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기업은 스타트업을 인수할까? : 작고 빠른 벤처의 힘
2015년 02월 08일

product_evolution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을 그대로 베끼는 현상에 대한 내 의견은 전과 변함없다. 감정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느냐, 아니면 그들이 하는 서비스를 그대로 카피하느냐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문제이다. 인수 가격이 1,000억 원인데, 그보다 더 저렴하게 대기업이 직접 더 훌륭한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면 그대로 카피하는 게 맞다. 그런데 잘되는 경우도 있지만, 돈과 자원이 훨씬 더 많은 대기업이라고 항상 성공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그렇게 뛰어난 인재들과 돈이 있는 구글이 작은 회사들이 하는 서비스를 금방 카피해서 이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항상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대표적인 예로 페이스북을 모방하려다 실패한 구글플러스가 있다(물론, 이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수십 가지의 서비스가 존재한다). 네이버도 마찬가지다. 네이버가 잘하는 작은 스타트업의 서비스를 카피하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이 중 성공하는 것도 있지만, 직원 10명 이하의 회사가 운영하는 서비스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접는 것 역시 목격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다시 작고 빠른 회사들의 product iteration, 그리고 그 결과물인 ‘사용자 경험의 오너쉽’ 이 바로 대기업도 절대로 넘지 못하는 커다란 진입 장벽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슬랙(Slack)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 나도 조금은 써봤는데 – 우린 큰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슬랙을 제대로 사용할 기회가 없다 – 기존의 협업 제품들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그리고 편리하게 잘 만들었다.

껍데기만을 보면 다른 비슷한 제품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깊게 사용해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미묘한 디테일과 사용자 경험이 뛰어나다. 아마도 수많은 사용자의 피드백과 제품활용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기능과 UI를 빠르게 고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속도와 민첩성은 대기업들이 카피하기 쉽지 않다.

또 다른 예로는 마케팅용 이메일 서비스 메일침프(MailChimp)를 들 수 있다. 메일침프는 내가 굉장히 자세히 사용해 봤는데, 이렇게 모든 사용자 시나리오를 생각한 제품이 과연 존재할까라는 의문이 들게 할 정도로 거의 ‘완벽하게’ 만든 제품이다. 메일침프를 사용하다 보면 “와, 이런 것까지 생각을 했다니” 라며 감탄을 하는 경우가 몇 번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완성도 높은 제품을 출시하지는 않았다. 유저수가 늘어나고, 여러 가지 사용자 경험과 시나리오들이 발생하면서 이에 발맞춰 지속해서 제품을 수정한 결과다. 메일침프는 아직도 이런저런 실험을 하면서 기능도 조금씩 추가하고, 바꾸며 UI도 계속해서 수정하고 있다.

슬랙이나 메일침프나 이제는 ‘작은 스타트업’ 이라고 정의하기엔 모호하지만, 이들도 한두 명이 구멍가게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벤처기업들이다. 그동안 대기업들이 이런 서비스를 시도해본 적이 없었을까? 무수히 많고, 실은 아직도 비슷한 서비스들을 계속 직접 하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워낙 시장이 크고 벌 수 있는 돈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자원이 많은 대기업도 오랫동안 수만 번의 iteration을 통해 사용자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를 소유하고 있는 스타트업들과 맞붙기가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겉으로만 보면, '대량 메일 솔루션? 그거 그냥 우리가 만들면 되는데'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메일침프를 통해 매달 700만 명의 사용자들이 100억 개 이상의 이메일을 보내면서 형성된 ‘관계’와 제품에 녹아들어 가 있는 ‘사용자 경험’이란 아무리 돈과 인력이 있어도 단시간 내에 카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들이 직접 하지 않고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것이다. ‘한국 대기업들도 할 말 많다‘에서 내가 강조했지만, 대기업들한테 높은 가격에 인수되고 싶다면 이런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삼성이나 네이버가 내가 운영하는 스타트업의 서비스를 그대로 카피했는데, 훨씬 더 잘 되어서 우리 회사가 망하면 그건 대기업의 횡포가 아니라 우리 서비스가 아직 부족해서이다.

원 출처: THE STARTUP BIBLE
이미지 출처: ONEDESK

0 0 votes
Article Rating
배기홍 대표는 한국과 미국의 네트워크와 경험을 기반으로 초기 벤처 기업들을 발굴, 조언 및 투자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스트롱 벤처스의 공동대표이다. 또한, 창업가 커뮤니티의 베스트셀러 도서 ‘스타트업 바이블’과 ‘스타트업 바이블2’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어린 시절을 스페인에서 보냈으며 한국어, 영어 및 서반아어를 구사한다. 언젠가는 하와이에서 은퇴 후 서핑을 하거나, 프로 테니스 선수로 전향하려는 꿈을 20년째 꾸고 있다.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0
Would love your thoughts, please comment.x
()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