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관람가 17. <엣지 오브 투모로우> 고치면 된다
2016년 0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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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이 굼벵이 녀석아!(On your feet, maggot!)”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보신 분이라면 이 대사를 기억하실 겁니다. 외계종족으로부터 시간을 되감는 능력을 얻은 빌 케이지(톰 크루즈)는 이 말을 귀에 인이 박이게 듣게 되죠. 전투중에 사망하면 일종의 세이브 포인트인 이 지점으로 케이지의 하루는 리셋됩니다. 마치 게임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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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평론가가 이 영화를 '쟁반노래방'이라고 평한 걸 들었는데요. 재치있는 비유인 것 같습니다. 영화 속 지구를 침략한 외계종족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전투에서 패하면 그 경험을 기억하고 시간을 돌려 다시 싸우죠. 전쟁을 필승으로 이끄는 막강한 능력입니다. 케이지는 외계종족과의 전투에서 우연히 이 능력을 이전받게 됩니다. 그때부터 될 때까지 다시 하는 쟁반노래방이 시작됩니다.

사실 케이지는 대의를 위해서 싸울 능력도 의지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광고회사에 다니다가 전쟁으로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홍보장교로 ‘취직’한 인물입니다. 격전지에 가서 전투장면을 찍어오라는 장군의 말에 잔뜩 겁을 집어먹고 이렇게 말합니다. “전 피만 보면 소스라쳐요. 종이에 손 베이는 것도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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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쫄보는 전사가 됩니다. 하루를 반복하며 전투와 전투에서 수없이 경험을 쌓기 때문입니다. 전투기술, 상황판단능력, 순발력, 시야, 그리고 자존감과 카리스마까지. 말로 먹고살던 케이지는 실전으로 말하는 자가 됩니다.

그렇다고 케이지에 무슨 다른 기가 막힌 초능력이 함께 주어진 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루를 되감는 능력이었죠. 케이지가 성장한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허구한 날 깨지면서 그냥 겁나게 많은 연습을 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부분을 기억하며 죽고, 고치고, 죽고, 고치고, 죽고, 깨어나면 또 고쳤습니다. 그러다 고칠 게 별로 없어졌을 무렵엔 고수가 되어있었습니다. 어느 순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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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꾸준히 열심히 함’을 표현하는 동사들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모두 ‘고치다’의 의미로 통하지 않나 싶은데요. 일하다, 연습하다, 공부하다, 수련하다, 개선하다, 단련하다. 모두 자신이 가치를 두는 어떤 일을 반복하며 실수를 줄여나가는 일입니다. 연습과 학습을 거듭하며, 결국엔 더 좋은 형태로 고쳐간다는 의미를 품었습니다.

안타깝지만 현실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 같은 건 없습니다.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3년 동안 리팩토링한 것 같은 앱을 하루 만에 만들 수 있을 텐데. 더 이상은 개선할 수 없을 완벽한 UX를 구현할 수도 있을 텐데. 또 매일 아침 앱을 출시하면서 역대 최강의 마케팅 전략을 찾을 수도 있을 텐데요. 음 이런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한번 상상이나 해봤습니다.

우리는 오늘을 반복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겐 내일이 있습니다. 오늘 못한 건 내일 더 잘하면 됩니다. 내일도 못하면 내일모레 더 잘하면 됩니다. 그렇게 고쳐가다 보면 뭐라도 끝이 나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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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라는 게 꼭 비범한 두뇌, 남다른 신체능력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어떤 걸 오랜 기간 꾸준히 열심히 할 수 있다면, 그건 그 자체로 귀한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초의 열정을 꺼뜨리지 않고 끝까지 가져갈 수 있다면, 그건 어쩌면 초능력일 수도 있습니다.

열정과 노력을 강요하는 사회에 산다는 게 씁쓸한 건 맞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밖에 달리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고오급의 열정을 갖고 될 때까지 노오력 하는 것. 돈도 없고 빽도 없다면 믿을 건 결국 이것밖에 없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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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에 페럴 상사가 내무반에서 도박하다 걸린 대원들을 나무라는 장면이 있습니다. 짧은 장면이지만 꽤 집중해서 비춰주는데요. 대원들에게 트럼프 카드를 찢어 먹게 하면서 이런 말을 복창하도록 지시합니다.

“운명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했지? 다 같이 복창.” (페럴 상사)

“우리의 운명은 운 따위에 달린 게 아니다. 질서와 규율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 운명을 다스린다!” (대원들)

어쩌면 이 영화는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운을 바라지 말고 노력으로 승부하라. 잘하지 못하는 게 있으면 고치면 된다. 고치면, 된다.

저도 기왕 스타트업을 시작한 거 뭔가 가치 있는 걸 이뤄볼 때까지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알람처럼 케이지를 깨우던 이 대사를 기억해두려고 합니다. 나태해지는 때가 오면 스스로에게 말하려구요.

“일어나 이 굼벵이 녀석아!”

이미지 출처: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김상천 coo@slogup.com 슬로그업의 영화 좋아하는 마케터. 창업분야 베스트셀러 '스타트업하고 앉아있네'의 저자입니다. 홈·오피스 설치/관리 플랫폼 '쓱싹'을 운영하고 앉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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