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여러 히어로 무비 중에서도 아이언맨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요즘 분위기를 보니 ‘아이언맨4’는 나올 것 같습니다! 사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아이언맨을 그만 찍고 싶어해서 전부터 고사해왔는데요. 최근 인터뷰에서 “인피니트 워 파트2 이후 한 편을 더 찍을 수 있다”는 반가운 얘기를 했다고 하네요. 이게 아이언맨4가 될 확률이 커보입니다.
항간에는 그래서 아이언맨4가 토니 스타크 뒤를 이을 새 아이언맨에게 멘토 역할을 하며 일종의 ‘아이언맨 인수인계’를 하는 내용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세대 아이언맨은 <아이언맨3>에서 토니를 도와준 귀여운 꼬마, 할리가 될 확률이 높다고들 분석하고 있네요. 물론 아직까지 마블의 공식 발표는 없습니다.
카더라 통신이긴 하지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언맨 3>에서 이 꼬마의 임팩트가 다소 뜬금없이 컸거든요. 꼬마 할리는 만다린에게 얻어맞아 모든 걸 잃고, 고철이 된 수트를 질질 끌고 온 토니를 도와주었습니다. 결국 아이언맨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힘을 준 사람이 바로 할리였죠.
거기다 할리는 토니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자기가 개발한 총으로 토니를 겨누며 위협하기도 했죠. 토니 가슴의 아크 원자로를 보곤 즉각 흥미를 느끼며 이것저것 열정적으로 질문 했습니다. 둘 모두 무기를 개발하는 천재 개발자이며, 어린 나이에 갑자기 아버지를 잃었다는 정서적 설정까지 닮아있습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전부터 “이제 그만 찍고 싶다”고 말해왔으니, 어쩌면 할리의 등장은 마블에서 미리 깔아놓은 밑밥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아이언맨3>는 앞으로의 아이언맨 시리즈, 나아가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를 더 짜임새있게 꾸려갈 수 있도록 기여한 부분이 많습니다. 원과 투는 그저 오만한 천재/부자/넘사벽 형이 손쉽게 세상을 구하는 내용이었죠. 그러나 3편에 이르러서는 기존에 신경쓰지 못했던 근본적 문제를 재정립하며 캐릭터를 공고히 했습니다. 이 영화가 던진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토니는 “내가 아이언맨인가, 수트가 아이언맨인가?”를 고민했습니다. 마치 어떤 경지에 오른 예술가 혹은 창업가가 그러하듯, 영화는 3편에 이르러 본질로 회귀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사람은 <리썰 웨폰> 시리즈와 <롱키스굿나잇>의 각본을 쓴 셰인 블랙입니다. 코믹스 아이언맨의 열렬한 마니아로 1, 2편 제작 땐 무보수로 시나리오를 다듬어주기도 했다죠. 그 인연으로 <아이언맨3>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습니다. 이렇다 할 연출 성공작과 최근에 인정받은 각본이 없는데도, 관계자들이 왜 그렇게 블랙 감독을 신뢰했는지 영화를 보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아이언맨3> 각본은 지난 5년간 읽은 각본 중 단연 최고”라고 말했었죠.
이 영화가 서사적 입체감을 더하고 관객을 몰입시킨 건 ‘토니 스타크의 몰락’이라는 서브 플롯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토니는 ‘어벤져스 뉴욕사건’의 트라우마로 공황장애를 겪죠. 평생을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오만하게 살아온 그에게, 갑자기 머리 위에 웜홀이 뚫리고 외계인이 침공하던 그 거대한 힘은 충격 자체였습니다.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겪고 난 토니는 아이언맨 수트에 집착합니다. 집에서도 수트를 벗지 않으려하고, 불안장애와 불면증에 시달리며 더 강한 수트를 만들고 또 만들어 밤을 지새웁니다.
사실 이렇게 주인공을 궁지에 몰아넣어 정서를 쌓는 설정은 낯설지 않습니다. 왜 스릴러 영화에서 첩보요원들은 항상 이혼당했거나 연인을 잃을 위기에 놓였나요? 정크푸드 껍데기와 빈 술병이 굴러다니는 집에서 아이들 볼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외로운 모습이죠. 드라마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주인공의 위태로운 개인사는 메인 플롯의 위기와 궤를 같이합니다. 사건 해결 후에도 마찬가지죠. 이혼한 아내 집 현관에서 화해하는 씬도 이젠 클리셰가 됐네요.
세계의 존망이 달려있는 히어로의 경우엔 더 해야겠습니다. 주인공을 벼랑 끝에 손톱만 걸치게 만들어야 합니다. 만다린의 폭격에 의해 토니는 집(안식처)과 연구소(힘의 원천)를 잃습니다. 바닷속(불안한 무의식)으로 가라앉고 맙니다. 그러다 자신과 닮은 소년 할리(분신으로서의 자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습니다. 수트라는 껍데기를 벗고, 수트를 만드는 개발자로 거듭나죠.
‘수트가 아이언맨인가, 내가 아이언맨인가’를 고민하던 토니는 결국 “나는 아이언맨이다”라는 오그라드는 대사를 날리며 부활에 성공합니다. 이제는 껍데기라는 걸 알아챈 수트들을 폭파시키며, 여자친구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비싼 불꽃놀이를 할 만큼의 오만함도 되찾죠. 이 대사는 1편 마지막 씬에서 나온 대사와 같습니다. 아이언맨의 정체성을 세상에 밝힌 말이었습니다. 이 말을 되뇌이며 스스로 아이언맨이라는 정체성을 되찾은 것이죠.
멋있습니다. ‘개발자로서의 토니’처럼, 역시 자부심 있는 개발자는 언제 봐도 멋집니다. 판타지 영화 속 아이언맨같은 개발자는 없겠지만, 현실에서도 진정한 개발자들은 늘 멋있습니다. 끊임없이 공부해 자신을 발전시키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국 무언가를 창조합니다. 실력으로 승부하는 정직한 사람들입니다. 순수한 열정으로 자신의 일에 몰입하며, 가치있는 제품을 만들고, 결국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기여하는 사람들이죠. 개발도 끝까지 가면 예술의 영역인 것 같습니다.
개발 테크의 끝이 치킨집이라는 말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개발자는 이 시대에 몇 안되는 아주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심지어 컴퓨터 한 대만으로 혼자서 세상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이것저것 눈치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한 몰입만으로 끝장을 볼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이런 순도 높은 창작을 할 수 있는 직업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요. 예술계를 빼면 개발자 말고는 떠오르지 않네요.
IT외에 우리 세계의 무엇이 그렇게 발달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별로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있는 건 결국 개발자입니다. 파자마 차림으로 앉아서도 화성을 볼 수 있게 했고, 이제 화성으로 일반인을 보내려고 준비중인 사람들입니다. 아니 그건 극소수의 천재 개발자들한테나 해당되는 얘기 아니냐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존 카맥이 만든 게임들을 하면서 즐겁게 자랐고, 지금은 워즈니악이 만든 컴퓨터로 일하며 꿈을 쫓고 있습니다. 여러 스타트업의 개발자들이 만든 앱을 쓰며 편하게 출퇴근을 하고, 쉬는 날 역시 개발자들이 만든 서비스로 취미생활을 즐기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힘을 얻습니다. 순수한 열정과 긍지를 가진 모든 개발자는 자신과 세상을 이롭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로켓 사이언스의 얘기만은 분명히 아니죠.
시련에 부딪힐 때마다 아이언맨이 한 일은 연구소에 짱박혀 끊임없이 실력을 갈고 닦은 일이었습니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수트를 40벌 이상 만들었죠. 토니도 하루 아침에 아이언맨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의 아이언맨 수트 이름은 ‘마크42’죠. 토니도 개발자로서 마크1이라는 MVP부터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발전해왔습니다. 판타지의 외피 안에 있는 본질은 현실의 개발자들 모습과 동일합니다.
영화 이미지 출처: Walt Dis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