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 카피가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모르겠고 낯간지럽지만, 여타 코워킹스페이스가 '그냥 커피'라면 오늘 취재한 '로켓스페이스(Rocket Space)'는 'T.O.P'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으로부터 가장 주목받고 있다 하여 방문하게 된 로켓스페이스는 명성에 걸맞게 우버(Uber), 스포티파이(Spotify) 등의 빌리언 달러 스타트업들을 배출해내고 있었다.
기업 가치 18조짜리 우버가 탄생한 코워킹스페이스라니. 셰릴 샌드버그는 '로켓에 자리가 나면, 어떤 자리냐고 묻지 말고 일단 올라타라'고 말했다. 문맥은 다르지만 스타트업 입장에서 로켓스페이스에 자리가 나면, 창가든 구석이든 일단 올라타고 싶어지지 않을까.
현재 로켓스페이스에는 스테이영, 뉴스젤리, 제이디랩을 비롯한 10여 개 국내 스타트업도 입주해있다. 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은 무엇인지, 로켓스페이스의 던칸 로건(Duncan Logan)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봤다.
될성부른 떡잎만 책상을 얻는다, 로켓스페이스의 성공 비결
로켓스페이스는 2011년 설립되어 현재 180개 스타트업과 700여 명의 사람이 입주해있다. 3년 만에 배출해 낸 빌리언 달러 스타트업은 4곳, 입주 기업이 유치한 투자 자금만 총 30억 달러(한화 약 3조1,302억 원)를 훌쩍 넘는다. 국내에도 수많은 창업 보육 센터가 존재하지만 큰 성공을 거둔 스타트업을 배출해낸 사례는 많지 않다. 로켓스페이스만의 경쟁력에 관해 묻자 던칸 로건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로켓스페이스는 기술의 핵심(nucleus)이 되길 원해요. 그렇기 때문에 로켓스페이스에 입주할 기업은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하나는 '기술 스타트업'일 것, 두 번째는 '최소 한 차례의 투자를 유치했을 것'입니다. 하버드나 스탠포드대가 명문인 것은, 뛰어난 학생들을 끌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로켓스페이스 역시 뛰어난 기술력과 잠재력을 가진 스타트업을 데리고 오는 일에 가장 집중하고 있습니다.
로켓스페이스는 실제 엑셀러레이터와 코워킹스페이스의 중간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완전한 보육 프로그램을 갖춘 것도 아니지만, 누구나 와서 일할 수 있는 공간도 아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스스로를 '테크놀로지 캠퍼스'라고 부른다. 보통의 엑셀러레이터가 입주한 스타트업에게 일정량의 지분을 요구하지만, 로켓스페이스는 일절 삼가고 있다. '지분을 요구하면 훌륭한 스타트업이 입주하려고 하겠느냐'는 로건 대표의 신념 덕분이다.
빈 책상이 늘어나도 입주 기업의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무작정 채워넣지 않는다. 기업의 성공 잠재력을 알아볼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로건 대표는 아주 일반적이면서도 실질적인 대답을 들려줬다.
한 스타트업의 잠재력을 판단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첫 라운드에서 누가 투자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안드레센호로위츠나 엑셀파트너스가 투자한 기업은 성공 가능성이 높죠. 또 창업자 본인의 과거 사업 경험도 참고 사항이 됩니다. 이미 로켓스페이스에 입주하기 전 1조 8천 억에 회사를 매각한 창업자도 있었어요. 사실 아이디어만으로 스타트업을 선택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실질적인 지표가 필요하죠.
로켓스페이스는 보모가 아닌 성장을 위한 토양이다
기본적으로 이들이 입주 기업에게 제공하는 것은 '서비스로서의 사무실(Office as a Service)'이다. 개발자들이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처럼 로켓스페이스는 사무 공간과 모든 사무 기기를 입주 기업에게 제공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이다. 특별한 점은 이들의 추가적인 비즈니스인 '로켓 X'와 '로켓 U'에 있다.
로켓 X란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연결을 돕는 프로그램으로, 현재 삼성·마이크로소프트·소니 등의 글로벌 기업이 파트너사로 등록되어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대기업도 스타트업과의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로켓스페이스는 이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로건 대표는 한 인터뷰를 통해 이를 '기업 데이팅(Corporate dating)'이라고 표현한 적 있다.
지난 4월 첫 선을 보인 로켓 U는 개발자들에게 코딩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파이썬(Python)과 장고(Django) 를 중심으로 12주의 일정을 수료한 학생들은 로켓스페이스 내의 스타트업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국내 창업 보육 센터가 사무 공간은 물론 자금, 보육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것에 비해 로켓스페이스가 스타트업에게 주는 것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그러나 로건 대표가 자신하듯, 질 높은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협업하고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로켓스페이스는 성장을 위한 최고의 토양이다. 이들이 '퀄리티'에 그렇게도 집착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인터뷰를 진행 중인 스테이영의 강윤모 대표(좌)와 로켓스페이스의 던칸 로건 대표
로켓스페이스가 바라보는 빌리언 달러 스타트업의 조건
수 많은 스타트업을 지켜봐 온 로건 대표가 정의내리는 1조 가치 스타트업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는 성공의 모든 것은 팀으로부터 온다고 답했다.
보통 3명이 한 팀을 이룬다고 친다면, 저는 이런 팀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한 명은 엄청나게 부끄러움이 많지만 굉장히 테크니컬하죠. 또 한 명은 사람들 앞에 나서서 서비스를 보여주는 걸 좋아해요. 마지막 한 명은 마케팅 천재죠. 성공하기 위해 팀원들은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가 볼 때 가장 어려운 경우는 개발자 셋이 모인 팀이다.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가야할 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성공의 비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을 고용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로켓스페이스에 좋은 스타트업을 유치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인 것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실제로 성공하는 팀은 스퀘어, 트위터, 에어비앤비 등 좋은 회사로부터 인재를 끌어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매우 쉬운 답이지만 실제로 해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디스럽션(disruption, 파괴적 혁신)'의 정의에 대해 물었다. 그에게 있어 세상을 바꾸는 스타트업이란 무엇을 뜻할까.
제 생각에 혁신(innovation)과 디스럽션은 같은 의미예요. 마치 두려움(fear)과 탐욕(greed)의 관계와 같죠. 디스럽션의 진정한 정의는 '내일의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오늘의 수익을 스스로 잡아먹을 수(cannibalize) 있는 능력'입니다. 기업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시장을 잠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예요. 예를 들어 아이폰은 아이팟을 죽였죠. 그리고 아이워치는 아마도 아이폰 시장을 잠식하게 될 겁니다. 바로 이런 능력이 디스럽션이라고 생각해요.
로건 대표는 현재 로켓스페이스에 입주해있거나, 향후 해외 진출을 꿈꾸는 한국 스타트업에게 '스스로를 드러내라'는 조언을 남겼다. 그에 따르면 실리콘밸리는 굉장히 작은 생태계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드러내고 인정받으려는 노력만 있다면 영향력을 넓히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아시아 출신 창업가들이 네트워킹에 대해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점을 염두에 둔 듯했다.
로켓스페이스는 현재 뉴욕, 보스턴 등 미국을 가로질러 유럽에까지의 진출을 앞두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홍콩 등지의 아시아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고 하는 데, 서울에서도 곧 로켓스페이스 한국지사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로켓스페이스의 역사와 기록을 정리해 둔 인포그래픽▲자유롭고 세련된 분위기의 사무 공간
▲인상적인 문구
▲주차장 계의 에어비앤비, '루스트(roost)'의 사무 공간 전경
▲로켓스페이스에 입주해있는 '뉴스젤리'의 유채원 기자,
로켓스페이스의 네트워킹 이벤트로부터 특히 많은 도움을 얻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 인터뷰 진행 : 강윤모 스테이영 대표
- 인터뷰 작성: 정새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