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관람가 22. <소울 서퍼> 서핑 스타트업
2016년 07월 22일

1군대에 있을 때 신문에서 한쪽 팔로 서핑을 하는 배서니 해밀턴(Bethany Hamilton)을 처음 봤습니다. 그 모습이 묘해서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사진을 오려 관물대에 붙여두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진이었습니다.

프로 서퍼 배서니 해밀턴. 출처: Roxy Women's Surf Festival

<소울 서퍼>의 실제 모델 배서니 해밀턴은 왼쪽 팔이 없는 서퍼입니다. 어려서부터 촉망받는 서퍼였던 그녀는 13살 때 상어에게 왼팔을 잃었습니다.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는 팔이 뜯긴 채 혈액의 60%를 잃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의사는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했습니다.

파도 위에서 균형을 잡아야 할 서퍼가 한쪽 팔을 잃는다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실일 것입니다. 어린 그녀에게 얼마나 큰 공포와 좌절이 엄습했을지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배서니는 불행에 함몰되지 않았습니다. 사고가 있은 지 한 달 뒤 그녀는 다시 서핑을 시작합니다. 모두가 안 될 거라고 말했지만, 배서니는 매일 바다로 나가 파도를 맞았습니다.

영화는 그런 그녀의 이야기입니다. 배서니의 자서전 ‘A True Story of Faith, Family, and Fighting to Get Back on the Board’를 토대로 만들었습니다. 제대 후 배서니를 잊고 살다가, 얼마 전 브런치에서 서핑에 관한 글을 읽으며 배서니의 이야기가 영화로 나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찾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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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 이빨 자국이 나 있는 배서니의 보드. 현재 캘리포니아 서핑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영화는 괜찮습니다. 무겁게 내려앉거나 억지 감동을 강요하지 않은 점이 다행이었습니다. 하와이 해변의 흰 파도를 휘젓는 상쾌한 서핑 장면들과 그 위에 흐르는 Two Door Cinema Club, Kasabian의 시원한 음악이 어우러져 요즘 같은 여름에 보기 좋습니다. 음… 아닙니다. 그래도 영화는 별로라고 해야 맞는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요. 일단 연출이 겁나 촌스럽습니다. 80년대 할리우드 영화처럼 과장된 연출입니다. 또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짐작되는 감독이 자꾸 영화로 전도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잘 만든 영화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이 영화를 재밌게 봤습니다. 무엇보다 배서니 해밀턴의 얘기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볼만하다는 거냐 아니라는 거냐, 라고 물으신다면 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연출이 좀 촌스럽다는 점과 자꾸 예수님을 소개해주려고 한다는 점, 이 두 가지를 감안하고 본다면 충분히 재밌게 볼만한 여름영화입니다. 볼거리가 풍성하고 감동도 있거든요. 참고로 하와이 해변을 가르는 훈남훈녀 서퍼들도 많이 나옵니다. 영화를 보며 그 와중에 예쁜 여자는 팔 하나가 없어도 예쁘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걸 보니 전 정말 쓰레기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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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서니 해밀턴을 연기한 안나소피아 롭.

마음을 추스른 배서니는 바다로 돌아가기를 결심합니다. 서핑대회도 참가신청을 합니다. 배서니의 아버지는 그런 그녀에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이때 배서니는 이렇게 답합니다.

쉬울 필요는 없어요. 가능하기만 하면 돼요.”

그러나 한쪽 팔로 서핑을 한다는 건 해보지 않고는 가능한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서퍼들은 파도를 타기 직전 보드에 올라서는 순간을 ‘파도를 잡는다’고 표현하는데요. 한쪽 팔을 잃은 배서니에게 파도는 좀체 잡히지 않습니다.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물에 잠기기를 수없이 반복합니다. 그때마다 배서니는 다시 도전합니다. 수많은 실패를 지나 마침내 파도를 잡고 일어서는 그 순간, 배서니는 앞으로 살아갈 힘을 되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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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은 삶에 대한 은유가 있는 스포츠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서핑을 해본 적이 없지만, 서퍼들이 왜 그토록 홀려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보드 위에 엎드려 패들링(Paddling)을 할 때, 서퍼들은 손으로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갑니다. 마침내 기다리던 파도가 찾아오면 힘차게 테이크오프(Take off)를 하며 일어섭니다. 이때 시선은 아래를 봐서도 안 되고, 근처를 봐서도 안 되며, 멀리 전방을 바라봐야 한다고 합니다. 숙련된 서퍼들조차도 매번 테이크오프에 성공하지는 못합니다.

누군가 처음으로 테이크오프에 성공하는 순간을 상상해봅니다. 문득 패들링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시야가 펼쳐지겠죠. 파도 위에서 열린 세계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일 것입니다. 등골이 서늘하게 짜릿한 순간일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도 패들링을 하고 테이크오프를 합니다. 서퍼들이 멋진 파도를 기다리듯 기회를 기다립니다. 물론 공짜로 바라지는 않습니다. 파도가 찾아올 때 멋지게 올라탈 준비를 위해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합니다. 끊임없이 뭍으로 나를 밀어내는 파도에 맞서 조용히 엎드린 채, 꾸준히 팔을 저어 조금씩 나아갑니다. 그리곤 멀리 전방을 바라보며 파도를 기다립니다. 서퍼들이 파도를 잡듯, 마침내 기회를 잡아 올라서는 순간 등골이 서늘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넓게 트인 시야 속에서 유려한 성장곡선을 그리며 물살을 가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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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밑으로 가라앉는 건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얼른 추슬러 다시 오르면 다음 파도가 또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가라앉을 일을 걱정하거나, 큰 파도 앞에서 겁을 낼 필요는 없겠습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기회를 잡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물론 파도에 올라선 후엔 집중력을 잃지 말고 균형을 유지해야겠죠.

 

이것은 아주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삶은 서핑과 같아요.

파도에 휩쓸린다면, 곧바로 다시 일어서세요.

다음에 파도 너머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Life is like surfing.

When you get in the impact zone, get back up.

You never know what’s over the next wave.”

-배서니 해밀턴

 

*서핑지식에 관한 내용은 Ryan Kim님의 브런치를 참고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Movie Images © FilmDistrict

김상천 coo@slogup.com 슬로그업의 영화 좋아하는 마케터. 창업분야 베스트셀러 '스타트업하고 앉아있네'의 저자입니다. 홈·오피스 설치/관리 플랫폼 '쓱싹'을 운영하고 앉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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