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관람가 30. <터널> 부모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아들딸은 안전합니다
2016년 09월 23일

우리가 딛고 선 땅이 흔들렸습니다. 그 위에서 사는 사람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의 재난 대처능력도 흔들렸습니다. 재작년 세월호 사태, 지난해 메르스 사태, 다시 또 지진 사태로 우리 정부가 얼마나 재난 대처능력이 없는지 드러내며 실망을 안겨주네요. 기대도 안 했지만 이렇게까지 실망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당혹스럽습니다.

이 시점에서 보기에 <터널>은 섬뜩하기까지 한 영화죠. 재난을 둘러싼 묘사가 너무 생생한 나머지 자꾸만 현실에 비춰보게 되는 탓입니다. 주인공 정수(하정우)는 출장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터널이 무너지며 매몰됩니다. 차에 식량이라곤 500mL 생수통 두 병과 생일 맞은 딸아이를 위한 케이크가 전부 그리고 휴대폰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만이 마지막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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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듬더듬 진행되는 구조를 지켜보자니 속이 탑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우릴 답답하게 만드는 건, 안과 밖의 온도 차가 너무 크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이 재난을 끝끝내 3인칭으로서 대합니다. 끝까지 정수를 구하려 한 구조대장 대경(오달수)과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 단 두 사람을 빼면, 어쩌면 사회 시스템 전체가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부가 중요히 여기는 건 재난에 매몰당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태를 지켜보는 사회의 이목이었죠. 고통만이 1인칭이었습니다. 부정부패와 부조리라는 사회구조가 심어놓은 이 재난은 오로지 터널에 매몰된 정수가 감당해야 했습니다.

무섭습니다.
허구로 느껴져야 마땅한 이 장면이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3인칭으로 일관하는 정부는 우리도 아는 정부였습니다. 부정부패를 파서 뒷돈을 챙긴 기업도 우리가 아는 기업입니다. 무책임하고 예의 없는 언론도, 우리가 아는 언론입니다. 참담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고 싶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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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주 지진에서 고등학생들은 더는 어른들 말을 듣지 않았다죠. 학생들은 “가만히 앉아서 자습하라”는 말을 거부하고 학교를 뛰쳐나왔습니다. 현명했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간 일련의 사태들을 겪은 이 시점에서 가장 논리적인 판단이란 아래와 같지 않을까요.

국가는 국민의 재난해결에 대해 무능하다.
국가 아래 사회구조는 마찬가지로 유능할 수 없다.
그러므로 떠넘겨진 사회적 재난은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이 재난 상황이라는 게 비단 천재지변이나 불의의 사고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일상에도 재난은 옵니다. 이를테면 노년의 실업 같은 것이 오죠. 필요 이상으로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취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일상의 재난상황도 부조리한 시스템이 심어놓은 사회적 재난입니다. 국가는 결국 무능하고, 고통은 개인이 감당하고 있죠.

'과대평가 되어있었구나'라는 느낌입니다. 우리 사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논리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는 물리적으로건 사회적으로건 우리의 안전에 대해 놀라울 만큼 진지하게 대처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사회 이목과 엮여있는 온갖 실리와 주변 입장을 셈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자들이 우리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영화 속 정수는 결국 우리 모두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어느 시점에선 재난이 들이닥칠 수 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삶의 어떤 터널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거대한 실업률과 승자독식의 갑질 사회라는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놓고 보면, 닥쳐올 재난은 아마도 밥벌이와 관련된 일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네요. 그러니 젊어서 대비해야 하겠습니다. 최소한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는 만큼이라도 힘을 키워두어야 합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겠다 말하면 부모님들께선 대부분 이렇게 묻습니다. “그거 안정적이지 못한 일 아니냐?”

네, 맞습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실제로 망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되묻고 싶습니다. 지금 시대에 안정적이라는 게 과연 뭘까요? 며칠 전 발표된 기사를 보니 34명을 뽑는 공무원시험에 8,748명이 지원했다고 합니다. 경쟁률 257:1인 시험을 몇 년씩 준비하는 게 안정적인 길일까요? 사람이 미래라던 회사는 갑자기 신입사원을 명예퇴직시키려고 합니다.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안정적일까요?

진짜 문제는 사실 따로 있습니다. 어찌어찌 취직해도 노후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린 오래 산다는데, 어쩌면 100살을 넘긴다는데요. 그러니 젊어서 노후에 쓸 돈을 미리 벌어놓거나 아니면 오래도록 밥벌이를 할 수 있도록 사회에서 내가 계속 쓰임이 있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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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결국 결론은 단순해집니다. 뭐라도 잘하는 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문제는 실력입니다. 실력만 있으면 뭘 해도 안정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길게 보면 역으로 스타트업은 안정적인 길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을 하면 고생하는 점도 많지만, 어쨌든 스타트업은 내 실력을 키우는 데 있어 가장 효율적인 길 중 하나라는 사실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설령 운이 없고 천재지변과 병마가 몰아닥쳐 망한다 해도, 그전까지 열심히 실력만 쌓아놓는다면 다음 직장은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4~50대에 비하면 2~30대는 아직 그렇게까지 돈 쓸 일이 많지 않잖아요. 지금 연봉 몇백 더 받아서 뭐하겠습니까. 소고기 사 먹겠죠. 2~30대는 돈이 아니라 실력을 벌어야 하는 기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실력이 있어야만 닥쳐올 재난에 함몰되지 않을 만큼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님들께서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불효자식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영화 이미지 출처: 쇼박스

김상천 coo@slogup.com 슬로그업의 영화 좋아하는 마케터. 창업분야 베스트셀러 '스타트업하고 앉아있네'의 저자입니다. 홈·오피스 설치/관리 플랫폼 '쓱싹'을 운영하고 앉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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