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 ‘생활 속 불편함을 해결하려는 의지’
2014년 09월 03일

오는 9월 12일 개최하는 '비글로벌2014(beGLOBAL2014)' 준비로 실리콘밸리 현지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컨퍼런스 준비에 여념이 없지만, 현지를 취재하는 입장에서 가장 흥분되는 것은 길을 걷다가 유명 스타트업의 본사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팀이 머물고 있는 지역 가까이에도 우버, 트위터, 드롭박스, 옐프, 에어비앤비 등의 본사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장 참신한 기술과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실리콘밸리이지만, 샌프란시스코 현지 생활은 서울에 비해 불편한 점이 꽤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스타트업은, 바로 이 생활 속 '불편함'을 실제적으로 해결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죠. 실리콘밸리가 기회의 땅이긴 하지만, 이 곳에서도 탄생한 98%의 서비스는 실패합니다. 결국 2%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스타트업만이 살아남아 명예의 전당에 그 이름을 올립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주택난을 파고든 스타트업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현역에서 가장 집 값이 비싼 곳 중 하나입니다. 못해도 매달 150만 원을 월세로 내야한다는 말에 입이 떡 벌어졌죠. 깊은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길가에 노숙인들도 정말 많습니다. 그들은 이 날씨 좋은 도시에 어우러져 사는 또 하나의 구성원들입니다.

본사가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페이스북은 작년 1,300억 원을 들여서 직원들을 위한 주거시설을 지었습니다. 출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기도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주택난이 워낙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작년 기준 샌프란시스코의 주택 거래 평균가는 54만 달러(한화 약 5억 8천만 원)으로 그 전년에 비해 31.7%나 상승했다고 합니다. 집 가격만큼이나 비싼 것이 부동산 정보입니다. 목 좋은 상권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런 주택난을 배경으로 성장한 스타트업 중 하나가 트룰리아(trulia)입니다. 트룰리아는 기본적으로 부동산 정보를 알려주는 사이트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범위와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인데요. 범죄 빈도수, 이웃 정보, 통근 시간 등 타 부동산 사이트에서는 다루지 않는 생활 밀착형 정보를 인포그래픽 지도로 통합해서 보여주는 것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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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룰리아 구글 연동 서비스 소개 영상

최근 트룰리아는 구글 글래스와의 연동을 통한 서비스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사용자가 설정해놓은 조건에 맞는 집 근처에 가게 되면 구글 글래스가 자동으로 정보를 보여주는 식입니다. 어떤 이웃이 주변에 살고 있는지, 방은 몇 개인지, 가격은 어떻게 되는지를 길을 걸으며 파악할 수 있죠.

'주택난'이라는 고질적인 고민을 정보 큐레이션·인포그래픽·웨어러블테크와 같은 최신 기술을 이용해 풀어내고자한 트룰리아의 시도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지난 7월, 미국 대표 부동산 사이트인 질로우는 결국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트룰리아를 35억 달러(한화 약 3조 5,600억 원)에 인수했죠. 국내에는 네이버 부동산이 비난 여론을 감당하지 못하고 지난 4월 철수했지만, 빈자리는 역시나 스타트업이 아닌 대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 면에서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두 거대 부동산 사이트의 인수합병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버(Uber)가 필연적으로 탄생할 수 밖에 없었던 교통 환경

그러니까 서울에 비하면 교통도 상당히 불편한 편에 속합니다. 버스는 10분 이상 기다리는 것이 기본, 택시 요금은 한국에 비해 두세 배가 비쌉니다. 승차감도 그리 유쾌하지 않고, 도심이 아닌 주택가에서는 택시를 잡기 위해 한 시간 이상 기다리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다운타운 근처에는 무니(muni)라는 대중 교통이 자주 다니곤 하지만,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에 따르면 걸어가는 것과 비슷할만큼 느릿느릿하다고 합니다.

UberStockholm-039

외국에 비해 요금이 싸고, 밤 늦은 시간 아니면 어디서든 택시를 탈 수 있는 한국에서 우버(Uber)는 '고급 리무진 택시 서비스' 정도로 인식됩니다. 하지만 미국 현지 교통 상황을 보건대, 아마 우버의 첫 아이디어는 창업자 본인의 짜증과 고민에서 비롯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요금도 일반 택시에 비해 그리 비싼 편이 아니기 때문에, 이 곳 사람들에게 우버를 타는 것은 그리 사치스러운 경험이 아닐겁니다.

현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버와 같은 공유 경제 모델(혹자는 렌탈 서비스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하지만)이 잘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보통 9시에 출근해서 오후 5,6시면 퇴근하는 것이 아주 당연스러운 이 곳에서는 여가 시간을 이용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자신의 차, 남는 방 등을 공유해 추가 수입을 거둘 수 있다면 누구든지 기꺼이 나서겠죠. '공유 경제'가 한국에서는 '착한 공유'로, 미국에서는 '새로운 경제 모델'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어쩌면 노동자들의 퇴근 시간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야근을 안하면 불성실하다고 낙인 찍히는 한국에서, 회사원들에게는 일단 공유 경제에 뛰어들만한 '시간'조차 확보되지 않으니까요.

실리콘밸리에서 배워야 할 것, '생활 속 불편함을 해결하려는 의지'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는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유명합니다.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갈고 닦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론이죠. 하지만 저자가 책에서 또 한가지 중요하게 말한 것이 있습니다. 운 혹은 환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공에 반드시 필요한 기회가 늘 우리 자신이나 부모에게서 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로부터 온다.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 특별한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다.

일주일 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스타트업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동시에 '이 곳이 실리콘밸리이기 때문에' 성공한 면도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곳이 자금이 많이 흐르고, VC들이 많고, 다양한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곳인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구본을 올려 놓고 봤을 때, 실리콘밸리도 분명히 하나의 로컬에 불과합니다. 이 지역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불편한 문제들을 풀려고 하다보니, 다수가 사용하는 서비스가 되었는데 운 좋게도 이 곳이 실리콘밸리인겁니다. 실리콘밸리에서의 성공은 곧 글로벌 서비스로의 도약을 의미하게 돼죠.

그렇기 때문에 실리콘밸리에서 우리 스타트업이 따라해야할 것은, 쿨한 태도나 독특한 프레젠테이션 스타일보다는 '생활 속 작은 불편함들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꾼다'는 거창한 말을 자주 쓰는데, 결국 그 아이디어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잘되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그대로 배껴온다고 해서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요? 우리와 그들의 삶의 공간과 풍경이 다른 데 말이죠. 많은 카피캣 프로덕트들은 긴 기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얼마 전 인터뷰했던 트랜스링크캐피털의 음재훈 대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항상 홈그라운드를 먼저 초토화하면 거기서부터 기회가 생긴다고 조언합니다. 글로벌 진출이라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예요. 자국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업체가 원정 경기를 하러 나간다는 것은 똑똑한 배팅이 아닙니다. 카카오, 쿠팡을 보세요. 해외 진출 안 해도 얼마든지 1조 원 이상의 가치를 가진 기업들은 탄생하고 있어요.

해외 진출만이 크게 생각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한국 시장에 중점을 둔다고 해서 작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죠. 쿠팡의 김범석 대표가 작게 생각하는 인물일까요? 오히려 크게 생각만 하고 아무 것도 행동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스타트업도 많습니다. 자신이 집중하는 분야에서 무조건 넘버원이 되세요. 거친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세계 어느 시장에서도 승산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애초에 해외 시장 진출을 먼저 생각하고 있는 스타트업이 아니라면, 현재 우리가 있는 공간과 시간에 충실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을 가장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샌프란시스코와 서울 사람의 가려운 곳은 너무나 다르니까요. 음재훈 대표의 말처럼 홈그라운드인 한국 시장을 먼저 초토화하고나면 세계 어느 시장에서도 승산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좀 더 믿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VC들도 한국 스타트업의 기술력에 대해서는 찬사를 마다치 않습니다. 최근 국내 스타트업의 집결지가 된  '선릉 밸리', 이 곳에서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는 세계적 스타트업이 탄생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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