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회자 되는 회사가 있다. 2009년 아마존에 12억 달러(한화 약 1조2,310억 원)에 매각된 자포스(Zappos)다. 자포스의 CEO인 토니셰이는 현재 3억 5천만 달러의 개인 자산을 투입해서 라스베가스에 10만 평 짜리 도시를 짓는 다운타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카지노촌이 즐비했던 라스베가스 구 도심이 교육문화 사업과 스타트업 투자, 레스토랑 등 새로운 컨텐츠들이 만들어지며 활발히 변모하고 있다.
토니 셰이가 다운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3C'다. 그가 말하는 3C는 만남(Collision) - 공동학습(Co Learning) - 상호연결(Conectedness)이다. 유명한 건축가들을 고용하며 건물을 짓는 계획 도시가 아닌 누구나 도시의 일원이 되어 학습하고 연결 지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것이 다운타운 프로젝트의 주요 목표이다. 자포스의 다운타운 프로젝트에 버금가는 규모는 아직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재미있는 실험을 하는 조직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다른 의미의 공동체인 '사이(SAI)'를 운영하고 있는 김시온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사이(SAI)'는 기존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조직이라고 알고 있어요. 사이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사이(SAI)는 사람과 사람 사이, 공간과 공간 사이 등 다른 듯 닮은 둘 사이의 관계와 다양성에 집중한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즉 서로 다른 것들 사이에서 닮은 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을 하는 곳이죠. 사이는 주로 영상, 사진, 디자인(그래픽, 인테리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아티스트(무용,음악,연극), 패션 영역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들이 독립적으로 모여있다가 필요할 때 적합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서로 협력체계를 이뤄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형태로 일하고 있어요. '따로 또 같이', 혹은 '품앗이' 개념을 떠올리면 돼요. 이를 통해 사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조직의 모습은 컨텐츠 랩과 아티스트 허브(Content Lab & Artist Hub)입니다. 사이에 모여있는 개개인은 '사이안'이라고 부르고 있죠.
-일명 '사이안'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사이’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모인 ‘일하는 길드’ 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기에서의 길드는 온라인 게임에서 형성되는 유저들의 모임을 뜻하는 게임 용어인데요. ‘사이’라는 조직을 구상할 때 온라인 게임의 길드가 가진 특성에 착안했습니다. 게임 속에서 모인 길드원들은 단체로만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독립된 개체로서 게임을 즐기다가 필요한 순간에 모여서 공동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요. 이런 과정을 통해 개인 유저는 자신의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고 그렇게 각 캐릭터가 성장함으로써 길드 전체가 점점 강력해져요.
사이가 추구하는 조직의 모습에 바로 이런 게임 길드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게임하듯 즐겁게 일하고, 각자의 능력으로 독립적으로 일하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함께 모여 ‘협동의 가치를 발휘하죠. 이 과정에서 개인도 조직도 함께 성장할 수 있어요.
그리고 사이는 성수동에 ‘플레이스 사이’라는 오프라인 공간을 마련하고 있어요. 이 공간은 게임으로 치면 아지트 혹은 길드홀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인데, 이곳에서 사이 멤버들은 서로 처음 만나며, 프로젝트를 혼자 혹은 함께 이끌며, 부딪히고 다름에 대해 배우고,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 온라인 게임의 길드라는 조직을 그대로 오프라인으로 구현해놓은 컨셉이 재밌네요. 처음 그런 발상을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제가 게임 매니아예요.(웃음) 여담이지만 2005년 엔씨소프트에서 출시한 길드워라는 게임의 오픈베타기간동안 월드랭킹 1위 길드의 마스터로 활동한 적도 있어요. 공식 길드워 가이드북(게임문화사)에 공동저자로 참여하기도 했고 웹진에 기고도 했죠. 그 뒤 여러 번 길드 간담회에서 게임디자인 피드백을 주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 엔씨소프트에서 일했어요. 예술과 게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할게요. 다음 번 비석세스 인터뷰를 이끌기 위함이니 이해해주세요. (웃음)
- 어떠한 공간에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세미나를 여는 것, 또한 멤버쉽을 갖고 운영하는 것은 기존 코워킹 스페이스도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이예요. 기존 코워킹 스페이스와 달리 플레이스 사이만의 차별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우선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코워킹 공간과는 개념이 약간 다르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커뮤니티가 공동의 어떤 목표를 갖고 사람을 모으는 게 우선순위라면, 사이는 사이안의 독립적인 사업이나 생존을 더 우선순위에 두고 있어요.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기존의 코워킹 공간은 오픈스페이스로서 누구나 함께 하는 방식이어서 사람보다 공간의 의미가 더 크다면, ‘플레이스 사이’는 ‘사이’의 조직문화 DNA가 내재된 정규 멤버인 ‘사이안’이 상주하고 그들과 함께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이 공간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점, 그리고 프로젝트 이후 참여했던 사람들이 사이안이 되는 선순환적인 관계가 가장 큰 강점입니다. 즉 ‘공간’이 아니라 그 곳에 있는 ‘사람’에 우선적인 방점을 찍어 그 안의 사이안이 지닌 강점들을 발현시키고 성장시키는 공간이 사이라고 할 수 있어요.
- 사이를 열고 나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독특한 이벤트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 부탁 드립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길드홀(플레이스 사이) 3렙 건설 퀘스트에요. 게임 용어로 이야기 하니 이해가 안 될 수 있지만, 쉽게말해 플레이스 사이를 멤버3명이서 인테리어부터 시공까지 직접 만들었어요. 컴퓨터로 디자인과 감리를 하던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사이안 친구와 함께 한 달 반 동안 엄청 고생을 했죠. 또 포토그래퍼인 사이안 멤버를 위한 사진 촬영공간이 필요해서 각목과 합판으로 직접 스튜디오 공간을 시공하는 초능력을 발휘해야만 했습니다.(웃음) 그래도 길드홀이 완성된 후 이전 공간에 비해 사람이 일 할 공간으로 비춰져 믿음이 약한 멤버들에게 비전을 줄 수 있었어요. 지금은 함께 만든 공간이니만큼 이를 잘 활용하고 있고 앞으로 이 스튜디오 공간에서 연극이나 발레도 함께 공연할 예정이에요.
- 향후 사이의 계획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이가 사이안과 우리 사회에 어떤 역할과 선순환 기능을 가져다 줄 지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 잘 모르겠어요. 계속해서 즐거운 실험을 시도하다 보면 재밌는 게 나오지 않을까요? 자신과 세상이 공존할 수 있는 게임의 룰을 함께 만들고 관리하면서 인생 자체를 건강한 유희, 건강한 스트레스로 고양시켜가는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로서의 경험을 즐겁고 풍부하게 만드는 일들을 많이 하고 싶어요.
사이를 새로운 차원의 스타트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이에 내재하는 조직 문화의 본질을 바라보면, 스타트업으로서의 성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사이가 가진 두 가지 특징은 이와 같다.
첫째, 사이는 공간보다 사람에 중점을 둔다는 점이다. 처음 플레이스 사이에 방문했을 때, 조금은 놀랐다. 플레이스 사이는 값비싼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진 않았지만 사이안들이 조화롭게 인(人)teri-er를 이루며, 협력체계를 갖추고(만남), 각자의 전문분야를 살려(공동학습) 프로젝트를 진행(상호연결)해 나가고 있었다.
스타트업의 조직문화는 사내에 수영장이 있거나 보육 시설이 있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각기 전문분야를 갖고있는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만나 다양한 피드백을 거치며 서로의 성장을 도와줄 때에, 진정한 스타트업 조직문화가 완성될 수 있다.
둘째, 사이에는 절박하지만 자신의 작은 행동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각 영역의 프리랜서들이 모여 있다. 사람은 결핍이 있을 때 가장 창조적인 생각과 행동들을 한다고 한다. 어찌 보면 프리랜서들은 매일매일 생존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절박할 수 있지만 프리랜서로 홀로서기를 하는 이유는 아마 자신의 창조성을 유지하고 즐기기 위해서일 것이다. 자유를 느끼며 자신의 꿈을 주도적으로 선택한 동시에 가장 큰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사이안이었다.
스타트업은 절박하기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다. 세상의 틀에 얽메이지 않고 자유를 누리며 즐기는 대가, 자신의 작은 행동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시간을 투자하는 프리랜서(전문가) 조직이다.
자유를 표방하되, 책임질 줄 아는 프리랜서(전문가)들의 모임이자 색다른 실험들을 함께 놀이하며 즐기는 호모 루덴스의 조직, 사이에서 스타트업의 조직문화를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