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우리는 왜 스타트업을 하게 된 걸까요?
혹시 그런 생각 안 해보셨나요. 가만 생각해보면 이건 좀 희한한 일이잖아요. ‘스타트업 90%는 망한다’는 기사를 못 본 척 기꺼이 젊음을 던지는 쿨가이 쿨시스터들이 이렇게 많다니요. 평범한 직장인이 어느 순간 사업을 해야겠다 결심하곤 사표를 내밀고, “요즘 같을 때는 그저 공무원이 최고”라 말씀하시는 엄마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명함을 숨겨두는, 이런 일의 시작점은 언제일까요?
제 생각에 대부분의 경우는 이렇게 시작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사실 왜인지 정확히는 나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안 할 수가 없어서.’
자꾸 그 생각이 떠나질 않는 거죠. 누가 10개의 공 중에서 1개뿐인 검은 공을 뽑는 데 성공하면 배당금을 줄 테니 참가비를 내라,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은 안 합니다. 상식적으로 확률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그러나 스타트업들은 아무도 저런 통계를 신경 쓰지 않습니다. 스타트업에게 의미 있는 확률은 오직 1/2일뿐이죠. 잘 되거나, 안 되거나.
‘자꾸 그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는 이 현상을 ‘자꾸 목소리가 들린다’는 설정으로 표현한 멋진 영화가 있습니다. 1989년 영화 <꿈의 구장>입니다.
주인공 레이는 그냥 평범한 사람입니다. 울고 웃고 기고 걷고 뛰다가, 때가 됐다 싶어 반항하고 다시 때가 되자 대학가고 직장 잡고 결혼해 예쁜 딸을 얻은 일반적인 미국의 소시민입니다.
그런 레이의 삶에 불현듯 기괴한 일이 일어납니다. 자신의 옥수수밭에서 웬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거죠. 목소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걸 지으면, 그가 찾아올 것이다. (If you build it, he will come)”
오직 레이한테만 들리는 이 목소리는 며칠이고 반복됩니다. 대체 뭘 지으라는 건지, 누가 어디서 왜 나한테 말을 거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데 목소리만은 또렷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이는 옥수수밭에 야구장이 들어선 환영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레이는 깨닫습니다. 그리고 생계수단인 옥수수밭을 밀어버리고 그 위에 야구장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레이는 정신이 이상해진 걸까요? 스스로도 혹시 자신이 미친 건 아닐지 의심합니다. 부인은 당연히 어이없어하죠. 하지만 곁에서 레이의 간절함을 지켜보는 동안 끝내 설득당하고 맙니다.
이들은 멀쩡한 옥수수밭을 밀고 정말로 야구장을 짓습니다. 아이오와 시골 바닥에 난데없이 그럴싸한 야구장이 지어졌습니다. 레이는 기다립니다. 매일같이 창가에서 텅 빈 야구장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동안 계절이 바뀌었고, 융자금이 밀려 상황은 심각해졌습니다. 후회하고, 좌절합니다. 그때 레이의 딸아이가 말합니다.
“아빠, 밖에 누가 있어요.”
야구장엔 죽은 야구선수 ‘맨발의 조 잭슨’이 서 있습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하얀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갖춰 입고 글러브를 낀 전성기 모습 그대로 레이를 바라보네요. 그토록 기다린 일이었지만, 막상 실제로 일어나자 레이는 어안이 벙벙합니다. 옥수수밭에서 야구선수 유령이 나오다니요. 맨발의 조는 아버지가 생전에 입이 닳도록 칭찬한 바로 그 선수였습니다. 4할이 넘는 타율에 기록을 밥 먹듯이 갈아치웠지만, 승부조작에 휘말려 영구 제명당한 비운의 선수입니다(맞습니다 블랙삭스 스캔들).
레이의 야구장에서 타격연습으로 몸을 풀고서 조는 묻습니다. “저… 다시 와도 되나요?” 그리고 옥수수밭으로 사라지다 문득 고개를 돌려 다시 묻습니다. “저기요, 여기가 천국인가요?”
뒤 얘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줄거리 소개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소개해드린 내용은 초반 25분도 안 됩니다. 아 입이 근질근질하네요. "정말 좋은 영환데… 스타트업한테 참 좋은데... 참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
사람들 눈에 무모해 보이는 레이의 모습이 어찌 보면 우리 스타트업들과 닮은 것 같습니다. 자기만의 목소리를 듣고, 밥벌이를 버리고, 반대를 무릅쓰며 하지 않으면 못 견딜 어떤 일을 하죠. 기다리고, 좌절과 후회를 하고, 다시 희망을 얻습니다. 그 끝에 과연 뭐가 있을지는 이 영화가 끝나봐야만 알 수 있겠죠?
이미지 출처: Universal Pictu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