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록키(Rocky, 1976)'의 감독 존 G. 아빌드슨(John Guilbert Avildsen, 1935~2017)이 지난 16일 별세했습니다. 81세. 사인은 췌장암이었습니다.
실버스타 스텔론은 "나는 고인에게 많은 걸 빚졌다"며 "그의 연출력과 열정, 감각, 따뜻함이 록키가 태어날 수 있게 했다"고 애도했습니다. "천국에서도 히트영화를 곧 만들 것"이라는 말로 감독을 떠나보냈습니다.
아빌드센에게도 스텔론에게도, <록키>는 각별한 작품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두 사람을 있게 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빈민가에서 나고 자라 포르노배우로 살던 스텔론에게도, B급영화를 찍던 아빌드센에게도 <록키>는 그야말로 온 힘을 실어 휘두른 한방이었습니다.
무하마드 알리의 경기를 본 어느 날. 스텔론은 강한 영감에 차오릅니다. 그 정서 속에서 <록키>의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자신과 닮은 주인공에게 동경하는 권투선수 록키 마르시아노의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시나리오를 들고 문전박대당하기를 수 십 번, 겨우겨우 투자배급사를 찾았습니다. 단, 조건이 붙었습니다. 100만 달러로 찍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예산 독립영화 제작비도 300만 달러 수준입니다. 단돈 100만 달러로 영화를 만든다는 건 그때도 답 안나오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었습니다. 스텔론과 아빌드슨에겐 <록키>가 품은 진정성에 확신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걸 알아볼 거란 사실을 믿었습니다. 제작비가 얼마 없으니 무척 헝그리하게 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텔론은 출연료도 받지 않았습니다. 영화 속 록키의 집은 실제 스텔론의 집이었습니다. 스텔론의 가족들 모두가 엑스트라로 출현했고, 심지어 반려견도 실제로 그가 키우는 개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제작비가 들어간 항목이 메이크업이었다니 말 다했죠.
꾹 참고 휘두른 펀치는 멋지게 세상의 복부에 꽂혔습니다. 고작 100만 달러로 찍은 <록키>는 전 세계 흥행을 몰아치며 무려 2억 2,500만 불이 넘는 수익을 거뒀습니다.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을 받으며 3관왕 수상작으로 영화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음향상, 주제가상에도 노미네이트됐습니다.
늘 드는 생각인데, 사람들은 어떤 게 진정성 있는 이야기인지 감각적으로 알아채는 것 같습니다. <록키>를 본 사람들은 깊이 감동했습니다. 영화로부터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록키는 사실 복싱보다 삶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권투를 하는 장면은 실은 1/6밖에 안 되는데요. <록키>부터 <록키 발보아>에 이르기까지, 록키 시리즈는 실은 늘 삶을 이야기해왔습니다. 대사들만 봐도 알 수 있죠.
챔피언 크리드와의 경기 날 새벽, 록키는 아드리안에게 두려움을 고백합니다.
못하겠어. 랭킹 목록에도 없는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난 보잘것없는 사람이야. ...하지만 상관없어. 시합에서 져도, 아니 얻어맞아서 머리가 터져도 괜찮아. 15회까지 버틸 수만 있으면 돼. 그건 아무도 못 한 일이거든. 그때까지 버텨낼 수 있다면, 15회 종이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 있을 수 있다면...그건 내 인생에서 내가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
<록키>의 젊은 록키가 한 이 멋진 말은 30년의 세월을 지나 <록키 발보아>에서 돌아옵니다. 어느덧 중년이 된 록키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은 결코 따스한 햇살과 무지개로만 채워져 있지 않아. 온갖 추악한 인간사와 세상만사가 공존하는 곳이지. 인생은 난타전이야. 중요한 건 네가 얼마나 센 펀치를 날리느냐가 아니야. 얻어맞으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게 중요한 거야. 그게 바로 진짜 승리야.
10분만 더, 5분만 더. 심판의 카운트를 듣는 권투선수의 심정으로 알람 소리를 듣습니다. 텐.. 나인.. 에잇.. 간밤에 쓰러진 몸이 사각의 방에 누워 있습니다. 지친 몸을 겨우 일으켜 세웁니다. 다시 새 라운드가 밝았습니다. 물 한 잔 마시고 서둘러 집을 나섭니다. 흠씬 얻어맞은 샌드백처럼, 지하철엔 손잡이마다 사람들이 매달려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록키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 삶은 복싱과 닮은 것 같습니다. '코너에 몰렸다’라거나 '아직 한방이 있다’라는 말들, 생각해보면 복싱에 삶을 비유하는 말들이 무척 많습니다. 복싱이 삶과 닮아서, 그래서 록키의 승리들은 더 감동적이었나 봅니다.
삶과 닮은 이 영화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힌트를 주는 것 같습니다. 록키의 승리들은 늘 자신으로부터의 승리였습니다. 끝까지 하는 것. 록키의 상대는 오직 그것뿐이었습니다. 맞아 쓰러져도 기어이 일어서는 것. 15회의 공이 울릴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두 발로 서서 끝까지 버텨낸 후 사랑하는 아드리안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는 것. 그러기 위해 매일 계단을 뛰어오르고, 허공에 펀치를 날리는 것. 그게 록키의 싸움이었습니다.
록키 시리즈는 현실에서도 그랬습니다. <록키>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진정성은 30년의 세월을 버텨냈습니다. 시리즈가 거듭되며 휘청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라운드가 거듭될 때마다 기어이 다시 일어나 어쨌든 매번 두 팔을 들어 올렸고, 결국 <록키 발보아>라는 완성된 이름으로 근사하게 완결되었습니다.
링 위에 선 사람은 쓰러질 때가 있습니다. 흠씬 두들겨 맞고 다운될 수 있습니다.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면 됩니다. 아주 힘들 땐 잠깐 그대로 누워있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심판의 카운트가 끝나기 전엔 다시 일어서세요. 일어서서 가드를 바짝 올리고, 끝까지 눈을 뜨고 기다리세요. 멋지게 어퍼컷을 꽂아 넣을 타이밍은 반드시 옵니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It ain't over 'til it's over.)"
영화 이미지는 <로키 발보아>입니다.
ⓒ United Artists, MGM, 20th Century F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