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릴 지치게 만드는 것. 늘 사람에게서 오는 스트레스인 것 같습니다. 일이야 뭐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바쁘면 또 바쁜 대로 재밌죠.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가 오면 에너지 소모가 상당합니다. 이기는 쪽도, 지는 쪽도, 결국엔 다 진이 빠져서 한숨 쉽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관계 맺기는 왜 늘지 않는 걸까요. 맞으면 맷집이 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직 나이를 덜 먹어 그런가 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네요. 인간관계에 서툰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다만 그걸 내색하지 않는 법과 너무 깊게 받아들이지 않으려 노력하는 법을 배웠을 뿐입니다. 또 조금 뻔뻔해지기도 했죠. 이 지겨운 성장통은 대체 언제까지 겪어야 끝나는 걸까요. 그냥 키나 좀 더 크면 좋을 텐데.
영화 '우리들(The world of us, 2015)'은 관계 맺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서툰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선이는 초등학생입니다. 우리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선이에게도 관계 맺음은 두렵고 어려운 일입니다. 선이는 그 이름만큼 착한 여자애지만 반에서 따돌림을 당합니다. 집이 가난해서. 아버지가 알콜중독자라서(사실은 알콜중독까지는 아닙니다) 핸드폰도 없고 학원도 못 다니는 애라서. 이유는 얼마든지 있고 또 아무것도 없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동시에 관객들의 시간여행이 시작됩니다. 카메라는 어찌할 바 모르는 표정을 한 선이를 비추고 있습니다. 겨드랑이에 피구 공을 끼운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로 편을 나눕니다. 이기는 쪽이 먼저 자기편을 뽑습니다.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리는 선의 얼굴 위엔 기대 한 번, 실망 한 번이 오르내립니다. 결국, 아무도 선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 선에게 드디어 친구가 생깁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 전학을 온 지아는 선을 만납니다. 둘은 함께 놀며 친해집니다. “이건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로 말문을 여는 얘기들을 공유하기 시작합니다. 봉숭아 잎을 빻아서 같이 손톱을 물들이기도 합니다. 친구가 생긴 선은 마침내 해맑게 웃습니다. 그때는 손톱 물이 빠질 때쯤 지아와도 멀어지게 될 거란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학원에서 지아는 선이 따돌림 당하는 애라는 걸 알게 됩니다. 지아는 선과 만나면 자기도 따돌림 받게 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실은 지아도 이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전학을 온 이유는 그 때문이었습니다. 무서움을 느낀 지아는 선을 피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자 지아마저 다른 아이들처럼 선을 따돌리고 괴롭히게 됩니다.
지아에게 그건 아마 생존본능이었겠죠. 그 전략은 성공하는 듯 보였습니다. 지아가 보라를 제치고 중간고사에서 1등을 하기 전까진 그랬습니다. 아이들 사이의 권력자 보라는 지아를 보는 눈빛이 이내 달라집니다. 둘 사이에 묘한 긴장이 생깁니다.
사실 우린 알고 있습니다. 유년시절의 기억이라는 건 잔뜩 포장된 모습이라는 걸요. 학교는 관계 맺기를 배우는 공간이었지만, 악몽의 기억이기도 합니다. 아직은 너무 작고 좁은 창으로 세상을 보던 그 시절, 작은 교실 안에서 우린 때로 피해자가 되기도, 가해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프닝에서의 피구처럼 공에 맞아 선 밖으로 쫓겨났고, 선 밖에선 다시 안에 있는 친구에게 공을 던졌습니다.
선이처럼 얼굴에 드러나진 않지만, 우린 아직도 내 이름이 불리지 않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관계 맺기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또다시 서툽니다. 그 서투름이 우리 하루에 사소한 오해들을 남깁니다. 문득 그게 눈에 띌 만큼 쌓여 있음을 알게 됩니다. 서툰 이해, 서툰 사과, 서툰 용서가 묘한 갈증을 부추기죠. 그만하고 싶은 밀고 당기기와 안 그런 척하면서 눈치 보기로 이어집니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서로 알고 있는 그 미묘한 눈치싸움, 그건 정말 피곤한 일입니다.
직장생활을 하신 분도 있지만, 스타트업 구성원 중엔 사회초년생이 많습니다. 때론 스타트업의 작은 사무실이 그 옛날 좁은 교실의 2.0.1 버전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관계 맺기를 배우는 성인 버전의 맵이랄까요. 꼭 그때 그 교실 같은 공간에서, 모두 다 다시 책상에 앉아, 관계 맺기라는 과목이 우린 아직도 좀 부담스럽습니다.
만약 어떤 합의된 의식을 공유한다면 그런 스트레스를 좀 덜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작은 조직일수록 건강한 관계 맺기가 이뤄지지 않으면 일하기 너무 힘드니까요. 그 합의는 ‘공동체정신’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갈등 대부분이 어쨌든 잘해보려다가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동료를 괴롭힐 목적을 갖고 한 시절을 내걸고서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결국, 사무실에서 생기는 문제의 90%는 소통문제인 것 같습니다. 서툰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미스 커뮤니케이션이죠.
그러니 ‘공동체정신’을 갖고 가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은 조직에서 밤낮으로 일하는 스타트업 팀원들은 하나의 운명공동체입니다. 미워할 사람도, 싸울 사람도 없습니다. 동료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건, 그냥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아멘. 나무아미타불. 인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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