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으로부터 ― 정확히는 '13 식민지(Thirteen Colonies)'라 불리던 미 동부 13개 주로서 ― 미국이 독립을 선언하기 직전인 1776년 1월, 영국 출신으로 미국에 거주하던 문학가이자 철학자, 정치가인 토머스 페인(Thomas Paine)은 짧은 논집 《상식》(Common Sense)을 출간한다.
독립의 정당성을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관점에서 강렬하게 설파하는 페인의 《상식》은 ― 인구 대비 판매 부수를 기준으로 ― 지금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널리 읽힌 책일 정도로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수많은 미국인의 인식 속에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과 당위성의 토대를 형성한다.
'기업가(起業家)의 신조(信條)'로 번역될 〈Entrepreneur’s Credo〉는 당시 미국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상식》에 실린 짧은 시로,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기업가의 신조〉
나는 평범한 인간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평범한 인간이 되지 않는 것은 나의 권리다.
나는 안정이 아닌 기회를 추구한다.
국가가 나의 안위를 보장하는 대가로 초라해지거나 총명함을 잃은,
그렇게 사회의 보호를 받는 시민이 되기를 나는 희망하지 않는다.
나는 계산된 위험을 감내하고,
꿈을 꾸고, 일으켜 세우며,
실패하고, 또 성공하기를 바란다.
나는 수동적으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능동적으로 얻을 무언가를 내어놓지 않을 것이다.
나는 최대한의 수준까지, 인생에서 주어지는 도전들을 선호하며,
유토피아라는 평화로운 상태를 이뤄가며 느끼게 될 성취의 전율들을 선호한다.
나는 조금의 편익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그저 주어지는 지원에 나의 존엄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누구의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위협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자랑스럽게, 두려움 없이,
올곧게 서서,
스스로 생각하며 행동하고,
내가 창조한 것들을 누리며,
담대하게 세상에 맞서,
"이것을, 신의 도움 위에서, 내가 이뤘다."
라고 말할 수 있다는, 바로 그것이 내가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다.
기업가가 된다는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기업가의 신조〉에서 페인이 말하는 국가는 미국을 지배하던 대영제국이다. 당시 대영제국은 미국이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의 일원으로 머물 수 있도록 하는 대신 영국의 식민지로서 무거운 세금을 물도록 했다. 페인은 그런 대영제국의 정책에 대해, 미국이 영연방의 일원으로 남아 조금의 편익을 누리기보다는 그에 따라 마주하게 될 도전을 기꺼이 감내하겠다고 용감히 말한다. 또한, 페인은 미국이 그와 같은 대영제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것이 제공하는 편익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것이 바로 후대에 물려줘야 할 유산이고, 동시에 그것은 기업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로 시를 끝맺는다.
지난 한해를 열심히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대한민국의 2016년은 너무도 참담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그와 같은 참담함 속에서 저마다 이상향을 꿈꾸며 달려온 많은 이들은 오늘의 혼란이 앞으로 우리 생태계에서 ― 중요한 역할을 해온 동력 중 하나인 ― '국가의 지원'이라는 축을 무너뜨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실제로 관련 예산이 백지화되는 등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러나, 남이 이미 정해놓은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이상향을 꿈꾸며, 그것에 다가서며 맞서게 될 도전을 기꺼이 끌어안는, 그 모든 과정을 극복하며 느끼게 될 성취, 그 전율의 가치를 아는 우리 기업가들이 후대에 물려줄 유산은 무엇인가?
오히려 우리가 바라야 하는 것은 국가로부터 지원과 보호를 받으며 총명함을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보호막에서 벗어나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받아들이고, 또 승리함으로써 오롯이 "내가 이것을 이뤘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맞을 2017년 새해는 오히려 우리 생태계가 지난 몇 년 동안 붙잡고 있었던 국가주도의 창업 모델로부터 탈피해(관련 컬럼), 보다 시장 지향적 생태계를 형성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고, 큰 역량을 갖춘 글로벌 스타트업의 탄생을 촉진하는 원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와 같이 이 생태계 안에서 역할을 해온 이들이라면 지금까지 '창업 지원'에 관한 정부 예산의 편성과 집행이 거의 맹목적이었다는 점, 적절한 역량과 경험을 갖지 못한 이들이 다양한 역할로 생태계에 유입되어 국가 예산을 좀먹었다는 사실, 그리고 가뜩이나 취약한 스타트업과 창업자들이 귀중한 시간과 자원을 그로 인해 낭비하는 일이 잦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2017년을 기점으로 우리 생태계와 관련된 예산을 효율화하고 투명하게 집행해 그와 같은 '꾼'들을 솎아내야만 한다. 그것은 곧 스타트업에게 실제로 돌아갈 소프트웨어적 지원의 효과로서도 의미가 있다.
"Hackneyed, but true!"
식상하지만, 분명 사실인 것은(Hackneyed, but true), 누군가는 물이 반쯤 담긴 컵을 보고서 '물이 반이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 생태계는 국가의 지원을 중심으로 발생해 강화되어왔고, 오는 2017년을 기점으로 어떤 방향으로든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아마도 필자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모든 창업자가 자문해야 할 것은 "그 변화가 나에게 좋은 것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그 변화가 어떤 모습이더라도 이 길을 계속 갈 것인가?"일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그렇다"라면, 다음은 "그 변화 속에서 나는 어떻게 이상향을 실현해 나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페인이 〈기업가의 신조〉에서 이야기하듯, "평범한 인간"이 되지 않겠다는 선택은 우리의 권리이고, 기업가로서 무언가를 이뤄내는 삶을 사는 것은 우리의 존엄에 관한 문제다. 그것은 국가와는 무관한, 우리가 스스로 일궈낼 유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