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나 맘에 안 들죠” 규제에 막힌 스타트업 수난사
2015년 04월 01일

신호 없는 사거리에 선 교통경찰의 역할은 정리로 충분하다. 과잉 단속으로 쉽게 갈 길을 돌아가게 만들거나, 시동도 안 건 운전자에게 사고 낼 가능성을 들먹이며 벌금을 물리는 오지랖은 경찰관의 덕목이 아니다.

규제를 창조하는 경제인 걸까. 두 여자 연예인 못지 않게 정부와 스타트업도 소리 없는 전쟁을 치러왔다. 정부는 옳을 때도, 틀릴 때도 있었다. 다만 스타트업은 언제나 규제 앞에서 약자였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누려 보기도 전에 사라져버린 좋은 서비스들이 많다는 점이 아쉽다. 규제에 막힌 스타트업 수난사를 유형별로 정리해봤다. 

1. 통보 없이 셧다운, 결과는 '핵이득'

방통위

지난달 25일, 유료 웹툰 사이트인 레진코믹스가 3시간가량 접속 차단되어 700만 독자를 울렸다. '꼰대 심의'로 논란이 됐었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이번에는 사전 경고나 통보 없이 몇몇 웹툰에 '성기가 직접 노출됐다'는 이유로 사이트 셔터를 통째로 내려버린 것. 창조 경제의 대표 사례로 꼽혀 국무총리상까지 받았던 레진엔터테인먼트였기에 여론의 비판이 쏟아졌다. 방통위는 계속해서 변명했다. 옹졸하기 그지없었고, 레진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코인 잔치를 벌였다. 거센 논란에 레진코믹스를 모르던 누리꾼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레진은 돈 한 푼 안 쓰고 거한 마케팅 효과를 누렸다.

개인 간 대출 서비스 '8퍼센트'도 방통위의 '경고(Warning)' 효과를 봤다. 아직 베타 서비스만 운영해 인지도가 거의 없었던 8퍼센트는 지난 2월 2일 방통위에 의해 사이트가 폐쇄됐다. '대부업으로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놀랍게도 8퍼센트 이효진 대표는 사이트 폐쇄 소식을 대부업 등록 서류를 접수하는 중에 구청에서 들었다. 핀테크에 조예가 깊은 구태언 변호사는 "아직 베타서비스 중이라 수수료도 받지 않기 때문에 8퍼센트를 대부업체라고 정의할 수조차 없다"면서 이의를 제기했다. 이후 조용히 사이트는 재개됐고, 8퍼센트는 유망 핀테크 기업으로 주목받게 됐다.

이쯤 되면 방통위의 폐쇄 조치는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정부 차원의 고도 마케팅 전략이 아닐까 싶다. 자꾸 유해정보사이트라고 자극하면 구태여 검색해보고 싶은 게 사람 심리다.

2. 밥그릇은 건들지마, 생태계 파괴 논란 

우버서울시

우버는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우버님은 갔습니다.
우버에 대한 서울시의 강경 대응은 찬반 논란을 불러왔다. 서울시, 우버, 택시 업계, 시민 모두가 각자의 논리를 가지고 몇 달간 씨름했다. 서울시가 지적한 대로, 우버는 법 테두리 안에서의 타협점을 찾지 않고 밀어붙이기식 영업을 계속했다. '9일 천하' 무료 서비스 강행은 결국 우버 기사, 시민, 택시 업계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고 끝났다. 잘 막았으면, 이제 기존 택시 업계가 좀 혁신했으면 좋겠다. 기사 개개인 못지 않게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다. 솔직히 말해 이미 '우버의 맛'을 알아버린 소비자 입장에서, 그들의 패배가 달갑지만은 않다. 앞으로는 카카오 택시, 리모 택시, T맵 택시의 3파전이 예상된다.

최근에는 쿠팡과 국토부의 논란도 불거졌다. 당일 배송을 위해 쿠팡이 준비한 3천 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가 무산될 수 있다는 소식이었다. 쿠팡은 현재 쿠팡맨 1,000여 명을 고용해 자사의 트럭으로 직접 배송을 시행하고 있다. 이 트럭이 택배사업 허가 차량이 아니라 일반 자가용이기 때문에 위법이라는 주장이다. 우버 때처럼 택배 업계도 들고 일어났다. 이에 대해 쿠팡은 "현재 배송비를 무료로 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정부 허가를 받은 흰색 번호판을 달고 쿠팡이 영업하기 위해선 트럭 한 대당 1,500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택배 업계가 정부에게 영업용 차량 증차 요구를 하기 위해 쿠팡을 걸고넘어지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에 증차 신청을 하고 허가를 받는 데 1년이 넘게 걸리는 데다 택배 업체가 원하는 만큼 충분한 정도의 차량 허가가 떨어지고 있지 않다는 배경 설명이다. 그런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 됐고 이런 것만 들린다. "쿠팡이 상반기 내로 로켓 배송을 도입하면, 일부 지역에서는 2시간 내 배송이 완료된다."

택시 업계도, 택배 업계도 기존의 고질적이고 오래된 구조적 문제를 모두 다 스타트업 탓으로 돌리며 텃세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닌가. 정부는 가운데 껴서 아이를 버릇없게 키우는 극성 부모 역할에 심취된 건 아닌가 생각해본다. 돈 내는 소비자는 어쨌든 좋은 서비스를 즐겁게 누리고 싶을 뿐이다.

3. 제가 한 번 모조리 해보겠습니다, 주책없는 스타트업 베끼기 

정부는 '통합', '플랫폼'과 같은 단어를 정말 좋아한다. 한 개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잘 되는 서비스가 있으면 모조리 정부 측으로 편입하고 싶어하는 것이 이들의 성향이다. 정부는 2월부터 한국형 유튜브인 'K-튜브'를 만들기 위해 10억의 예산을 투입했다. 아이템도 무궁무진하다. 한국형 킥스타터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장기적인 계획도 없이 무조건 웹사이트를 하나 만들면 보고서용 반반한 숫자가 나온다. 그들은 창조 경제라 부르고 사람들은 암 유발 '사이트' 페티쉬라 부른다.

지난해 6월, 문화관광부 소속 한국문화정보센터는 인디 음악 정보 사이트인 '인디스트릿'에게 모든 뮤지션을 비롯한 자료들을 '무료'로 넘겨 달라고 요구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스타트업 서비스를 베끼기 위해 세금을 남용하는 대담함도 보였다. 무려 3억 4,900만 원짜리 사업의 목표가 '인디스트릿'과 '온오프믹스' 같은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 대한 가장 자세한 내용은 이준행 인디스트릿 대표가 직접 작성한 슬로우뉴스 기사를 통해 살필 수 있다. 공공의 적은 내부 결속을 단단하게 만든다고 했나. 이후 두 피해자인 인디스트릿과 온오프믹스는 인디공연 활성화를 위해 업무 제휴를 맺는 훈훈한 광경을 연출했다.

[사진]온오프믹스와 인디스트릿, 대중문화 발전을 위한 MOU 체결

그런데 정부는 왜 대기업의 온갖 위법에는 눈 감고 있으면서 스타트업에 대해서는 유독 깐깐한 시어머니처럼 구는 것일까. 국내 모 대기업은 무려 항공법을 어기고 불법으로 전용기를 띄웠다. 스타트업이 손바닥만 한 드론을 날린다고 하면 분명 창조 규제들이 발목을 잡을 것이다. 작년에는 정부가 불법 토렌트와 전쟁을 치르는 가운데, 국내 두 대기업이 거기다 버젓이 광고를 게재했다. 앞서 말했듯 정부는 옳을 때도 틀릴 때도 있었다. 그런데 공정하지는 않은 것 같다. 걱정이다.

startupbattleapplication 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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