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각본을 아론 소킨이 썼대서 또 다른 <소셜네트워크>를 기대하고 본다면 당황하실 수 있습니다. <소셜네트워크>가 마크 주커버그의 성공담을 푼 드라마라면, 이 영화는 잡스라는 인물을 비추는 연극입니다.
영화는 무대극의 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맥킨토시, 블랙큐브, 아이맥을 세상에 공개하는 세 번의 무대로 영화 전체가 짜여있습니다. 그런데 발표내용은 관심사가 아닙니다. 영화의 진짜 무대는 발표 직전의 백스테이지입니다. 대중이 보지 못한 그곳에서, 대중이 볼 수 없었던 잡스를 이야기합니다.
워즈니악, 스컬리 등 실제 인물들과의 언쟁, 사람들을 대하는 잡스의 괴팍함, 자기 애가 아니라고 부인했던 딸 리사와의 관계. 꼭 연극처럼 이들과의 대화로만 서사가 진행됩니다. 바깥 얘기가 필요하면 플래쉬백(회상)으로 짧게 처리하죠. 조명은 오로지, 스티브 잡스라는 한 인물을 비춥니다.
알려진대로 잡스는 괴팍한 성격이었습니다. 근데 이 정도까지 성공하면 다 용서가 되는 걸까요. 사실 그 괴팍함을 지켜보는 재미가 이 영화의 동력입니다. 개발자가 “에러가 있어 발표 일부를 수정해야한다”고 말하자 “내 계획대로 안 되면 세상이 지켜보는 앞에서 널 망신시켜 줄테니까 닥치고 되게 하라”고 잘라 말합니다. 발표 15분 전에 갑자기 셔츠를 바꿔 입어야겠다며 개발자의 옷을 뺏아 입고, 심지어 5살난 딸에게조차 상처 주는 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자기가 잘난 걸 너무 잘 알았다는 점이 비극이긴 했지만, 잡스가 동시대 누구보다 뛰어난 리더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겠죠. 그 덕에 우리도 지금 스타트업에서 앱을 만들며 살 수 있게 됐잖아요. 그런데 만약에요, 잡스 만큼의 열정을 가졌는데 실력은 형편없는 리더가 있다면 어떨까요. 여기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영화감독 에드워드 D. 우드 주니어(애칭 에드 우드)라는 사람입니다.
에드 우드는 맨해튼에서 열린 ‘최악의 영화 페스티벌’에서 ‘역사상 최악의 영화감독’으로 꼽힌 인물입니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그의 대표작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은 ‘역사상 최악의 영화’로 선정됐죠. 팀 버튼의 <에드 우드>가 바로 이 사람의 전기영화입니다.
에드 우드는 영화를 진짜 겁나게 못 만들었습니다. 평생 영화를 찍었는데, 죽을 때까지 세상의 조롱을 받았습니다. 참다 못한 관객들이 스크린에 음식물 쓰레기를 던지고 표값을 돌려달라며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편집증적 완벽을 추구하던 잡스와 반대로, 에드 우드는 모든 씬을 한 번에 오케이 했습니다. 심지어 배우가 퇴장하다 문에 부딪혀도 "퍼펙트!"를 외칩니다. 배우가 어이없어하자 "야 그거 자연스러워서 좋다"고 말하죠.
호수에 비친 자신을 보며 자아도취에 빠지듯 에드 우드는 스크린의 자기 영화를 보며 감동에 벅차 어쩔줄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영화를 찍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행복하다보니 그저 다 좋을 수밖에요.
투자하는 사람이 없으니 자기 혼자 제작, 각본, 연출, 편집, 심지어 주연까지 다 합니다. 남의 영화사 창고에서 소품서리(!)를 해서 자기 영화에 갖다 쓰기도 했습니다. 기독교 단체한테 투자를 받아보려고 스텝 전원을 데려가서 집단 세례를 받기도 하죠.
필름을 들고 배급사에 간 일화도 유명합니다. 온 힘을 다해 찍은 그의 영화를 본 배급사 직원은, 영화가 얼마나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었던지 회사 동료들이 자기를 놀리려고 몰래카메라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죠. 영화 만드는 과정 그 자체로 코미디가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낄낄거리며 보다가 불현듯 서늘해지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연이은 실패에 지친 에드 우드는 침대에 누워 혼잣말을 하듯 애인에게 묻습니다.
“내가 착각하는 거면 어쩌지? 나한테 재능이 없는 거라면 어떡하지?”
불편한 진실이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특별한 재능이 없습니다. “모두가 특별하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죠. 모두가 평범하다는 말이 되니까요. 어쩌면 우리는 잡스가 아니라 에드 우드일 수도 있습니다. 내 스타트업은 로켓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무섭죠.
한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에드 우드는 이제 조롱의 대상이 아닙니다. 겁나게 재미 없는 그의 영화들은 하나의 컬트가 돼서 영화팬들에게 추앙받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정기 상영회가 열리고, 관객들은 스크린에 팝콘을 던지며 짓궂은 축하를 건넵니다. 재능 없는 감독과 재미 없는 영화는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처럼 남들이 뭐라던 순수하게 끝까지 자기 꿈을 쫓은 사람은 흔치 않았음을 인정하기 때문이죠.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은 이해를 못 하겠지만, 평범한 우리는 그게 얼마나 어렵고 값진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내 스타트업은 로켓이 아닐 수 있습니다. 나는 잡스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근데 그게 뭐 중요한가요? 지금 하는 일이 잠도 잊을 만큼 재밌고,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보람을 느끼고, 그 때문에 지금이 좋다면 문제 없는 거 아닐까요. 물론 성공을 위해 끝까지 달려야겠지만, 설사 안 된다 한들 내 인생의 화양연화를 살고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합니다(어머니 죄송합니다).
Editor's Note: 스타트업 하는 게 영화 만드는 일과 닮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스타트업을 하려면 개발, 마케팅 등 각 분야의 팀원을 모아 팀빌딩을 해야합니다. 영화를 만들 때도 연출자, 촬영감독 등이 모여 팀빌딩을 하죠. 배고프게 만들어서 드디어 데모데이를 하고, 배고프게 찍어서 드디어 GV(관계자시사회)를 합니다. 실력을 인정 받으면 투자 받아서 더 좋은 환경을 갖출 수도 있죠.
앞으로 주 1회 스타트업과 영화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상천 팀슬로그업 COO coo@slogu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