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관람가 15. <주토피아> 고양이는 iOS, 개는 Android
2016년 06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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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개를 둘 다 키워보니 고양이는 iOS, 개는 안드로이드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고양이의 OS에는 아이폰처럼 기본적으로 깔끔함과 세련된 감각이 탑재돼있습니다. 움직일 때 선이 유려하고 동선에 낭비가 적어 UX적인 면에서도 뛰어납니다. 다만 안드로이드같이 허물없는 친근함을 기대할 순 없습니다.

개들의 OS는 안드로이드처럼 친근합니다. 다 공개하고, 무척 솔직해서 주인에게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폰처럼 세련된 맛은 없고 디자인도 각져서 좀 투박한 편입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 넓은 집에 살게 되면 개랑 고양이를 같이 키워보고 싶네요. 개 이름은 ‘안드로’ 고양이는 ‘아이오’라고 지으면 어떨까 합니다. 새끼를 낳으면 ‘베리’, ‘모토’, ‘샤오’ 이렇게 쭉쭉 가도 좋지 않을까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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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회사에 짱박혀서 앱을 만들다가 드디어 맛이 간 것은 아니고 영화 <주토피아>를 보고 나서 이렇습니다. 온갖 포유류들이 다 나와서 뛰노는 걸 보고 났더니 자꾸 이렇게 뭔가를 동물에 비유해보게 되네요. 이 애니메이션은 경찰관 토끼 홉스가 사기꾼 여우 닉과 함께 동물의 도시 ‘주토피아’에서 벌어진 연쇄 실종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아마 아이들 데리고 극장을 찾는 부모를 위한 배려겠죠? 언제부턴가 극장판 애니메이션들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도 재밌게 볼 수 있게끔 만드는 것 같네요. 이 영화에도 어른들만 이해할 수 있는 깨알 요소들이 숨어있는데요. 타임스퀘어를 본뜬 장소엔 나이키의 '저스트 두 잇(JUST DO IT)' 캠페인을 패러디 한 ‘저스트 주 잇(JUST ZOO IT)’이라는 광고가 걸려있네요. <대부>를 오마주한 장면도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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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이렇게 동물에 비춰본 김에, 스타트업 구성원들은 과연 어떤 동물이 어울릴지 생각해봤습니다.

먼저 개의 습성과 가장 잘 어울리는 포지션은 개발자가 아닐까 합니다. 개발밖에 모르는 이 단순한 종족은 좋은 코드에 대한 강한 충성심을 갖고 있습니다. 간식에 상당한 집착을 보이는 성향이 있으며, 먹은 흔적을 어질러놓는 버릇이 있으니 이점은 감내해야 합니다. 가끔 자기들끼리 알 수 없는 언어를 주고받으며 흥분하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고양이는 역시나 디자이너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개발자들과 달리 예민하고 섬세하며, 때론 좀 까다로운 특성이 있습니다. 그루밍을 즐기는 이들은 뭐든 깔끔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들이 낮에 기운 없어 보이는 것은 야행성과 염세적 성격이라는 종족 특성 탓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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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는 비버입니다. 집짓기에 능한 이들은 어딘가에서 재료들을 모아와 쌓는 일에 특화돼있습니다. 여기저기 웹서핑을 할 수 있도록 뒷발에 물갈퀴가 발달해 있으며, 맘에 드는 자재는 긁어올 수 있도록 앞니가 튼튼히 발달해 있습니다. 먹을 게 부족한 겨울이 되면 핀터레스트에 저장해놓은 것들로 한 철을 버팁니다.

자, 제 글이 슬슬 맛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죄송하지만 오늘도 이 귀한 지면을 그냥 이렇게 놀다가 끝낼 것 같습니다. 어쨌든 계속해볼테니 바쁘신 분들은 어서 일터로 돌아가 주시옵고, 한가하신 분들은 제가 어디까지 가나 한번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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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 담당은 너구리입니다. 식탐 강한 이들은 먹이활동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먹을 수 있겠다 싶으면 어떻게든 최대한 많이 먹으려고 욕심을 부립니다. 높은 나무를 올라 열매를 따 먹거나, 바위 밑을 들춰서 먹이를 파내는 집념을 보입니다. 능청스럽게도 순한 척하지만 의외로 전투력이 강하니까 주의하셔야 합니다.

마케터는 여우입니다. 관찰력이 뛰어나고 심리전에 능합니다. 큰 예산을 다루기에 늘 조심성이 많습니다. 머릿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테스트까지 해보고 나서야 사냥에 나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성공하지는 못합니다. 구미호처럼 상대를 감쪽같이 홀릴 방법을 고민하지만, 현실은 나무 밑동에서 애벌레라도 파내야 하는 때가 많습니다. 너구리와 마찬가지로 식탐이 강하며, 교활하게도 나중에 먹으려고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먹이를 묻어두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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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대표는 저마다 각양각색인 것 같습니다. 대표가 곰인 곳도 있고 사자인 곳도 있고, 혹은 소인 곳도 있는 것 같네요. 뭐 돼지나 스컹크, 혹은 앵무새만 아니면 되지 않겠습니까? 다만 팀 내에서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할을 하는 대표는 보통 ‘개냥이’인 경우가 많은 것 같네요. 개발자와 디자이너 사이에서 2개국어를 해야 하거든요.

잡설이 길었습니다. 그냥 웃자고 한 얘기니 삐지기는 없기입니다. 저마다 다른 이들이 어울려 사는 주토피아처럼, 우리도 서로의 차이와 가치관을 이해하여 평화로운 스타트업토피아를 만들어보아요! (훈훈)

이미지 출처: 2015 Disney

김상천 coo@slogup.com 슬로그업의 영화 좋아하는 마케터. 창업분야 베스트셀러 '스타트업하고 앉아있네'의 저자입니다. 홈·오피스 설치/관리 플랫폼 '쓱싹'을 운영하고 앉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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