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걸음은 안녕하십니까?’ 킥스타터 하루 만에 5만 달러 끌어모은 하드웨어 스타트업 ‘직토’
2014년 11월 17일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더라고요. 시작이 반이라고, 시작한지 하루 만에 목표액의 딱 반을 채웠습니다."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재기 넘치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탄생하는 걸까. '직토'가 킥스타터에서 하루 만에 5만 달러의 선 주문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설렜다. 킥스타터는 전 세계 하드웨어 스타트업에게 일종의 고속도로로 통용되는 곳이다. 일단 킥스타터에서 인정을 받은 하드웨어라면, 외신의 주목을 받는 것은 물론 대규모의 투자를 끌어올 수 있는 든든한 스펙을 확보한 셈이 된다. 스마트 시계 '페블워치'가 대표적인 킥스타터 출신 제품이다.

기술도, 디자인도 바다 건너 팀과 겨뤄 별로 질 것 없다고 생각한 직토는, 걸음걸이를 교정해주는 '아키 밴드'를 들고 바로 킥스타터 무대로 향했다. 세계가 아키 밴드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토의 김경태, 김성현, 서한석 3인의 공동창업자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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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경태CEO , 서한석CFO, 김성현CTO


80%의 사람은 잘못 걷고 있다, '걸음의 질'을 분석하는 아키 밴드

"하드웨어 스타트업 전래동화라는 게 있어요. 좋은 아이디어를 펀딩 플랫폼에 올리기만 하면 짠하고 대박이 나고, 그 뒤에 투자를 받고, 대형 마트에 유통한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죠. 확실한 건 운 좋게 입소문을 타서 성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철저한 준비가 없으면 대중의 99%는 그 프로젝트가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쳐 버립니다."

킥스타터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엿새째 되는 오늘, 직토의 누적 모금액은 7만 달러를 넘어섰다. 40일이 넘게 남았는데, 목표액의 70%를 달성한 것이다. 킥스타터 내에서도 10만 달러 모금에 성공한 경우는 드물다. 호박 마차를 얻어 탄 신데렐라 이야기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아키는 애초에 킥스타터 진출을 첫째 목표로 1년을 공들여 아키 밴드를 만들었다. 펀딩 성공을 위한 철저한 물밑 작업 끝에 이뤄낸 성과인 것이다. 이미 몇 십억씩 투자를 받은 '중고 신인'들이 바글바글한 킥스타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직접 발로 뛰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었다.

일례로 직토는 킥스타터 팀과의 미팅을 위해 직접 미국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해외 테크 미디어 본사를 약속도 없이 방문해 여러 번 퇴짜도 맞았다. '좋은 제품이 나와 인사 드리러 왔다' 면서 기자 이름을 둘러대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힘들었을 법도 한데, 사무실에 개도 키우더라며 재밌어 했다. 이제 막 발동 걸린 팀다운 건강한 자신감과 유쾌함이 느껴졌다.

물밑 작업이 아무리 철저했다 해도 알맹이가 부실한 프로젝트가 성공할 리 없다. 각종 웨어러블 기기가 시장에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 해외 사용자들이 아키 밴드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키 밴드는 '걸음의 양'만 측정하는 기존의 활동량 측정기와 달리 '걸음의 질'까지 분석해낸다. 이를 통해 사용자가 바르게 걷도록 적극적인 코칭을 해준다는 점이 경쟁력이다. 세 가지 핵심 기능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진동 알람 기능이다. 무심코 핸드폰을 보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발을 끄는 등 잘못된 자세로 걸으면 즉각적으로 진동이 울린다. 연동된 앱을 통해서는 자신의 일일 걸음 패턴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신체 균형 분석 기능이다. 팔목에 차는 작은 웨어러블 밴드가 몸의 전반적인 불균형을 잡아낼 수 있는 이유는 발의 움직임이 곧 팔의 움직임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왼손과 오른손의 스윙 크기를 비교해보면 얼마나 불균형한 자세로 걷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다.

"발을 어떻게 뻗느냐에 따라 팔이 어떻게 나가는지가 결정돼요. 팔자 걸음으로 발이 벌어지면, 팔도 당연히 벌어지기 때문에 걷는 자세를 유추해낼 수 있죠."

보통 걸음걸이를 분석하면, 신체 어느 부위가 틀어져 있는지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필요한 운동 정보까지 알려준다. 현재는 더 정확한 분석을 위해 대학병원 한 곳과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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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의 스윙 폭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해 신체 균형도를 분석해낸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것이 바이오메트릭 기능이다. 쉽게 말해 개인의 고유한 걸음걸이 자체가 비밀번호가 되는 것이다. 최근 활용되고 있는 지문, 홍채뿐 아니라 전신을 통해 사람은 자신의 고유성을 증명해낼 수 있다. 즉 온 몸이 움직이는 비밀번호로 이루어져 있는 셈인데, 이 기능을 확장시키면 향후 결제나 IoT 분야와도 접목시킬 수 있게 된다. 작게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암호를 해제하는 것부터, 네스트와 같은 스마트 온도계를 조절하는 것까지 활용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걸음 인증도 한 번만 거치면 되기 때문에, 매번 확인해야 하는 지문이나 홍채 인식보다 편리하다.

하지만 아키 밴드는 걷는 자세를 교정한다고 했으니, 나중엔 모두가 같은 비밀번호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다행히 아키 밴드를 찬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걸음걸이가 확 바뀌진 않는다. 또 자세가 교정된다고 해도 개인이 가진 몸무게나 팔 길이 등은 차이가 있는 데다가 얼마 간은 습관대로 걸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개인을 인식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내년 2월이면 헬스케어에 중점을 둔 애플워치가 출시된다. 애플이 온 역량을 쏟고 있는 만큼 핏빗이나 미스핏과 같은 기존 활동량 측정기보다 더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 있다. 직토는 당분간 추가 기능을 넣기 보단, 주어진 데이터를 가장 잘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할 계획이다. 애플워치, 갤럭시 기어 등 스마트 워치를 위한 앱도 만들 예정이다.

"모션 센서로 다른 제품들이 걸음 수만 측정했지만, 아키 밴드는 걸음의 질을 분석해낼 수 있었던 것처럼 추후에 심박 센서 등이 추가되도 또 기존 제품들이 찾지 못했던 틈새 정보들을 잘 발굴해낼 예정이에요. 정보 처리의 싸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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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의 김경태CEO


하드웨어 스타트업계의 어벤저스, 전문성있는 팀원이 핵심 역량

대기업에 있을 때도 매일 하루를 진하게 살아냈지만, 대리 직함을 달고 나니 머뭇거리다가는 평생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그렇게 세 명의 샐러리맨이 연봉 삭감을 감수하고 나와 차린 것이 하필이면 그 어렵다던 하드웨어 스타트업. 연봉은 이전의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세 공동대표의 퇴직금을 뭉쳐 초기 자본금을 만들었지만, 시제품을 위한 금형 하나 제작하는 데에도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마땅히 보여줄 시제품이 없으니, 초기 투자를 받기도 어렵다는 것이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이다.

"자금 확보를 위한 돌파구로 크라우드 펀딩을 하려고 해도, 제대로 하려면 최소 1억 정도가 들어가요. 결국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영상 하나를 잘 만드는 데도 천 만원 단위의 비용이 들죠."

이 때문에 이미 사전에 큰 규모의 투자를 받은 뒤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업도 많다. 사실상 이들에게 크라우드펀딩은 추가 투자 유치를 위한 스펙 자료 정도로 활용되고 있는 것.

그러나 아직 초기 투자를 받지 않은 직토의 경우 프로젝트의 성공이 절실했다. 부족한 자금은 정부 지원과 유능한 팀원들의 능력으로 메웠다. 실제 직토의 가장 든든한 자원은 전문성 있는 팀원들이다. 김경태 CEO는 LG에서 선행 기술 연구를, 김성현 CTO는 카이스트에서 바이오메카닉을 공부하고 SK 텔레콤에서 헬스케어와 모바일 보안 분야를 담당했다. 서한석 CFO는 금융업에 몸 담았던 금융 전문가다.

학생과 스타트업을 연결해주는 디매치(D.match) 프로그램에서 만난 영국 유학생, 이종윤 디자이너는 학비를 대준다는 조건으로 자의 반, 타의 반 1년 간 직토에서 함께 하기로 했다. 실제 웨어러블 기기인지, 패션 액세서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세련된 직토의 디자인은 그의 작품이다. 테키(techy)하고 장비 스러운 느낌을 최소화시킨 것이 직토 디자인의 특징이다.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의 수제 팔찌 브랜드 모리(Moree)와의 스트랩 콜라보레이션을 하기도 했다. 이 특별 제작 스트랩은 프로젝트 기간에만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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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정식 출시될 예정인 웨어러블 밴드 '아키'

이 밖에도 실리콘밸리 삼성전기 출신인 김도균 프로덕트 매니저, 센텐스랩 공동창업자 출신의 최민호 엔지니어가 팀원으로 함께하고 있다.

아키 밴드 프로젝트는 앞으로 40여일 간 3만 달러만 더 모집하면 목표했던 10만 달러 모금에 성공한다. 국내 스타트업이 킥스타터에 론칭한 프로젝트 중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다. 1년 간의 노력을 다 정산하더라도 이들은 꽤 좋은 시작점 위에 서있다. 지금 이 시간, 세 명의 공동대표가 그리고 있는 아키의 향후 방향은 어떤 것일까.

"너무 소박한 얘긴데, 직원들이 다니기에 재미있는 회사가 됐으면 해요. 아직까지는 모두들 재밌어하거든요. 여자친구 만나러 가는 게 귀찮다고 할 정도로요.(웃음) 저희는 기본적인 모토가 '자기가 잘하는 것 하자'입니다.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회사도 이익을 볼 수 있는 교차 지점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저희가 남자 다섯이다 보니까 칙칙하고 남자 냄새가 많이 나요. 미모의 마케팅 홍보 여직원을 모십니다. 많은 지원 부탁 드립니다."


▲아키 밴드의 킥스타터 프로젝트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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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새롬 기자 (201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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