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의 인터뷰 속에 숨겨진 스티브잡스의 인생/비즈니스 철학 (2/3)
2013년 07월 02일
20분간의 스티브잡스 인터뷰 및 그의 인생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Steve Jobs – Visionary Entrepreneur가 드디어 공개되었다. 총 60분 간 재생되는 이 다큐멘터리는 Silicon Valley Historical Association가 제작, 젊은 창업가에게 전하고자 하는 그의 조언을 토대로 인터뷰가 진행된다. 2분 남짓한 예고편 영상은 유투브에 유포되어 많은 창업가의 관심을 끌어내고 있다. 필자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하여 알게 된 스티브 잡스의 철학과 그가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총 3부로 나눠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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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 나만 알고, 내가 만드는 절호의 기회
 
실리콘 밸리에 대한 대단한 지식과 정보를 보유한 잡스
잡스가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그 영향력의 시초는 따로 있었다.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 프래드 터먼(Fred Terman, 스탠퍼드 교수이자 실리콘 밸리의 아버지로 유명하다), HP의 윌리엄 휴렛(William Hewlett)과 데이브 팩커드(Dave Packard) 등. 실리콘 밸리에서는 '혁신의 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발명품이 만들어진 곳이다. 유전 공학, 직접 회로, 개인용 컴퓨터 등 실리콘 밸리에서 역사적인 발명을 완성한 사람은 무수히 많다.
 
휴렛과 팩커드는 엔지니어의 니즈를 알기 위해 엔지니어인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잡스에게는 '컴퓨터'가 가장 필요했고, 자신이 고객이 되어 어떤 컴퓨터를 개발해야 할지 고민하며 컴퓨터 개발을 지속했다. 자신에게 채워지지 않는 필요 욕구에 따라 그에게 컴퓨터를 만들어야 할 굳은 의지와 이유는 더 확고해져만 갔다.
 
능동적으로 행동을 취하면 주어지는 기회
많은 사람은 모르는 것을 물어보지 않기 때문에 알 기회를 놓친다. 중요한 경험을 놓치는 자들은 정해져 있다. 더 배우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이들은 더 배울 기회를 놓치며 산다.
 
고등학생 시절, 잡스는 휴렛에게 과감히 전화하여 고주파 측정기(Frequency counter)의 남은 부분이 좀 있으면 줄 수 있겠냐고 요청했다. 이에 휴렛은 잡스가 요청한 기계들을 제공하였고, 후에 잡스는 여름에 일자리를 얻기까지 하였다. 잡스는 휴렛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는 자신에게 도움을 준 이에게 꼭 고마움을 표시하라고 말한다. 잡스는 아무리 바빠도 감사를 표현하는 일은 전혀 게으르지 않았다. 
 
실리콘 밸리에서의 성공 할 수 있는 이유
이는 지금의 실리콘 밸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학교(스탠퍼드와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가 실리콘 밸리에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만큼 명성 높은 학교에서 받는 교육은 가치가 남다르다.
실리콘 밸리는 많은 기업으로부터 이루어진 탄탄한 재무 체계 및 자본을 구성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이 지역의 경험으로 성장한 인재를 고용할 수 있다.
 
블루박스의 정체
그는 전화를 무료로 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던바 있는데, '블루박스'라고 불리었다. 전화 시스템을 열어 세계 어느 나라 에도 전화할 수 있었다. 물론 법적으로 허용 되진 않았지만 '세계 최고의 디지털 블루박스'를 만든 것이다.
 
약 100불 가지고 어린 두 소년이 블루박스를 발명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6개월쯤 걸린 일이지만 이런 자신감을 느끼고 세상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도전을 얻었다. 블루박스로 성공할 수 있었다면 아마 애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5년 후의 나에 대한 기대
이에 잡스는 대세를 바라보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기를 제안한다. 1975년, 몇십만 불에 달하는 컴퓨터를 구매할 수 없었던 잡스는 홈브루 컴퓨터 클럽(Homebrew Computer Club)에서 활동하며 컴퓨터에 관한 관심이 남다른 학생들과 서로의 필요를 충족했다. 약 50명에서 시작한 이 클럽은 시간이 지나 몇백 명이 모이는 대규모의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워즈니악과 잡스는 가장 주목할 만한 아이템을 만들곤 했고 이를 본 많은 이들이 극찬했다. 워즈니악과 잡스의 명성은 높아졌다.
 
잡스는 그가 처음 워즈니악을 만났을 때, 워즈니악이 자신보다 훨씬 기계 만지는데 능숙했다고 한다. 이 둘은 점점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잡스는 워즈니악에게 많이 배웠다고 한다. 어느 날, 그들은 투자 유치를 위해 한 벤처캐피털리스트를 만나러 갔고 이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애플과 다른 몇몇 회사들이 벤처캐피털리스트에게 좋은 예시가 되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좋은 아이디어가 무조건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임을 그들이 증명했기 때문이다.
  
애플 1과 애플 2
그는 애플 1로 '배움'을 얻으며 한 층 성장했다. 약 200개의 제품밖에 팔지 못했지만, 다음 단계로 크게 전진할 힘이 생겼다. 그 기동력을 활용하여 1977년 4월에 열린 West coast computer Fair에서 애플 2 출시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성공적인 출시만으로 진짜 성공을 해내지는 못했다. 그에게는 '제품 광고'가 필요했다. 테크 저널을 관심 있게 읽으며 애플 컴퓨터를 효과적으로 광고 하는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는 인텔(Intel)에 도움을 직접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사무실에 불쑥 찾아간 탓에 거의 쫓겨나다시피 했지만 결국 잡스는 인텔의 클라이언트가 되어 그의 작품을 세상에 내보일 수 있게 되었다.
 
인텔과 잡스의 개인컴퓨터의 성격이 서로 맞지 않았던건 사실이다. 하지만 컬러풀한 애플의 사과로고가 블랙/화이트의 IBM로고와는 상반되어 예상 외의 눈길을 끌었다. 가볍고 실용적인 애플의 개인컴퓨터 시장의 확장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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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한 편의 기사(3/3)에서는 스티브 잡스의 인생 일대기의 한 부분과 그의 인생이 남달랐던 이유를 더 깊게 전할 예정이다.
 
beSUCCESS Editor Hazel Yu | hazel@besucc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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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경 기자 (2013) 최고 보다는 유일함의 가치를 믿는 작은 모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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