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다’, 스타트업 워킹맘 4인방이 말하는 일과 육아
2015년 01월 14일

"미생의 선 차장 에피소드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워킹맘으로서 공감이 안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조금 요란하게 그려지지 않았나요?"

애초 기획 단계에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엄마들은 힘든 일이 더 많겠지'했던 생각은, 워킹맘 4인방을 실제로 만난 후 박살이 났다. 거친 스타트업 판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답게 그녀들은 결코 징징대는 법이 없었다.

서울벤처인큐베이터(이하 SVI)의 한인배 실장, 블루클라우드의 권선주 대표, 마인드퀘이크의 김선혜 대표, 빙글의 서숙연 팀장이 말하는 일과 육아.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신파극이 아닌 유쾌한 성장 드라마에 가까웠던 대담 현장을 전한다.

워킹맘

왼쪽부터 SVI 한인배 실장, 마인드퀘이크 김선혜 대표, 빙글 서숙연 팀장, 블루클라우드 권선주 대표

워킹맘 서글픔, 누구나 그 정도 삶의 무게는 지고 살지요

"워킹맘으로 힘들었던 에피소드는 뭐 하나 꼽아서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죠. 하지만 어려움이 있을 때, 그건 제 선택에 따른 책임이라고 생각했어요. 삶에서 내가 당면하고 해결해야 할 여러 문제 중 하나일 뿐이죠. 워킹맘 뿐 아니라 모든 직장인이 각자 자기만의 어려움을 가지고 사니까요."

SVI의 한인배 실장은 횟수로 사회생활 27년 차에 들어서는 베테랑 워킹맘이다. 2번의 직장을 거친 뒤 99년부터 SVI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며 성장하게끔 이끌어왔다. 첫째 아들의 나이도 벌써 스물 두 살. 둘째는 중학생이다. 직장에서는 스물셋의 인턴과 함께 일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에요. 저는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특별한 비결 같은 게 있을 것 같은데, 사실 그런 건 없거든요. 대부분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해결해나가는 거예요. 회사에서 문제를 해결하면서 일과를 보내는 것처럼, 생활에서도 엄마이기에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거죠."

2000년에 모바일 게임사 이매그넷을 창업해 매각하고, 현재 블루클라우드에 이르기까지 15년 이상을 게임 업계에 몸담은 권선주 대표는 아이를 키우는 '여자'만이 힘들다는 기존 통념이 별로 와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통 성공한 스타트업 여성 대표들을 만나보면 육아도 굉장히 잘해요. 스타트업 경영이라는 게 어차피 없는 인력과 리소스 내에서 일정을 짜고 관리하는 것이거든요. 육아도 다르지 않아요. 그리고 워킹맘만 힘들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성별에 상관없이 각각의 애로사항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권선주 대표가 출산 후 단 한 가지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일할 수 있는 절대적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원래 잠이 없어 새벽 4시면 일어나 이유식을 탄다는 그녀는, 이전에는 일주일에 100시간을 일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하루 최소 한 아이당 2시간 씩은 집중해줘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일을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마인드퀘이크의 김선혜 대표는 양육에 있어 엄마의 절대적인 헌신이 꼭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주의다. 그녀에게 육아와 일은 0과 100이 극명하게 갈리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육아를 통해 현재 서비스 중인 '네스트'의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얻었다. 스마트폰만 뺏으면 울음을 멈추지 않는 네 살 딸 아이를 위해 엄마와 아이가 미리 게임 종료 시간을 정해놓는 타이머 앱을 만들게 된 것.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극성 워킹맘처럼 약을 먹으면서까지 아이에게 헌신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기를 낳아 키워보니 우리 엄마가 꼭두 새벽에 일어나서 도시락 싸주고 하셨던 것이 정말 대단한 사랑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제겐 일도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저 나름의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하고 싶어요. 이를테면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아이의 고민에 함께 동참해주는 식으로요."

그러나 네 명의 쿨한 워킹맘들에게도 아이 때문에 울었던 숱한 밤이 있었다. 빙글의 서숙연 팀장은 홍콩으로 이직한 남편과 떨어져 18개월 딸을 친정 엄마와 함께 기르고 있는 워킹맘이다. 홍콩에서의 전업주부 삶과 스타트업 워킹맘으로의 삶 중, 서숙연 팀장은 후자를 선택했다.

"저는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요건을 엄마가 충족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친정엄마, 시어머니, 아빠와 엄마가 힘을 합쳐서 100을 만들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약간 기능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죠(웃음). 하지만 엄마가 바빠서 아이 먹는 게 부실해지거나 하면 당연히 미안해요. 스타트업은 항상 일당백 모드로 일해야합니다. 늦게 퇴근하면 아이가 거의 자고 있는데,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미안하고 내가 참 부족한 엄마라는 생각도 많이해요."

생각보다 너무 덤덤해 말문을 막히게 한 네 명의 워킹맘은 모두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명제에 동의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아이에 대한 과한 죄책감도, 육아에 대한 과한 걱정도 없다. 일과 육아를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경영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 덕분이다. 일이 좋아 선택한 삶이기에 어느 정도의 어려움은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연함도 이들이 가진 내구성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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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다운 육아복지, 어떤건가요?

야근에 주말 근무도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닌 스타트업. 가진 재산이라고는 사람밖에 없는 이 작은 조직에서 '엄마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배려를 요청하는 게 쉬운 일일까?

SVI의 한인배 실장은 하루하루 생존해야 하는 스타트업에서, 엄마와 여자로서의 권리를 어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 스타트업 업계에서 워킹맘 비율은 극히 적다. 창업자 입장에서 초기팀을 꾸릴 때, 팀원으로 워킹맘 혹은 임산부를 포함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초기 4,5년은 밤낮없이 매달려도 살아남을까 말까한 것이 스타트업계의 생리이기 때문.

실제 육아휴직 제도는 스타트업, 대기업 관계없이 모든 사업체 내에서 법적으로 준수되어야 한다. 현재 육아 휴직 제도는 최대 1년 동안의 휴식을 보장하며, 해당 기간에는 기존 월급의 40%가 지급된다. 하지만 당장 본인이 맡고 있는 일을 대체해줄 사람이 없는 스타트업에서 '40% 연봉 받으며 1년을 쉬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마인드퀘이크의 김선혜 대표는 초기 스타트업을 이끄는 입장에서 미혼 팀원을 더 선호하게 된다는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마인드퀘이크의 경우 당장 6개월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초기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생존해야한다는 압박이 큽니다. 지금 시기에 아기가 있는 유부남, 유부녀를 초창기 멤버로 선택한다는 것은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니예요.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거든요."

스타트업들을 인큐베이팅한 경험이 있는 SVI의 한인배 실장은 스타트업이라면, 복지에 관한 문제도 얼마든지 '스타트업스럽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스러운' 해결 방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전통 조직에 비해 스타트업이 가지고 있는 강점은 팀원들끼리 새로운 기업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거죠. 이미 스타트업에서 일하겠다고 결정한 워킹맘이라면, 제도적 보호를 받겠다고 무작정 덤비는 사람은 아닐거예요. 열정도 있고 능력도 있지만, 동시에 아이도 키워야한다는 문제가 있고 그걸 해결해주길 바라는 입장인거죠. 스타트업에서는 팀원들이 함께 고민하고 각 팀에 맞는 솔루션을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 있어요. 규모가 작으니까, 뭐든지 우리끼리 하면 되잖아요. 거대 조직들이 정해진 규칙 안에서 개인의 권한과 이익을 찾으려 했다면, 스타트업은 함께 개인의 문제를 고민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해나가는 게 가능하죠."

스타트업 정신의 핵심, '문제의 해결'은 프로덕트 개발이나, 산업 혁신과 같은 거창한 목적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팀원 각각의 작은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고, 일상적 행복을 고안해내기 위해서도 만만치 않은 창의력과 협심, 리더쉽이 필요하다. 워킹맘을 비롯한 각 개인의 문제를 끌어안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작은 조직, 스타트업의 힘이다.

반면 권선주 대표는 워킹맘이나 워킹대디 채용에도 충분한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 블루클라우드 내에는 기혼자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스타트업의 경우 초기 멤버의 이탈률을 낮추는 게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흔히들 대표를 '을'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유부녀, 유부남의 경우 상대적으로 가정이 있다보니 이탈률이 낮습니다. 이 때문에 조직 분위기가 굉장히 안정적으로 흘러갈 수 있죠. 3년 전에는 경력 단절 엄마들을 우대해서 채용을 했었어요. 그랬더니 굉장히 스펙 좋으신 분들이 지원을 많이 하셨죠. 그 때 비교적 저렴한 연봉으로 좋은 인재들을 많이 고용할 수 있었습니다(웃음). 당시 채용된 직원분이 기획한 게임이 저희 히트 상품이 되고, 문화관광부 상까지 받았던 좋은 선례가 있습니다."

조직적 노력이 더해진다고 해도, 여전히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 내에서 대기업 수준의 육아복지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여전히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빙글의 서숙연 팀장은 일에 대한 열정이 그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이 정말 그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스타트업에서 워킹맘으로 사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에 남아있는 이유는, 이 일이 제 삶의 행복이기 때문이예요. 대기업 다니는 제 친구도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싶지만 대기업이 제공하는 유치원이나 여러 육아 혜택을 포기하지 못하는 경우를 봤어요. 하지만 전 그보다는 재밌게 일하기를 선택한거예요. 행복하게 일하는 엄마가 아기에게도 더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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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4인방이 말하는 진정한 맘프러너쉽이란

맘프러너쉽(Mom-preneurship)에 대해 물었다. 맘프러너란 맘(Mom)과 사업가라는 뜻의 안트러프러너(entrepreneur)의 조합어로, 위키피디아 정의에 따르면 '엄마와 사업가로서의 각 역할을 균형있게 수행하는 여성 기업가'를 뜻한다.

네 명의 워킹맘들은 '언제 그런 신조어가 또 생겼느냐'고 하면서도 차분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엄마로서의 기업가 정신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1년 간 전업주부로서 아이를 키우다가 작년에 마인드퀘이크를 창업한 김선혜 대표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저는 아직 사업을 시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가 정신에 대해 거창하게 정의내리진 못해요. 하지만 세상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고안해낸 솔루션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나가는 것이 스타트업의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인정의 욕구는 모든 인간에게 있죠. 엄마도 하나의 개체로 세상에 태어난 이상 타인에게 자신이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를 확인받고 싶어해요. 하지만 집안에서 아이만 바라보고 있으면, 아이에게 자꾸 바라는 것이 많아지고 여러가지 문제가 생겨납니다. 사실 엄마들도 사회에 나가면 얼마든지 더 멋진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예요."

SVI에서 기업가 정신을 교육하는 한인배 실장은 맘프러너쉽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정의를 내렸다.

"제 이해에 따르면 안트러프러너쉽은 가치 창조예요. 가치가 필요한 영역은 세상 곳곳에 있죠. 가치를 창조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창업의 목적이라면, 엄마의 사회 활동은 앞으로 내 아이가 살아갈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하지 않을까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고 말이예요. 엄마로서 내 아이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것을 꿈꾸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것, 그걸 맘프러너쉽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반면 권선주 대표는 워킹맘 대 워킹대디, 워킹맘 대 전업주부라는 이분법적 논리의 위험성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우리는 워킹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전업주부 입장에서도 억울한 게 많아요. 이를테면 어린이집에서도 워킹맘에게 우선권을 줘요. 왜 전업주부는 잠깐 아이를 맡기고 헬스클럽이나 강의를 들으러 갈 수 없는 걸까요. GDP 상승에 기여를 하라는 무언의 압박, 굉장히 잔인한 사회 시스템이죠. 앞으로는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사회가 덜 잔인한 방식으로 모든 엄마와 아빠를 껴안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담의 큰언니 격이었던 한인배 실장은 마지막으로 모든 워킹맘, 워킹대디에게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은 솔직히 알아서 다 잘하시는 분들인데, 상황적으로 그렇게 해내기가 어려운 분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결국 본인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죠. 하지만 육아로 인한 여러 가지 상황이 아프고, 힘들다는 것을 충분히 공감합니다. 힘들지, 당연히. 힘든 것 알아요. 힘내요. 곧 지나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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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새롬 기자 (201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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