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있습니다.
일찍부터 에일리언 시리즈는 묘했습니다. 제작부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게 참 독특했거든요. 총 4편의 에이리언 시리즈는 저마다 감독이 다릅니다. 1편은 리들리 스콧, 2편은 제임스 카메론, 3편은 데이빗 핀처, 4편은 장 피에르 주네가 연출했습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걸 두고 '끝말잇기'라 표현하기도 했었죠.
'꼬리에 꼬리물기'는 에이리언만의 고유한 특징입니다. 영화와 영화가 꼬리를 물고 시리즈를 형성합니다. 이번 프리퀄 3부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이리언: 커버넌트(Alien: Covenant, 2017)'는 전작 '프로메테우스'의 꼬리를 물었습니다. 전작에서 실종된 우주선을 찾아 낯선 행성에 도착하며 새 이야기가 시작되죠. 꼼꼼히 들여다보면 꼬리물기 요소는 영화 안에도 많습니다. 일단 에이리언의 크리쳐 디자인부터가 '얼굴 안에 또 얼굴'이 있는 모습이지 않나요?
'에이리언' 1편의 '애쉬'부터 프리퀄 3부작의 '데이빗'까지. AI들의 이름에도 꼬리물기가 숨어있습니다. 1편에 등장한 AI의 이름은 애쉬(Ash)였습니다. 2편엔 비숍(Bishop), 4편엔 콜(Call), 프리퀄 1편 '프로메테우스'엔 데이빗(David)이 나오죠. A-B-C-D입니다. 이번 편의 AI '월터'는 리들리 영감이 무슨 변덕을 부렸다기보다, 그냥 다른 AI들과 동일선에 놓기엔 '급'이 안되어서 'E'를 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 무대는 오로지 데이빗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프리퀄 3부작이 천착하는 꼬리물기는 딱 하나입니다. '신을 만든 신'은 누구인가?
감독 리들리 스콧은 끊임없이 이 질문을 되뇝니다. 신은 누구인가. 그럼 신을 만든 신은 누구인가?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신을 만든 신은 어떤 존재인가. 나의 신을 만든 신은, 나의 신과 나를 창조할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대체 얼마나 지독한 허무함을 느낄까.
전작 '프로메테우스'는 신(인간)에게 실망한 피조물(AI)의 고독을 보여줬습니다. 이번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선 신(인간)을 넘어 신을 만든 신(엔지니어)에 대한 실망, 그리고 이 모든 '하찮은 창조주들'에 대한 피조물의 분노가 일었습니다. 인간의 피조물인 데이빗이 인간들의 신을 말살합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경계를 뭉개버립니다. 그 수단이 재밌습니다. 피조물(인간)의 피조물(AI)인 데이빗은 에이리언이라는 자신의 피조물을 '창조'해 실망을 안겨준 그 '하찮은 창조주들'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신이 되죠.
걸리적거리는 신들을 걷어낸 데이빗은 인간들의 우주선 커버넌트 호의 시스템 '마더'에게 음악을 틀라고 명령합니다. 데이빗이 선택한 곡은 '신들의 발할라 입성'입니다. 과거 자신이 인간을 위해 연주하던 곡이었죠. '신들의 입성'을 들으며 데이빗은, 마치 생명을 잉태해내듯 자신이 창조한 에이리언 배아를 토해냅니다. 배를 주머니 삼아 몰래 숨겨온 것이죠. 그걸 인간의 배아 옆에 가만히 놓아둡니다. 흡족하다는 듯 잠시 바라봅니다.
생각해보면 리들리 스콧은 아주 오래전부터 에이리언 시리즈를 통해 창조에 관해 이야기해왔던 것 같네요. 생명을 잉태함으로써 가장 아름다운 창조 행위를 하는 주체, '여성'을 강조해왔습니다. 시고니 위버 같은 '위대한 여전사'의 등장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함선의 시스템 이름은 늘 '마더'였죠. 마더의 보호 아래서 인간들은 마치 자궁 속 같은 수면 캡슐에서 깨어났습니다. 에이리언이 인간의 배를 뚫고 나온다는 설정도 여성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프로메테우스'에 이르러선 아예 대놓고 성경을 인용하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불임인 쇼 박사가 에이리언을 잉태해 크리스마스에 낳은 건 누가 봐도 동정녀 마리아를 떠오르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역시, 에이리언 시리즈는 재밌습니다. 부디 리들리 할배가 오래 사셔서 앞으로도 몇번 더 개봉해주었으면 좋겠네요. 아, 프리퀄 3부작 중에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3편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다음에 개봉할 '에이리언: 어웨이크닝'(가제)이 1편과 3편 사이의 이야기라네요. 감독은 "해보고 재밌으면 또 다른 에이리언 3부작을 더할 거"라고 했다죠. 그래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재밌는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의 데이빗을 '시장 후발주자'로 생각해봤습니다. 이 영화에서 데이빗이 보여준 건 그야말로 '창조적 파괴' 그 자체였습니다. 낡고 오만한 기성의 강자들을 비웃으며, 그들이 만든 룰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데이빗은 그들이 만든 제품들(피조물)을 분해하고 학습했습니다. 기존의 것보다 더 강한 자신의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시장을 독점했습니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 설령 지금 당신이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다 할지라도. 아니 먹이사슬 꼭대기를 내려다보는 절대 강자의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이야기는 이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우화이기도 했습니다. 오만한 태도로 발전 없이 도태돼있으면 후발주자는 빠르게 치고 올라옵니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고 나태해지면 누구든 후발주자가 만든 에일리언에 잡아먹힐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차기 창.조.경제혁신센터장은 데이빗 외에 대안이 없다고 봅니다. (팀장님, 후발 감독-리들리 스콧도 있습니다. -편집자주)
영화 이미지 ⓒ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