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과 아트, 그리고 테크놀로지 기반의 특기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Google의 Creative Lab의 목표는 다름 아닌 노벨 평화상 수상이라고 한다.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세상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지를 세상에 보여주고자 하는 그들을 보며, 문득 나의 첫 스타트업 시절이 떠올랐다. 문화와 기술을 기반으로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라는 다분히 현학적인 미션을 가지고 시작했던 나의 첫 스타트업의 시작은 그런대로 아름다웠다.
300만원의 자본금과 노트북 하나로 작은 오피스텔에서 시작했었던 나는 컵라면과 삼각김밥과 함께, 며칠 밤을 세우고,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햇살을 바라보며, 나름 감상에 젖기도 했었던, 그야말로 순진한 스타트업 CEO였다. 없는 형편에 어렵사리 구성한 팀을 기반으로 런칭한 첫 서비스는 나름 그 독특함으로 주목을 받았고, 법인통장의 계좌에 평생 보지 못했던 0의 갯수를 확인하며, 미국의 큰 방송국에서 인터뷰 요청이 올 때쯤, 난 서서히 길을 잃어 갔다. 네트워킹이라는 미명하에,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는 술자리와, 강연, 심사 일정 등을 소화하느라 건강을 잃어 갔고,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진화시켜 나아가야 할 우리 회사만의 차별화된 가치 Intrinsic value에 대해 소홀하게 되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스스로에게 다짐할 무렵엔, 이미 인건비 경쟁의 용역 프로젝트들로 연명하지 않으면 회사의 생존이 어려운 시점까지 와버리게 된 것이다.
굳이 Lean start up의 BML(Build-Measure-Learn) process를 빌리지 않더라도, Start-up은 성장 단계별로 구성원들과 함께, 회사만의 가치 Intrinsic value를 내부적 /외부적 시선으로 구체적으로 인지하고, 소통하며 이를 회사 성장 주기별로 구조화하여, 지속적으로 고객들과의 피드백을 통해 진화 시켜 나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이와 같은 이론을 실천하기 위해서 창업자는 Start-up의 숙명적인 리스크들(공동 창업자들과의 비전 공유와 지분 관계, 지속적인 자본 구조 확보, 글로벌 마케팅 역량, 낮은 브랜드 인지도, 직원들의 지속적인 동기부여, 가족 관계 및 결혼 등) 역시 능숙하게 대응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소수의 특출난, 혹은 운이 좋은 Start up들을 제외한다면, 평범한 우리에게 이와 같은 다양한 이슈들의 A부터 Z까지 입체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처하는 과정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도 한 것 같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실패라는 것이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접근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에이드리언 슬라이워츠키는 <업사이드>라는 저서를 통해 프로젝트의 실패에 대한 비율: 할리우드 영화(60%), 기업 M&A(60%), IT프로젝트(70%), 새로운 식품(78%), 벤처캐피탈 투자(80%), 신약제품(90%이상)을 제시하며, 우리의 부족함에 대한 힐링의 근거를 제시해 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실패라는 것을 일반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일지라도, 실패를 평생의 낙인으로 간주하고, 재기의 기회를 부여하는 데에 인색하면서도, 창조 경제를 지향하는 이중적인 구조의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경향성에 대한 뻔뻔함과 기억 상실증(?)이 필요한 것 같다. 미국 최대 전자결제서비스기업인 페이팔(PayPal)의 핵심 창업 멤버들로 구성된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이자, 링크드인의 창업자이기도한 리드 호프먼은 The Start up of you라는 저서를 통해 이와 같은 뻔뻔함과 기억 상실증을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침착성, 끈기(tenacity)라고 표현한 바 있다. 리드 호프먼은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가 200여 차례 투자 제안을 거절 받으면서도, 지향하고자 했던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던 예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판도라의 10여년에 걸친 끈기를 통해, IPO에 성공한 예를 들며, 성공하는 벤처 C.E.O의 덕목으로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끈기, 침착성(tenacity)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끈기, 침착성(tenacity)이라는 덕목을 보며, 떠오른 지인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중소기업청에서 주관한 기업가정신 교육과정을 함께 6개월동안 수료하며, 룸메이트로 지냈던 분인데, 마침 교육이 지방에서 진행되어, 교육을 마치면 함께 사우나도 가고, 맥주도 한 잔씩 하며 정을 많이 쌓았던 기억도 지나가는 데, 그야말로 인생의 파도가 많은 영화와 같은 삶을 살아오신 벤처인이다.
이 대표님는 대학에 다니던 1992년 학원 겸 교육기업 ‘에디슨진학연구소’를 세웠다고 한다. 1994년에는 큐뱅크라는 문제은행 소프트웨어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학원 수강생이 절반으로 줄었다. 첫 시련이었다. 힘들었지만 죽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1990년대 말 벤처 붐이 일자 그는 다시 도전했다. 인터넷 생활정보 서비스업체 ‘인포라이프’를 차려 10억 원을 투자받았다. 29세의 나이에 벤처기업 대표가 됐다. 하지만 경영에는 문외한이었다. 사무실 인테리어에 돈이 줄줄 샜고 자신보다 나이 많은 경영진은 감당이 안 됐다. 2년여 만에 자본금 10억 원은 사라졌다. 회사가 망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4년간의 도피생활이 시작됐다. 공사판 막일을 하며 자살도 여러 번 생각했다. 검찰 조사를 받을 때는 “차라리 사형시켜 달라”고 했다. 40일 동안 교도소 생활도 해봤다. 우여곡절 끝에 2008년 파산면책을 받았다. 그러나 ‘낙오자’라는 낙인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고 한다. 이 대표님은 “나를 아는 이들 모두가 내가 또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다고 한다.
창업 실패, 가족과 지인들의 외면, 자살 시도, 수감생활은 그를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었지만, 현재는 클래스베리 라는 아이디어로 학생들의 출석 여부를 학부모에게 문자로 알려주는 출석관리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여, 40여 개 초등학교, 1800여 명의 교사가 쓸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이 대표님은 한국방과후교사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으며, 훗날 본인의 실패에 대한 경험과 자산들을 기반으로, 후배들을 키워내며, 한국의 벤처 생태계에 기여하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전한 바 있다. 필자는 Start-up이란 기본적인 생존과 product의 차원을 넘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끊임 없이 소통하고 진화하는 과정이라고 여기기에, 여전히 이 대표님을 응원하고 있다.
어쩌면,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끈기, 침착성(tenacity)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한 확신과 스스로의 경향성에 대한 겸허한 수용에 기반해 있는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열정은 때론 휘발유처럼 증발될 때가 있다. 하지만,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한 깊고 견고한 확신은, 실패의 미학을 완성하며, 묵묵히 한 걸음씩 걸어가는 우리에게 소중한 친구이자, 등대이기도 한 것 같다.
(P.s클래스베리의 이대표님에 대해 더 궁금하신 독자여러분이 계시다면, 아래의 링크를 권해드립니다.
동아일보의 2013년 4월 22일 [창조경제로 가는 길]<3>성공의 선순환을 許하라 http://news.donga.com/3/all/20130422/5460416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