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의 공동창업 개발자
2013년 10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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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라면 자주 접하는 상황이며 개발능력이 없는 창업가 또한 자주 접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거의 매주 경험하는 상황인데 지난 주에 또 이런 일이 있었다. 개발은 못하지만 세상을 보는 시각, 열린마음으로 배움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기술이 굉장히 맘에 들고 탐나는 창업가가 우리한테 투자를 받고 싶다면서 왔다. 문제가 - 큰 문제 - 하나 있다면 1인 창업가 였고, 개발을 할 수 있는 full-time의 technical 공동 창업자가 없었다. 하지만 외주를 통해서 이미 제품은 개발이 되었는데, 내가 외주의 종말이라는 글에서 주장하는거와는 달리, 남이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이쁜 UI와 깔끔한 기능들로 무장된 좋은 모바일 앱이었다. 또한, 이 외주 개발자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면서 일을 했고 서로 궁합이 잘 맞아서 공동 창업자로 영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로써는 이 개발자에게 월급을 줄 형편이 되지 않아서 월급을 줄 수 있을 만큼의 투자를 받으면 바로 full-time 공동 창업자로 조인하겠다는 다짐을 받아 놓은 상태였다. 익숙한 상황이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 하지만 개발 능력이 없는 - 똑똑한 창업가가 그동안 저축한 돈을 들여 외주 개발회사에 제품 개발을 맡겼고; 어느정도 완성된 베타 제품이 시장에서 반응이 괜찮았다; 그래서 그는 외주 개발자한테 아예 같이 스타트업을 해보지 않겠냐라고 물어보지만 그 외주 개발자는 결혼도 했고 자식들까지 있어서 당장 월급을 받지 못하면 안된다면서 본인이 가족들을 부양하면서 살려면 한 달에 최소한 얼마의 비용이 필요하니, 그 정도를 최소한 1년 동안 받을 수 있는 만큼의 투자를 유치하면 조인하겠다고 한다.

고민을 좀 했지만, 난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런 "조건부 공동창업자"들의 공통점은 바로 "공동창업자"가 될만한 자격을 얻을 정도로 회사의 비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들어오면 조인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회사의 비전을 믿고 본인이 팀에 합류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면 투자금과는 상관없이 같이 일을 해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투자자들 또한 이런 믿음과 행동을 보고 싶어할 것이며, 그때 투자는 성사된다. 그 반대의 경우는 - 개발자가 합류하는 조건으로 투자하는 - 거의 본 적이 없다. 물론, 이건 그 1인 창업가가 개발자를 설득하지 못해서 일수도 있는데, 이 또한 투자자들에게는 걱정이 되는 상황이다. 
다른 이유는 투자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조금 더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다. 내가 지난 주에 만났던 창업가가 이 조건부 공동창업 개발자를 회사로 데려오기 위해서 필요한 투자금은 350,000 달러였다. 그 정도의 돈이 은행계좌에 있어야지만 그 개발자가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주하고(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개발자다) 수개월 동안 마음의 평온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을거라고 한다. 우리가 50,000 달러를 투자한다고 가정해보자. 만약에 남은 300,000 달러를 유치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 그럼그 개발자를 계속 외주로 활용을 하면서 우리의 투자금만 사용하게 된다. 투자자마다 다르겠지만 이 상태로는 아마도 개발자를 full-time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필요한 남은 300,000 달러를 선뜻 투자할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위에서 내가 언급한 이유들 때문에.

아주 운이 좋아서 필요한 350,000 달러 투자가 되어 개발자가 공동창업자로 조인했다고 가정해보자. 시간이 가면서 1년만에 투자금을 다 소진했지만 매출은 커녕 제품 자체도 pivot을 여러 번 해서 제품의 완성도에도 문제가 있다(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이 이런 과정을 겪는다). 돈을 다 써서 이제 다음달 월급을 주지 못하는 상황까지 오면 월급을 위한 투자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던 이 조건부 공동창업가는 계속 회사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다른 곳으로 가면서 이 스타트업은 원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물론 이는 지극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투자자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내 짧은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때 "투자금이 들어오면 full-time으로 조인할 거예요"라는 팀 중 잘 된 케이스를 거의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이런 팀에는 투자를 하지 않을거 같다.

 


Editor’s note : 배기홍 대표는 한국과 미국의 네트워크와 경험을 기반으로 초기 벤처 기업들을 발굴, 조언 및 투자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스트롱 벤처스의 공동대표이다. 또한, 창업가 커뮤니티의 베스트셀러 도서 ‘스타트업 바이블’과 ‘스타트업 바이블2’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어린 시절을 스페인에서 보냈으며 한국어, 영어 및 서반아어를 구사한다. 블로그 baenefit.com을 운영하고 있으며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스타트업 생태에 대한 인사이트있는 견지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스타트업과 창업자들을 위한 진솔하고 심도있는 조언을 전하고 있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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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홍 대표는 한국과 미국의 네트워크와 경험을 기반으로 초기 벤처 기업들을 발굴, 조언 및 투자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스트롱 벤처스의 공동대표이다. 또한, 창업가 커뮤니티의 베스트셀러 도서 ‘스타트업 바이블’과 ‘스타트업 바이블2’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어린 시절을 스페인에서 보냈으며 한국어, 영어 및 서반아어를 구사한다. 언젠가는 하와이에서 은퇴 후 서핑을 하거나, 프로 테니스 선수로 전향하려는 꿈을 20년째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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