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가 1조 원 투자를 감행하는 이유 – ‘화폐유통속도(Velocity of Money)’에 주목하라
2015년 07월 02일

Dollars funnel.

얼마 전, 국내 기업인 쿠팡이 소프트뱅크로부터 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원이 넘는 금액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 벤처기업이 기록한 최대의 투자유치 실적이라는 점과 상대적으로 완고하고 느린 의사결정 규모를 가진 기업계 VC(Corporate Venture Capital, 이하 CVC)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신속하게 집행한 대규모의 투자라는 점 등에서 많은 관심을 얻었다. (관련 기사)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투자 자체가 아니라 사실은 그 이면에서, “(소프트뱅크를 비롯한 기업들과 그 CVC들이) 아직 유의미한 수준의 사업적 성과를 내지 못하는 벤처기업, 혹은 스타트업에 왜 그와 같은 대규모의 투자를, 그것도 연이어 단행하고 있는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얼마 전 월스트리트(Wall Street)에서 30년 이상을 일하고 은퇴한 헤지펀드(Hedge Fund) 관계자와 꽤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를 마이클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경제학에서 말하는 화폐유통속도(Velocity of Money)라는 개념이 있다. 간단히 설명해 이는, '거래' 가치가 '돈'의 형태로 창출된 후 그 돈을 획득한 주체에서 다음 주체로 넘어가는 속도(보다 깊게는 방향성까지 포함하는 벡터의 개념에 가까우나 본문에서는 이 정도로만 다루기로 한다)를 의미한다. 즉 얼마나 빠르게 돈이 회전하는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기업의 시각에서는, 사업을 통해 '돈'을 벌고 난 후, 이 중 대부분을 임금이나 투자, 그리고 배당 등의 형태로 다음 주체로의 'Velocity of Money'가 형성된다.

마이클과 나눈 꽤 긴 시간 동안의 이야기는, 한 줄로는 “The velocity of money is now broken!”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일부 기업들(특히 IT를 위시한 기술 기반의 기업들)이 적절히 소비할 수 있는 규모를 너무 많이 넘어선 돈을, 그것도 너무 빠르게 획득하게 되었음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가장 큰 시가총액을 가진 기업들의 리스트인 S&P 500 지수를 살펴보면, 이들 기업의 거래 규모가 지난 20년 동안 10년마다 2배에 가까운 속도록 증대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해당 기업의 실적이 지난 20년간 매년 7.5%에 가깝게 증대됐을 때 달성할 수 있는 수치다.

그러나 이들 거대 기업들의 실적 증가가 7.5%에 미치지 못해 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대기업 집단이 실제로 그렇게 빠른 속도로 매년 증대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2000년대 이후의 신흥 IT 기업들의 기업가치는 기존의 경영적 프레임워크에서는 정당화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들을 설명하기 위해 PSR이라는 신규 개념이 탄생하기도 하였다 – 관련 컬럼)이며, 특히 최근에는 이와 같은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기타 기업들의 시가총액을 압도해 버리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처럼 기업들의 가치규모가 거대해 져버렸고, 특히 애플로 대표될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의 현금을 보유한 기업들이 등장하게 됨에 따라, 현재의 화폐유통속도는 과거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즉 너무 많은 돈이 기업 내에 축적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돈은 축적되어 있을 때는 어떠한 가치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즉 돈은 어떤 식으로든 소비되어야 하며, 이때 기업이라면 소비는 주로 고용창출, 혹은 신사업 등을 위한 투자의 형태로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경영환경에서 기업이 몸집을 불리는 것을 뜻하는 신규고용 창출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거대한 규모의 현금을 보유한 기업들은 투자를 통해 현금을 소비하려 할 것이 거의 확실해진다.

필자와 마이클은, 기업들이 보유한 그와 같은 엄청난 규모의 현금에 대한 소비가 결국 전체 투자 흐름을 과열시켜 버릴 수 있다는 것(마이클과 나눈 대회에서 사용된 정확한 표현은, “It can overheat the whole system!”이었다)에 동의하였다. 즉 기업들이 충분한 현금 여력을 바탕으로 비이성적 수준의 밸류에이션에 기업을 인수하거나, 혹은 비이성적인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시행하게 됨으로써 결국 투자생태계의 작동원리를 과열시켜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밸류에이션 및 투자생태계 작동원리의 과열은, 최근 애플의 비츠(Beats)에 대한 인수(관련 기사)라던지, 페이스북의 잇따른 메가 M&A 딜(e.g., What’s App, Oculus VR 등 인수) 등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이미 현실로 발생하고 있다. 아울러, 특히 일본 등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업들의 CVC 설립 열기를 통해서도 우리는 이와 같은 과열이 실제로 발생하기 시작하였음을 관측할 수 있다.

따라서, 일부 기업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스타트업을 초기에 선점하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설정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대표격인 기업이 바로 소프트뱅크인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시각에서라면, 쿠팡에 대한 1조 원의 투자는 분명 2000년 이후로 1조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 초기기업이 불과 7곳에 불과할 정도로 엄청난 것임에는 틀림이 없으나(아래 Table 1 참조), 알리바바에 초기에 투자하여 그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소프트뱅크의 초기기업에 대한 투자전략의 연장 선상에서라면 그 규모가 놀라운 것일 뿐, 실은 어찌 보면 그리 특이한 것은 아닐 수 있다.

 UntitledTable 1 2000년 이후 $1 Billion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 기업 (출처: CB Insights)

이처럼 과거와는 다른 화폐유통속도가 관찰되고 있는 시점은, 우리 기업들 역시 과거와는 다른 전략적 프레임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과열된 투자 생태계가 고착되면 기업이 전략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피인수 기업의 가치는 반감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글로벌 차원에서 VC로 유입되고 있는 거대한 자금 흐름들은 선진 생태계의 기업들은 이미 그와 같은 과열에 대비하기 시작했음의 증거가 될 것이다.

모든 것에 잉여가 발생하고 있는 오늘날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결국 가격전쟁을 피하며 가치를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신사업을 지속적으로 개척해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 기업들도 그와 같은 전략적 관점에서 정말로 진지하게 우리 스타트업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으니려니와, 지금까지 이야기한 과거와는 다른 양상의 화폐유통속도 환경 및 과열가능성이 있는 투자 생태계 환경에서는 낮은 밸류에이션에 빠르게 다양한 스타트업 포트폴리오를 선점하는 것이 기업이 반드시 취해야 할 전략적인 스탠스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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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se Lee is a career founder and now is the founder and Managing Partner at 541 Ventures - a Los Angeles-based VC that invests in frontier tech companies predominantly in their seed and pre-seed stage. Before founding 541, Eunse has served as the Managing Director at Techstars Korea - the first- ever Techstars’ accelerator for the thriving Korea’s ecosystem, after co-founding two prior LA-based VC firms. Having his root in the strategy world, he empowers deeply technical startups to start an industry and strives to be a catalytic partner for them in their journey to suc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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