님께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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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홍 대표는 한국과 미국의 네트워크와 경험을 기반으로 초기 벤처 기업들을 발굴, 조언 및 투자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스트롱 벤처스의 공동대표이다. 또한, 창업가 커뮤니티의 베스트셀러 도서 ‘스타트업 바이블’과 ‘스타트업 바이블2’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어린 시절을 스페인에서 보냈으며 한국어, 영어 및 서반아어를 구사한다. 언젠가는 하와이에서 은퇴 후 서핑을 하거나, 프로 테니스 선수로 전향하려는 꿈을 20년째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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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봠22
울봠22
5 years ago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종이책
종이책
5 years ago
Reply to  울봠22

지금도 여전히 전자책은 싸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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