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난다
마치 이런 세상에
실망한 듯이
-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그래비티>의 두 주인공을 보고 언젠가 들었던 이 하이쿠가 생각났습니다. 푸른 행성의 경이로운 절경 위를 유영하며 허블망원경을 수리하던 우주비행사 매트(조지 클루니)는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에게 보란 듯이 묻습니다. “우주에 나와보니까 좋은 점이 뭡니까?” 스톤 박사는 발아래 펼쳐진 장관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답합니다. “적막(The silence)이요.” 그 모습이 마치 저 시 속의 실망한 나비 같아 보였습니다.
하이쿠의 매력은 간결함에 있죠. 한 줄의 은유가 읽는 사람을 여백 속에 스며들게 합니다.
<그래비티>는 꼭 하이쿠 같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전체가 ‘생명’에 대한 한 줄의 은유로 짜여있기 때문입니다.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던 주인공들은 위성파편과 충돌해 우주에서 조난됩니다. 이들을 지켜보는 관객은 우주공간 속에 내던져진 인간이란, 허무에 가까울 만큼 미약한 존재라는 걸 ‘체험’하게 됩니다. 영화는 그 티끌 같은 인간이 우주 속을 헤매는 모습으로 시작해, 다시 지구 땅을 밟고서는 장면을 끝으로 완성되죠. 이 과정 전반에 생명에 대한 은유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지구로 귀환하기 위한 탈출선 안에서 스톤 박사는 우주복을 벗고 태아처럼 웅크립니다. 전선들은 탯줄처럼 무중력 속에 흩어져 있습니다. 대기권을 뚫고 바다에 불시착하며 스톤 박사는 마침내 지구로 귀환합니다. 마치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옛날 생명의 기원이 우주에서 지구로 내려올 때처럼요.
바닷속의 스톤 박사는 헤엄을 쳐서 위로 올라갑니다. 수면 위로 오르는 동안 종의 진화를 요약하듯 다양한 생명이 카메라를 지나쳐갑니다. 먼저 작은 물고기가 지나가고, 이어서 좀 더 큰 물고기가 지나가고, 곧 다리가 달린 개구리가 지나갑니다. 마침내 스톤 박사가 물 밖을 나와 육지에 올라설 때, 카메라는 육지 생명의 그 첫발을 힘차게 클로즈업합니다.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는 칼 세이건의 말이 떠오르는 가슴 벅찬 클라이막스였습니다.
저는 <그래비티>를 ‘내 인생의 영화 BEST 5’ 중에 하나로 꼽는데요. 영화를 보고 LPG 가스통으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아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극도로 몰입한 나머지 마치 영화 전체가 10분 만에 지나간 듯한 혼란을 느꼈습니다.
제가 <그래비티>를 관람한 후 받은 충격은 말하고자 하는바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표현한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실 대단하달 게 전혀 없죠. ‘허블망원경을 손보던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잔해와의 충돌이라는 사고로 조난해 우여곡절 끝에 지구로 귀환한다’, 줄거리는 겨우 이 한 줌입니다. 워낙 간략한 스토리라 등장인물도 세 명이 전부입니다. 그마저도 한 명은 시작하자마자 죽죠. 간결하고, 간결합니다. 감독이 품은 미니멀리즘에 대한 신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미니멀리즘의 토대 위에 ‘생명(그리고 생명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존재와 존재 간의 끌어당김)’에 관한 한 줄 은유를 그려내기 위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선택한 것은, 놀랍게도 ‘기술’이었습니다.
미니멀리즘의 설정들을 해치지 않고도 입체감을 주기 위해 3D 그래픽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그래비티>는 평면을 빠져나와 입체로, 2차원을 떠나 3차원으로, 플롯의 입체를 버리고 체험의 입체로 가버렸습니다. 이 영화는 기교를 과시하고 싶어 기술을 사용한 게 아니라, 품고 있는 주제와 철학을 제대로 표현하고자 기술을 사용한 최초의 3D 영화로 기록될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비티>의 애티튜드로부터 기술을 써서 창작행위를 하는 우리 스타트업이 ‘기술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3D 영화들은 절제 없이 기술을 과시한 나머지 보는 사람을 머리 아프게 했지 않나요? <트랜스포머 3> 같은 영화들을 보고 현기증을 느낀 사람은 저뿐만이 아닐 것 같네요.
앱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덕지덕지 많은 탭을 욕심내고 불필요한 애니메이션이 난무하는 앱은 기획의도를 가리고 사용자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3D 그래픽 기술도, 앱을 만드는 기술도 둘 다 아직 미니멀리즘의 토대 위에서 구현되는 게 훨씬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둘 다 나온 지 아직 얼마 안 된 기술이고, 따라서 크고 복잡한 구조를 혼란 없이 처리할 만큼 고도화가 되지 않았으며, 수용자 역시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텔레그램과 카톡을 비교해볼까요. 텔레그램의 간결함은 감동입니다. 꼭 필요한 기능만 있어 편하고 빠릅니다. 반면 카카오톡의 채널 탭은 많은 사람에게 증오의 대상입니다. 저는 왓챠의 오랜 헤비유저인데요. 얼마 전 왓챠도 ‘영화 추천과 평가’라는 핵심을 놓치고 욕심을 부려 비난을 샀다가 장문의 사과편지와 함께 예전 구조로 돌아온 사례가 있었죠. 이런 예는 끝도 없겠습니다.
모든 게 ‘아직은 복잡한 구조를 혼란 없이 녹여낼 수 있는 기술기반이 없고, 수용자 역시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래비티>가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현시점의 기술은 하나의 확고한 주제를 제대로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춰 사용하는 편이 더 맞는 방향이지 않을까요.
음… 근데 뭐죠 이 싸한 느낌은. 생각해보니 모두 다 제가 저 자신한테 하는 말이네요. 맘 속에서 “너나 잘하세요”하고 말하는 이영애 씨가 보입니다.
이미지 출처: Warner Br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