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 원작, 프랭크 다라본트 연출. 익숙한 조합이죠. 《미스트》는 《쇼생크 탈출》과 《그린마일》에 이어 다라본트 감독의 3번째 스티븐 킹 원작 영화입니다. 아니, 사실은 4번째입니다. 단편이 하나 더 있거든요. 다라본트 감독의 단편 데뷔작 《방안의 여자》 역시 스티븐 킹 단편소설이 원작이었습니다.
영화 좋아하는 스티븐 킹은 일찍이 “영화학도들에겐 저작권료를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대신 영화가 완성되면 무조건 자기한테 보내줘야 한다는 조항을 달았습니다. 다라본트 감독은 이 지원 혜택을 누구보다 제대로 활용한 학생이었습니다. 《방안의 여자》는 스티븐 킹도 맘에 쏙 들어 한 수작이었고, 이 단편을 계기로 수월하게 영화계에 입문할 수 있었거든요. 그 아마추어 감독은 세월이 흘러 IMDB 전체 평점 1위 영화인 《쇼생크 탈출》과 AMC 창사 이래 30년간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워킹데드’의 감독이 되었습니다. 워킹데드의 연출 역시 스티븐 킹에게 영향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죠.
다라본트 감독에게 스티븐 킹이라는 존재는 늘 든든했을 것 같습니다. 역시 킹 형은 멋있습니다. 대인배로서 형의 면모는 그간 여러 일화를 통해서도 알려져 왔는데요. 예컨대 “서점에서 누가 책에 낙서하길래 뭐라 했더니 알고 보니까 스티븐 킹이 자기 책에 사인을 하고 있더라”는 깜찍한 일화도 있습니다. 참 귀엽지 않습니까? 역시 킹형은 '킹왕짱'입니다.
《미스트》는 밤새 몰아친 폭풍우로 전기와 통신이 끊긴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저 멀리서 안개가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스멀스멀 마을로 다가옵니다. 이윽고 자욱한 안개가 온 마을을 덮어버립니다. 불안해진 사람들은 생필품과 음식을 사두려고 마트에 모여듭니다. 그때 한 노인이 헐레벌떡 뛰쳐 들어옵니다.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불안한 눈으로 이마에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안개 속에 뭔가가 있어!
황급히 마트 밖으로 고개를 돌려보지만, 안개로 뒤덮여 보이지 않습니다. 노인이 무언가 괴물 같은 게 있다는 말을 하자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들 사이에서 파가 갈립니다. 변호사 노턴이 이끄는 파는 ‘괴물 같은 건 없다’는 쪽입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을 깔보며 당장 마트 밖으로 나가자고 말합니다. 여러 사람이 분명히 뭔가 봤다고 말해도 “쇼하지 말라”고 뚝 잘라버립니다. 반면 주인공 드레이튼 쪽은 마트에 남아 상황을 지켜보고자 합니다. 진짜 안개 속에 무언가가 있다면 물자가 비축돼있는 마트가 생존에 유리하다고 여깁니다.
이윽고 노턴파는 밖으로 나갑니다. 드레이튼은 더는 이들을 말릴 수 없음을 깨닫고 제안을 하나 합니다. “얼마나 멀리 갔는지 알 수 있도록 허리에 밧줄을 감고 가달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허리에 밧줄을 메고, 그들은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잠시 정적이 흐릅니다. 아무도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모두 밧줄을 바라봅니다. 그때 밧줄이 안개 속으로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갑니다. 팽팽하게 당겨진 밧줄은 공중에 떠서 요동칩니다. 강한 힘을 가진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잡아당기고 있습니다. 아니, 밧줄을 멘 사람을 끌고 가고 있습니다.
괴물 영화인 척 관객을 모았지만 이 영화는 사실 심리 스릴러나 서스펜스에 가깝습니다. 카메라는 마트 안 인간군상들의 심리를 비춥니다.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뛰쳐나가고, 어떤 사람은 남습니다. 누군가는 타인을 밟아 살아남으려 하고, 누군가는 현실을 외면하고, 또 누군가는 약자를 지키려고 합니다. 희뿌연 안개 속에서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선택이 생존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선택 뒤엔 다시 또 다른 선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스트》의 이런 설정은 스타트업을 하는 일과 멀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사업을 하는 것도 결국 선택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해 끝없이 무언가 선택해야 합니다. 괴물은 없지만, 괴물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사업실패는 무섭습니다. 미래는 안개 낀 시야처럼 늘 보일 듯 말듯 희뿌옇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번 불확실성 사이에서 비교적 확실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고, 내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떤 VC는 이래야 한다 조언하고, 어떤 멘토는 저래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나가면 죽을지 아니면 여기 남아야 살아남을지 실행해보지 않고서는 누구도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선택하는 것, 그 선택을 믿는 것. 그리고 내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것. 스타트업이 하는 일은 결국 이런 일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대기업이나 일반 회사를 버리고 스타트업을 시작한 것도 큰 선택이었습니다. 동업자와, 아이템과, 사업방향을 선택했습니다. 돌아보면 이 선택은 늘 나의 몫이었습니다. 모든 스타트업은 다 다르고, 스타트업 월드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례는 사례고 조언은 조언일 뿐이죠. 조언자가 경험이 많다고 무조건 맞는 것도 아니라는 건 금세 알게 됩니다. 나보다 내 사업을 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미스트》는 그 어떤 반전영화보다도 더 충격적인 결말로 구설에 올랐죠. 그런데 이 결말은 다라본트 감독이 각색한 것으로, 사실 원작 소설과는 전혀 다르다고 합니다. 영화의 결말은 다라본트가 선택한 결말입니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결말을 쓰는 건 역시 각자의 몫입니다. 내 스타트업의 결말은 내 선택으로부터 만들어집니다. 다만 어쨌든 스타트업을 시작했다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선택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모두 해피엔딩으로 가는 선택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이미지 © Dimension Fil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