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관람가 50. 닥터 스트레인지 – 오만한 신입사원을 대하는 빠박이 팀장의 교훈
2017년 03월 03일

닥터 스트레인지

스타트업을 해서 제일 좋은 점을 하나만 말하라고 한다면 '시야가 열렸다'는 점을 꼽을 겁니다. 스타트업을 알기 전에는 삶을 이렇게 주체적으로 사는 방법이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졸업을 하고 나면 취직해서 직장인이 되는 것이 유일한 길인줄 알았습니다. 마치 다른 세계를 발견한 것처럼, 스타트업을 알고 나서야 시야가 열렸습니다.

일을 하는 동안, 이번엔 안으로 시야가 트였습니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이 어떤 일들인지, 능력치는 어느 정도인지, 또 어느 정도 잠재력이 있는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시야가 트인 만큼, 새로운 배움이나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점도 값졌습니다. 안으로, 또 밖으로 시야가 열린다는 점은 스타트업의 성패를 떠나 일단 해보기만 해도 얻게 되는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영화 속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 분)가 고장난 손으로 사원의 문을 두드렸을 때,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턴 분)이 그를 위해 한 일은 시야를 열어준 것이었습니다. 오이를 닮은 건방진 고스펙 신입사원에게 '빠박이 팀장' 에인션트 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당신은 자신이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하겠죠. 만약 당신이 아는 세계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손을 고쳐달라는 그에게 에인션트 원은 "난 당신의 손을 고쳐줄 수 없다"고 답합니다. "당신의 손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을 뿐"이라고 덧붙이죠. 밖으로 또 안으로, 에인션트 원은 손을 고쳐주는 대신 스트레인지의 시야가 열리도록 도와줍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수련을 쌓으며 그는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자기 내면의 깊은 우주도 볼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의 입체성과 스스로의 가능성을 처음 목격한 스트레인지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간 자신이 알던 세계가 얼마나 좁고 편협했는지 깨닫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비록 머리털은 없지만 에인션트 원은 좋은 사수였던 것 같습니다. 신입사원에게 스스로 재능이 있음을 알도록 일깨워주고, 노력을 멈추지 않도록 지켜보며 도와주는 팀장이었습니다. 빠박이 팀장이 강조한 건 딱 하나였습니다. '자기 내면에 가능성이 있음을 믿을 것.' 이 믿음에 닿는 순간 닥터 스트레인지는 힘을 얻습니다. 고장난 손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까지의 마블의 히어로 영화들은 주로 육체의 진화를 이야기했습니다. 약을 맞고 강해진 군인(캡틴 아메리카)이나 방사능 노출로 육체의 끝을 보게 된 과학자(헐크), 혹은 기술로 이룩한 육체의 확장(아이언맨) 등이지요. 그런데, 《닥터 스트레인지》는 육체 대신 정신의 진화에 대해서 말합니다. "우리는 정신 에너지로 현실을 창조한다"는 대사처럼 관념론에 입각한 철학이 영화의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선 육체를 치유하는 일까지 정신의 몫이었네요.

닥터 스트레인지

닥터 스트레인지가 힘을 얻게 된 비결이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었다는 점, 또 그 성찰로 찾은 힘의 궁극이 '시간을 다루는 능력'이었다는 점이 재밌습니다. 시간을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역대 최강의 마블 히어로'라는 수식어를 획득했죠. "죽음은 인생을 의미있게 만든다"는 에인션트 원의 말이나,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했는지 시간이 알려줄거야"라는 크리스틴(레이철 매캐덤스)의 대사들은 영화가 이 '시간'이라는 개념을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앞서 스타트업을 하면서 시야가 열렸다고 말했는데요. 그럴 수 있었던 건 새로운 경험들로 가득한 시간들을 촘촘히 보내왔기 때문일 겁니다. 일반 기업에선 하지 못할 다양한 경험들을 압축적으로 겪으면서, 나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알게 되었습니다. 스타트업을 알지 못했다면 저는 아마 세월이 흐르는 대로 휩쓸려 갔을 것 같습니다.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싶다면 먼저 '나'를 알아야만 합니다. 그야말로 다양한 일들을 겪어볼 수 있는 스타트업은 그 시간을 단축시켜주죠. 내 인생이 온전히 나의 시간들이 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건 가치있는 경험인 것 같습니다.

영화 이미지 ⓒ Walt Disney

김상천 coo@slogup.com 슬로그업의 영화 좋아하는 마케터. 창업분야 베스트셀러 '스타트업하고 앉아있네'의 저자입니다. 홈·오피스 설치/관리 플랫폼 '쓱싹'을 운영하고 앉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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