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의외로 ‘뭐 먹지?’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점심때가 되면 누구도 이 질문을 피해갈 수 없죠. 부디 “그냥 아무거나 먹자”고 말하지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때부터 그 ‘아무거나’를 정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거든요.
음식은 혼자 먹을 때보다 누구와 같이 먹을 때가 더 맛있죠.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은 때로 두렵기까지 한 일입니다. ‘집단’이라는 생존전략을 통해 태고부터 살아남아 온 이 사회에서, 혼자 먹는 일은 어쩌면 본능에 어긋나는 행위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인류역사를 하루로 본다면 근대화는 겨우 1분 전의 일이라고들 하잖아요. 1분 전까지 혼자 먹는 행위는 집단의 먹이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낙오된, 즉 생존 가능성이 제일 낮은 자의 징표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태연한 척 당당한 척 해봤자 어쩐지 눈치가 보인데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습니다. 여러 영화 속 혼자 밥 먹는 장면들은 그래서 그렇게 외로워 보이는지도 모르겠네요.
집단이 형성되고 또 유지되는 일은 ‘같이 먹는다’는 행위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닐까요. 세상 모든 공동체는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눠 먹는 일로부터 시작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스타트업이나 회사도 마찬가지 같아요. ‘컴퍼니(company)’라는 단어는 ‘같이 한다’는 의미의 접두어 ‘컴(com)’에 ‘빵’을 뜻하는 프랑스어 ‘파네(pané)’가 붙은 말이라죠. ‘한솥밥 먹는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같이 먹는 일’이 생각보다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믿음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카모메 식당>을 보고 나서 굳어졌습니다. 카모메 식당은 핀란드 헬싱키 길모퉁이에 뜬금없이 문을 연 일본식당입니다. 손님들은 이곳에 저마다의 불행을 안고 찾아옵니다. 그러나 이들은 불행을 과장하거나 과시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별말도 않고 그냥 함께 주먹밥을 만들어서 나눠 먹습니다. 유쾌하게 계피롤을 구워서는 둘러앉아 커피랑 먹기도 합니다. 별다른 말 없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맛난 음식들을 만들어 먹고, 그렇게 자연히 공동체를 이뤄가는 동안 스스로 살아갈 힘을 되찾죠. 이 영화에서 같이 먹는 행위는 고통과 외로움에 함몰되지 않는 방법인 듯 보입니다.
근데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일 아닌가요? 매일 세 번 평생을 하루같이 하는 일이 식사잖아요. 그러니 식사는 가장 보통의 일이어야 마땅한데 도무지 보통의 일이 되지 않습니다. 평생 매일 반복한다 해도 어느 지친 저녁 밥상에 앉았을 때 느닷없이 사무치는 밥 한 그릇의 애잔함을 피할 수 없습니다. 끼니의 간곡함 앞에서 문득 쓸쓸해질 각오도 필요합니다.
식사라는 일은 더 나아가 화합이나 치유의 행위로 승화되기도 합니다. ‘소울푸드’라는 말처럼 사연 있는 한 끼 식사 앞에서는 녹아내리듯 뭉클해지곤 합니다. 누군가는 정말로 와르르 무너져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하죠. 밥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눠 먹는 기분 좋은 한 끼 식사만큼 사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우리 삶에 또 있을까 싶어지네요.
카모메 식당을 운영하는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와 미도리(카타기리 하이리)는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미도리씨, 만약에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뭘 하겠어요?”
“글쎄요… 제일 먼저 아주 맛있는 식사를 하고 싶어요.”
“그쵸? 저 역시 마지막으로 엄청나게 맛있는 걸 먹고 싶어요. 아주 좋은 재료를 사다가 많은 음식을 만들어서 제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열고 싶어요.”
이 장면에서 저도 내일 세상이 끝장난다면 뭘할까 생각해봤습니다. 저 역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편안한 곳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며 보내고 싶습니다. 그 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싶기도 하구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일은 삶 속 대수롭지 않은 소소한 축제 같아요. 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우릴 살게 하고 공동체를 회전시키는 동력이 아닐까 싶네요.
스타트업의 하루는 늘 고되지만, 어쩌면 모든 게 항상 잘 풀릴 수만은 없겠지만, 어쨌든 지금 둘러앉아 따뜻한 밥 한 끼를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건 축복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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