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은 국내 영화계 멀티캐스팅 유행의 선명한 출발선이었죠. 김윤석, 이정재, 김혜수, 임달화 등 국내와 홍콩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한 팀으로서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는 이 도둑들 사이의 밀당을 비추며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한국팀은 기존 팀원 4명(뽀빠이, 예니콜, 잠파노, 씹던껌)에 새 팀원 마카오박과 팹시가 합류해 6명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홍콩팀 넷(챈, 앤드루, 줄리, 조니)을 더해 총 10명의 도둑들이 팀을 이뤘습니다. 이 팀을 스타트업에 비춰보니 재밌습니다. 캐릭터별 역할이 스타트업의 구성과 꽤 닮았네요.
앞에서 줄을 타는 예니콜은 프론트앤드 개발자, 뒤에서 줄을 잡아주는 뽀빠이와 잠파노는 백 앤드 개발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팀 내 핵심기술(금고 따기)을 가진 사람은 팹시와 쥴리입니다. CTO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밖에 씹던껌, 챈, 앤드루 등 다른 팀원들은 기획/영업/마케팅을 나눠 맡아 사업 인프라를 구축합니다.
이 ‘태양의 눈물 프로젝트’의 매니저는 마카오박입니다. 마카오박이라는 이름은 과거 마카오 카지노에서 하룻밤에 88억을 땄다는 전설 같은 일화를 통해 붙여진 것이라죠. 뽀빠이가 PM(혹은 PL) 자리를 넘겨줄 만하겠습니다. 실제로 마카오박은 실력이 좋아 보입니다. 경험에서 나온 통찰을 녹여낸 사업설계능력, 넘치는 카리스마, 거기다 협력인프라나 정보력도 뛰어나고 심지어 외국어까지 능숙합니다.
언뜻 보면 최강의 리더가 어벤저스 팀을 이끄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요, 찬찬히 살펴보면 마카오박은 그다지 좋은 PM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 실력이야 나무랄 데 없었지만, 프로젝트 관리자로서는 실격이었습니다. 팀원들 입장을 헤아리는 능력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마카오박은 자기 업무만 신경 쓰고 팀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팀이 삐그덕거렸고, 결국엔 각자 자기 잇속을 챙기느라 등을 지며 와해하고 말았습니다.
‘PM 마카오박’의 문제점 1 - 팀원들에게 명확한 하나의 핵심목표를 공유시키지 못했다
이 팀은 끝내 하나의 유기체로서 뭉치지 못했습니다. 하나의 분명한 핵심목표를 공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카오박은 “비싼 다이아몬드가 있다, 그러니 이렇게 훔치자”고 큰 그림만 말했지,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제대로 설명을 않고 넘어가려 했습니다. 수익화까지 가는데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중요한 문제들(웨이홍 등)을 어떻게 해결할 건지 그 해법에 관해서는 팀원들에게 확신을 주지 못했습니다. 매력적인 보상체계를 제시하며 팀원들이 하나의 목표로 나아가도록 사기를 높이지도 못했습니다.
물론 마카오박이 웨이홍에 대한 복수라는 혼자만의 목표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으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 개인적인 목표를 더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라도 팀 매니지먼트는 필요했습니다. 결국, 마카오박의 계획이 현실성 없다고 판단한 중국 라인이 뒤통수를 쳐서 모든 일이 허사가 될 뻔했죠. 돌아보면 마카오박이 복수에 성공한 데는 상당한 운이 따랐습니다.
‘PM 마카오박’의 문제점 2 - 사내정치와 파벌을 방관하고, 불화를 조장하기까지 했다
한국팀과 중국팀의 협업은 두 회사 간의 합병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카오박은 합병만 시켜놓고 그 후를 전혀 관리하지 않고 방관했습니다. 낯선 두 팀이 하나의 팀으로 융합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마카오박은 밖으로만 돌았습니다. 팀 매니지먼트의 부재는 사내정치와 파벌이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더 큰 과오는 마카오박 스스로가 팀 내의 불화를 키웠다는 점입니다. 뽀빠이와의 관계였죠. 과거사가 어찌 되었든 다시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로 했다면 쌓인 감정을 풀고 깨끗하게 출발했어야 합니다. 뒤통수를 칠 때 치더라도 그런 시늉이라도 해야 했죠. 그랬다면 더 아프게 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몇 명 없는 사람으로 일을 할 때 가장 큰 리스트는 사람 간의 불화일 수밖에 없습니다. 프로젝트 관리자는 팀 내의 마찰을 파악하고 해결을 도와야 합니다. 소모적인 자존심 싸움 역시 금물입니다. 핵심 멤버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 팀원들의 신뢰를 빨리 잃는 방법도 없죠. 중국 라인이나 예니콜이 보여줬듯, 회사와 프로젝트에 대한 확신이 없을수록 팀원들은 자기 포트폴리오 챙기기에 급급해지는 것 같습니다.
‘PM 마카오박’의 문제점 3 - 프로젝트 관리자 롤에 대한 개념 없이 자기 실무만 신경 썼다
프로젝트 관리자라는 롤의 최우선 업무는 팀 매니지먼트입니다. 개인 단위의 실무보다는 리더십이 훨씬 중요합니다. 자기 능력의 30%를 관계 매니지먼트에 할애해 팀원들의 능률을 5%씩 올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마카오박은 관리자 롤에 대한 개념이 너무 없었습니다. 자기 일은 잘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죠.
항상 위엄-진지-근엄으로 일관하는 권위적인 태도도 문제였습니다. 듣지도 묻지도 않고 언제나 지시만 했죠. 또 상황파악과 계산이 빨랐음에도 그 능력을 팀을 위해 공유하지 않고 언제나 혼자만 썼습니다. “99%의 거짓에 1%의 진실을 더하면 선동이 훨씬 더 쉬워진다”던 괴벨스의 말처럼, 이 부분 역시 개인적인 목표를 위해서라도 그러는 시늉이라도 하는 편이 좋았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마카오박은 PM으로서는 실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역량은 뛰어나지만, 관리자 역할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네요. 만약 마카오박이 팀 매니지먼트를 제대로 해냈다면 복수는 훨씬 수월했을 것입니다. 더불어 다이아몬드까지 자기가 차지할 수 있었겠죠. 기왕 일하는데 최소한 인건비는 뽑아야지 않겠습니까?
영화 이미지 출처: 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