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출신 여성 엔지니어가 만든 ‘스파이카’, 드롭박스와 정면 승부하기 위해 실리콘밸리 가다
2015년 03월 26일

스파이카 김호선 대표를 만나며 떠오른 한 가지 생각은 되는 사람은 뭘해도 된다는 것이다. 작년 9월 개최된 ‘비글로벌 2014’의 배틀 탈락팀이 그 누구보다 먼저 세계적 엑셀러레이터 500스타트업에 입성했다. 지난 2월에는 국내외 투자자로부터 21억 원의 투자도 유치했다.

투자 유치는 시작에 불과하다. ‘선샤인(Sunshine)’도 구버전이었던 쉐어온으로부터의 대대적인 브랜드 변경 과정을 거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파이카는 출격 준비를 마친 팀다운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김 대표 스스로의 표현을 빌린 ‘무식한 똥배짱'과 이를 뒷받침하는 건실한 기술력 덕분이다. 스파이카는 2009년에 설립된 6년 차 스타트업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장님이 눈 뜨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고왔다는 김호선 대표로부터 되는 스타트업의 비결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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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업하는 데 언젠 뭐 있었나 : 한 방이 있는 행동력

실리콘밸리 현지에서 개최된 ‘비글로벌 2014’의 배틀 심사에서 탈락했을 때, 김호선 대표는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고 고백했다. 발표로 경연에서 떨어진 적은 없었고, 국제 컨퍼런스에서 선샤인(구 쉐어온) 소개를 마치면 늘 수십 명이 줄을 늘어섰다. 재작년에는 테크크런치 상하이 컨퍼런스에서 최고 인기 서비스로 선정되기도 했다.

보통 사람이면 빈정이 상해 얼씬도 안 했을 것을, 김호선 대표는 ‘자비로라도 가자'고 마음먹고 샌프란시스코행 티켓을 끊었다. 비글로벌에서 스타트업 부스를 운영하기 위해서다. 가려면 제대로 하고 오자는 마음에 직원 3명에 외부 투자 컨설팅 회사 직원 2명까지 대동했다. 돈도, 여유도 없었다. 그녀 표현에 의하면 ‘똥배짱'으로 강행한 일이었다. 보통 스타트업이 컨퍼런스 참석만 덜렁하고, 관광 좀 하고 귀국하는 반면 김호선 대표는 현지 미팅도 빡빡하게 계획했다.

“우연한 미팅에서 500스타트업의 팀 채(Tim Chae)를 처음 만났어요. 그땐 500스타트업이 뭔지도 몰랐을 때였죠. 나중에 팀 채가 이메일을 통해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배치(batch)로 참여하라는 제안을 줬죠. 당시엔 장장 몇 달이 걸리는 투자 과정을 밟고 있는 데다가, 회사 내부적으로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실리콘밸리로 떠나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김 대표를 쉽게 포기할 수 없게 만든 것은 미국 현지의 뜨거운 반응이었다. 김 대표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 중국, 미국 등 다양한 시장의 온도를 직접 체감했다. 선샤인은 파일 공유라는 글로벌 니즈를 충족시키는 서비스인 데다가, 미국에서는 여러 개의 디바이스를 넘나들며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결국 11월, 실리콘밸리의 호텔 로비에서 페이스북에 뜬 버진 그룹 리처드 브랜슨 대표의 기사를 읽으며 그녀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 뭐 어차피 내가 사업하는 데 언제는 뭐 있었나. 언제나 정답이 없는 길을 걸어왔는데. 미국 진출이 아무리 어려워도 내가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죠. 고민은 길었지만 일단 결정 내린 후에는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장님이 눈을 뜨는 것 같고, 못 듣던 사람이 귀가 열린 것 같은 배움을 현지에서 얻었다. 자신의 모든 경험을 나눈다는 점이 실리콘밸리 창업자의 특징이자 미덕이기 때문이다. 드롭박스를 필두로 한 ‘클라우드(cloud)’에 대항한다는 의미의 ‘선샤인(sunshine)' 역시 500스타트업의 멘토가 지어준 이름이다. 21억의 투자 역시 무리 없이 진행됐다.

‘비글로벌 2014’의 스타트업 배틀 경연에는 500스타트업의 파트너인 크리스틴 사이(Christine Tsai)가 심사자로 앉아 있었다. 김호선 대표는 그녀와 무대에서 마주하기는커녕, 인사도 한 번 못 나눴지만, 현재 500스타트업에 입성해 수많은 파트너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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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글로벌 샌프란시스코 2014' 행사에서 부스로 참여해 서비스를 소개하고 있는 김호선 대표

세상에 안되는 게 어딨어 : 한계를 넘는 기술

삼성전자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와 상품기획 분야를 거치고 이후 2000년도부터는 블루투스 개발사 등에서 마케팅을 전담해왔던 김 대표가 스파이카를 차리고 목표로 했던 것은 단 한 가지였다. ‘기기 간 데이터 이동의 자유를 회복시키는 것'.

“기기 간 문제도 있지만, 애플-삼성-구글은 서로 간 데이터 교환이 절대 불가능할 거라고 봤어요. 기술적 호환은 가능하겠지만, 의도적으로 막으려고 할거거든요. 그 해결책으로 클라우드가 등장했지만 결국 중간 매개체를 거쳐 가야 하기 때문에 속도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이마저 일정 기간이 흐르면 과금을 하기 시작할 거고요. 무료로 기기와 브랜드를 뛰어넘은 파일 공유 서비스를 제공해준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죠.”

선샤인을 사용하면 수백 기가바이트의 자료를 링크로 전달할 수 있다. 수신자는 마치 동영상이나 음악 스트리밍처럼 다운로드 없이 이미지나 영상을 선 감상할 수 있다. 이후 필요한 것만 선택적으로 내려받으면 된다. 가장 유명한 파일 공유 서비스인 드롭박스보다는 속도가 10배 이상 빠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첫 서비스를 내놓는 데에 무려 1년 반이 넘게 걸렸다. 피씨에서 모바일로, 모바일에서 모바일로 파일을 전송하는 기술까지도 힘들었는데 iOS와 안드로이드 간 OS 장벽을 허물라는 주문에 개발자들은 그야말로 멘탈 붕괴에 빠졌다. 이건 안됩니다, 하면 김 대표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세상에 안되는 게 어딨어. 오픈 소스가 지천으로 널려있어. 뭘 써도 상관없으니까 붙이기만 하자.”

산고의 고통 끝에 개발이 완료되면, 대기업 고객사를 상대로 B2B 서비스를 제공했다. 현재 CJ, 삼성 등이 스파이카의 고객사다. 이를 통해 자금을 얻으면 다시 유능한 개발 인재를 고용해 기술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스파이카는 내부 역량을 높였다. 튼튼하게 쌓아올린 기술에 대해 500스타트업의 팀 채는 “드롭박스가 요즘 같은 모바일, 소셜 시대에 창업했다면 쉐어온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망한 회사에 여러 번 있어봐서 알아요 : 시장을 보는 통찰력

지난 달 한국을 찾았던 페이팔 마피아의 수장 피터 틸은 ‘트렌드를 자주 언급하는 스타트업을 조심하라'고 조언했다. 트렌드 키워드에 휩쓸려 유행에 맞는 제품을 내놓는 기업의 경우 독자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스타트업은 단기 비전만으로는 지탱하기 힘든 위험 부담이 큰 조직이다.

반도체 기업에 근무했던 김 대표는 기술의 트렌드, 네트워크의 속도, OS의 변화 등 몇 년을 내다보고 제품 기획을 하는 데에 익숙했다.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플랫폼이 되어야 했다. 이렇게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한 데에는 그녀의 이전 직장 경력이 큰 도움이 됐다.

“삼성 이후 재직한 두 회사가 모두 기술력으로 이름을 날렸어요. 투자도 잘 받고 상장도 했는데 결국 모두 망해버렸죠. 반면 당시 기술력도 떨어지고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던 몇몇 벤처 회사들이 어느 순간 회사를 글로벌하고 체계적으로 확 키워내는 걸 봤죠. 날고 기는 기술을 가지고도 글로벌 플랫폼으로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이 실패 요인이었어요.”

김 대표는 ‘너무 짧게 보는 것도, 너무 길게 보는 것도 망하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10년의 관점으로 시장을 길게 바라보되, 사용자에게는 6개월에서 1년 정도 일찍 다가가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스티브잡스 말처럼 사용자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몰라요. 물론 남들이 넘보지 못할 기술적 백업은 3, 4년은 일찍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시장에 한 번에 내 모든 걸 내놓아서도 안 되죠. 그럼 첫째로 개발하다 죽고요(웃음), 둘째로는 쓸데없는 정보까지 유출돼 유사 서비스들이 등장할 위험이 커집니다."

스파이카에게는 아직 겨뤄야 할 한 판이 남아있다. 쉐어온에서 선샤인으로 리브랜딩한 서비스와 사용자들의 핏(fit)을 맞추는 일이다. 이후 사용자 수를 키우고 의미 있는 지표를 만들어내는 것이 올해 스파이카의 목표다.

“실리콘밸리의 창업가들은 자신들이 전 세대에서 물려받은 각종 정보와 노하우, 철학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요. 저도 미국에 와서 교육을 받으면서 ‘유레카'하고 외친 적이 많습니다. 스파이카가 앞으로 해외 진출을 통해 쌓은 모든 경험을,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예정입니다.”

스파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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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새롬 기자 (201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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