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에는 얼마나 많은 히어로가 있을까요? 이건 상당히 까다로운 질문입니다. 마블 자신들조차도 정확한 숫자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블 유니버스는 77년이라는 시간동안 우주 전체로 뻗어나가며 어벤져스, 디펜더스, 엑스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등과 그에 맞선 수많은 악당들을 만들어내며 방대해졌습니다.
그나마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자료는 마블닷컴의 ‘마블 유니버스 위키’입니다. 여기엔 현재까지 무려 18,860명의 캐릭터가 등록되어 있네요. 황당할 정도로 많은 숫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누락이 있어 정확한 숫자는 스탠 리조차 모른다는 게 정설이라네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싶어지는 방대함입니다.
약 1만9천, 이들 중에 가장 작은 히어로는 누굴까요? 이건 쉽죠. 짐작하시다시피 마블의 가장 작은 영웅은 앤트맨입니다. 그래서 앤트맨은 특별합니다. 다른 히어로들이 보다 거대하고, 그러므로 강력하고, 나아가 폭발적이고자 할 때 앤트맨은 거꾸로 작아졌습니다. 작은 점에 힘을 집중해 더 강한 펀치를 날립니다. 잘 보이지도 않고 면적도 작으니 상대 입장에선 여간 걸끄럽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앤트맨의 가면 아래 정체, 스콧 랭도 마찬가지로 작은 존재입니다. 흔히 히어로들은 거대한 정체를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막강한 재력의 억만장자이거나, 세기의 천재 과학자거나, 생체실험을 통해 인간한계를 뛰어넘은 자들인 식이죠. 앤트맨은 아닙니다. 그냥 좀 머리 좋은 동네 딸바보 아빠일 뿐입니다. 히어로답지 않게 베스킨라빈스에서 일하다가 짤리는 굴욕까지 당하죠.
<앤트맨>은 오락영화지만 ‘작은 것의 힘’ 그리고 ‘큰 적을 상대하는 법’은 어떤 우화로서 비춰볼 수 있습니다. 다른 히어로들이 막강한 부와 힘을 뒤에 둔 대기업이라면, 작은 앤트맨은 그야말로 스타트업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해서요.
작다는 것은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많은 스타트업들에게 영감을 준 책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수업’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작은 개미는 10층 빌딩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 그러나 코끼리는 3층 빌딩에서 떨어져도 중상을 입거나 죽는다.”
사업 초기엔 볼륨을 작게 유지해 리스크를 줄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비전에 앞서 생존이 우선이라는 이야기이자, 욕심내거나 조급해하지 말고 안으로 딴딴해지라는 소리였습니다.
중요한 말인 것 같습니다. 영화 속 앤트맨이 보여줬듯이 사이즈가 작으면 생존에 유리합니다. 실제로 때마다 올라오는 ‘스타트업 실패 이유 모음’ 기사들을 보면 무리해서 사업규모를 키운 탓에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힐 때까지 규모를 최소로 유지해 고정비를 낮추는 것은 초기 스타트업에게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초기 스타트업의 구성원은 최소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어야 좋은 것 같습니다. 사람이 없으니까 한 사람이 여러 사람 몫을 하는 것이죠. 프론트 개발자도 백엔드를 볼 수 있거나, 마케터도 디자인을 해야 일이 수월다는 사실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즉 2인분 이상 일해서 몸으로 때워야 하죠. 흑흑 여러분 부디 밥도 2인분 이상 드시길.
작으면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다
‘작게 유지하기’는 비단 초기 스타트업에게 국한되는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잘 된 스타트업들의 사례를 보면 보면 굳이 커야 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단적인 예로 1조 원 이상을 받고 페이스북에 인수될 때 인스타그램의 직원 수는 10명이었다죠.
작은 조직의 힘은 효율성입니다. 작으면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습니다. 영화 속 앤트맨은 ‘작다’는 장점을 활용해 영리하게 전투를 펼칩니다. 특히 팔콘과의 전투씬에서 이점이 돋보이죠. 치고받아서 때려눞히는 대신, 앤트맨은 팔콘의 기계수트 속으로 들어가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방식으로 승리합니다.
이렇게 효율적으로 싸우기에 앤트맨은 팔콘을 넘어 아이언맨 같은 메인 히어로와도 대적할 수 있는 강한 히어로로 성장합니다. 만약 앤트맨이 힘대힘으로 아이언맨이나 헐크 같이 거대한 적을 상대하려고 한다면 무참히 깨질 게 뻔합니다. 근본적인 힘의 격차가 너무 크니까요.
작은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상대할 때도 이런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힘대힘으로는 승산이 없습니다. 작은 조직만이 가진 유기체적인 팀웍과 소통능력, 유연함, 그리고 스피드를 활용해 영리하게 싸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작은 자만이 볼 수 있는 시야라는 게 있으니까요.
<앤트맨>에서 아직 초보 히어로 티를 내던 스콧은 <캡틴 아메리카:시빌워>에 이르러 성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간 작아지기만 하던 것과 반대로 거대하게 몸을 키운 ‘자이언트맨’이 되어 관객을 놀라게 하죠. 콧대 높은 아이언맨으로부터 “왜 우리 팀엔 저런 애가 없냐”는 말까지 하게 만듭니다.
재밌게도 이 ‘자이언트(GIANT)’라는 단어엔 개미(ANT)가 숨어있네요. 스타트업계의 앤트맨들도 언젠가 이렇게 성장해서 불개미같이 따끔한 한 방을 날릴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미지 출처: Movie images © Marvel Studios
Disney Enterpri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