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저 사람은 우리 회사에 어떻게 들어온 걸까?’, ‘인사과는 도대체 뭘 보고 저런 사람을 뽑은 거지?’ 직장에 근무하다 보면 누구나 인사고과에 빵점을 주고 싶은 동료가 있기 마련이다. 반면 ‘아 저 사람이라면 내가 정말 평생을 같이 일해도 즐겁겠다!’, ‘내가 보기엔 정말 훌륭한 인재인데 사내정치를 잘못해 안타까워!’ 라는 생각이 들만 한 사람도 있다.
정말로 내가 누군가의 인사고과에 영향을 줄 순 없을까? 이달 7일에서 16일까지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미디어 산업 콘퍼런스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를 통해 소개된 로이코이(ROIKOI)는 바로 이러한 물음을 통해 시작되었다. 지역을 기반으로 동료나 친구, 거래처 사람들을 평가하는 로이코이는 물론 기업 내의 인사고과에 내 의견을 직접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료에 의한 평가(Peer Voting)를 통하여 모든 기업에 존재하기 마련인 인재들을 발굴하고 널리 알리겠다는 로이코이의 설립 동기는 사뭇 진지하다.
'조용한 천재'들을 캐낼 수 있는 구인구직 서비스 로이코이
SaaS 플랫폼 회사인 바자보이스(Bazaarvoice) 에서 근무하였던 로이코이의 CEO 앤디 울프(Andy Wolfe)는 자신의 친구 라이언(Ryan)을 보며 로이코이의 창업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뛰어난 디자이너이며 성품마저 훌륭했던 라이언이었지만 소심한 성격 때문에 네트워킹에 능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를 안타깝게 여겨 매번 라이언을 칭찬하고 다니는 자신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에 착안하여 비록 네트워킹에 능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해당 지역이나 산업계 내에서 훌륭한 평판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고 나아가 회사를 연결해주는 로이코이 서비스를 만들었다. 울프는 링크드인(LinkedIn)이나 몬스터(Monster)와 같은 구인·구직 사이트와는 선을 분명히 그었다.
링크드인이나 몬스터는 사용자가 직접 이력서를 올림으로써 자신을 PR하지만 로이코이의 경우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PR하지않아도된다. 즉, 자신의 평판이나 능력을 남들이 떠들어주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만,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만한 가치를 지닌 내성적 사람들을 위해 주변 사람들이 대신 그들의 가치를 드러내줄 수 있는 서비스다.
채용(Hire), 건너 뛰기(Skip), 해고(Fire) 3중 택일의 간단한 인터페이스
로이코이의 이용방식은 간단하다. 페이스북 계정이나 차후 서비스될 링크드인 계정을 이용하여 로그인한 후 동료를 평가하는 것이다. 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채용(Hire), 건너 뛰기(Skip), 해고(Fire) 중 하나의 버튼을 선택하면 평가가 완료된다. 언뜻 간단한 게임과 같은 이러한 인터페이스는 철저하게 익명으로 이루어진다. 어떠한 코멘트나 ‘좋아요’ 버튼도 없다.
Hire/Fire 버튼을 통해각 인물들은 점수를 쌓고 점수는 리더보드(Leadearboard)를 통해서 확인 할 수 있다. 너무나 간단하여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할 것 같지만 사실 이처럼 단순한 인터페이스가 바로 로이코이가 원했던 것이다. 적절한 인재를 추천하는 데에는 수 만 가지 근거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들을 세세히 나열하거나 표현하도록 하지 않고 단순히 Hire/Fire 의 클릭버튼만 누르게 함으로서 사용자에게 피로감을 주지 않고 자신의 순위나 타 사용자의 점수를 확인하기 위해 재방문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초창기 모델이 기숙사 내 여학생들의 인기투표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간단히 무시하기엔 꽤 큰 잠재력이 있을 법한 기능이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점도 가장 큰 이점 중의 하나이다. 보통 익명성을 띄고 있다고 하면 악성 댓글이 떠오르기 마련이어서 아무 생각 없는 평가를 할 것이로 생각하지만 로이코이의 평가방식이 ‘투표’임을 생각해보면 ‘비밀투표의 원칙’ 이 갖는 이점을 가져가는 것은 당연하다. ‘익명성’ 이 가지는 ‘표현의 자유’의 이점을 철저하게 적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CEO 울프는 “로이코이에선 오직 훌륭한 점수와 사람만이 표시됩니다. 좋지 않은 점수와 개인투표는 철저하게 비밀이지요. 시크릿(Secret)이나 위스퍼(Whisper)와 같은 서비스들이 바로 익명성’이 ‘진정성’(authenticity)에 있어서 핵심요소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튼튼한 기반의 플랫폼 구축이 핵심
너무나 간단하고 기업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서비스이지만 오히려 그러한 점 때문에 많은 잠재력이 있는 서비스라는 것은 분명하다. 공식채용보다 직원들의 추천에 의한 상시채용이 더욱 자연스러운 미국의 기업문화를 고려해볼 때 더욱 그렇다. 하지만 Hire/Fire의 클릭만이 전부인 간단한 서비스가 직접적으로 채용에 도움을 주는 목적도 아니고 그 평가가 합당한 지를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기에 서비스의 가치에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며칠 전 오픈한 베타서비스가 15명의 엔젤투자자들로부터 약 145만 달러(한화 약 15억3,323만 원)의 투자금을 유치하고 이미 십만 개 이상의 평가와 만 여명의 사용자 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로이코이의 성장가능성과 잠재력을 간접적으로 시사해준다. 현재까지 로이코이는 비즈니스모델이나 수익창출을 고민하기에 앞서 일단 안정적이고 확장 가능한 플랫폼을 만들어 내성적인 사람들을 돕는다는 취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정말 많은 파급효과를 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서비스라는 것이 로이코이의 지원자들과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사실 로이코이는 미국 내에서도 구인·구직의 패러타임을 깨는 도발적인 아이디어다. ‘자기PR시대’ 라는 말이 뜬 것도 불과 몇 년 전인만큼 이런 아이디어는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로이코이는 구인·구직의 패러다임을 깰 의도도, 기업과 구직자간의 직접적인 커넥션을 만들려는 의도도 아니다. 그들은 순수하게 그저 내성적인 사람들도 주변에서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들에겐 적절한 수익모델도 거창한 기능도 필요하지 않았을 지도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런칭 1주만에 16억 원 가량의 투자금을 얻었고 만여 명의 사용자들을 확보하였다.
지금에 와 돌이켜보면 페이스북, 유투브를 비롯하여 거대기업으로 성장하거나 천문학적인 금액에 인수되는 많은 서비스들도 초창기에는 아주 사소한 동기와 다른 서비스에 비해 보잘것없이 단순한 기능으로 시작한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지금의 서비스를 있게 한 최초모델은 돈을 벌기 위해였다기보단 단순 재미를 위해 하였던 일들이다. 그러나 그 사소함 안에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 로이코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문점을 해결해 나아가고 그 잠재력을 발휘하여 ‘시작이 반이다’ 라는 스타트업 격언의 사례에 걸맞는 서비스가 될 수 있을지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