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간에 배운 수요 공급 곡선을 기억하는가? 수요곡선을 한번 떠올려 보자. 가격이 내려가면 그 가격에 상품을 사려는 사람은 늘어난다. 기업가들은 흔히들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을 결정할 때 이와 같은 수요의 법칙이 그대로 현실 세계에서도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실상은 어디 이 일차원 그래프 위에서 움직이는가?
페니갭, 50달러보다 받기 힘든 1페니
일반적으로 낮은 가격이 더 많은 수요를 만들지만 한 지점에서 수요의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현상이 일어난다. 바로 공짜이던 상품에 10원, 1페니(penny)이라는 가격을 붙일 때다. 5천 원짜리 상품을 5만 원으로 올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 공짜이던 상품에 10원을 받기가 더 힘들다. 완전한 공짜와 아주 약간의, 정말 아주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데에 엄청난 갭이 있다는 것이다. 퍼스트 라운드 캐피탈(First Round Capital)의 파트너 조쉬 코펠만(Josh Kopelman)은 이 갭을 ‘페니갭(Pennygap)’이라고 칭했다.
조쉬 코펠만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짜로 제공하는 것이 가격을 책정해서 판매하는 것보다 실질적으로 더 경제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주장은 모바일 세계에서 더욱 근거가 있어 보인다.
모바일 세상은 이전까지 존재해오던 기존의 사회와 산업이 모두 믹스된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앱스토어의 유통과 iOS, 안드로이드 같은 플랫폼 덕분에 엄청난 수의 유저가 손쉽게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작은, 어떻게 보면 상상할 수 없는 큰 세상 속에서 세상만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축소판 세상 속에서도 페니갭은 두드러진다. iOS 모바일 게임의 최고 수익 순위를 보자. 띵킹 게이밍(Thinking Gaming)의 순위를 보면 상위 50개의 게임 중 단 2개의 게임, 12위의 트라비아 크랙(Travia Crack)과 20위의 마인크래프트(Minecraft)만이 유료 게임임을 확인할 수 있다. 50개 중 2개를 제외한 48개의 게임이 기꺼이 공짜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안드로이드의 상황도 비슷하다. 한국 안드로이드 모바일 게임 최고 수익 순위를 살펴보면 상위 300개 게임 중 단 하나, 279위의 데몽 헌터(Demong Hunter)만이 유료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인앱(in-app) 상품이다. 앱 자체를 다운받아 사용하는 것은 무료지만 게임 안에서 아이템 등을 판매하는 것이다.
공짜의 힘을 보여준 스튜어트 홀의 실험
앱봇(Appbot)의 창업자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은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실험을 진행했다. 7 미닛 워크아웃(7 Minute Workout)이라는 앱을 출시했을 때 그는 몇 주 동안 유료로 제공하던 앱을 공짜로 바꿔본 것이다. 이 작은 변화의 결과는 엄청났다. 공짜로 바꾼 지 3일만에 앱 다운로드 수는 하루 평균 7만 2천 건에 육박했다. 이는 유료앱일 때의 2천5백 배에 해당한다.
또한 수익도 크게 늘었다. 스튜어트 홀은 앱 다운로드를 공짜로 바꾸며 프로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 결제를 해야 하는 인앱 결제 시스템을 추가했다. 그 결과 앱의 수익은 300% 증가했다. 앱을 다운받은 사용자 중 97%는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았지만 3%의 고객이 충분한, 아니 넘치는 비용을 기꺼이 지불했던 것이다. 이 공짜의 힘, 페니갭의 힘을 증명해 보인 스튜어트 홀의 실험은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1페니도 받기 어려운 시장에서 연간 99페니 받아내는 왓츠앱
왓츠앱(WhatsApp)은 이 페니갭을 멋있게 뛰어넘은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왓츠앱은 1년간 무료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연간 0.99달러(한화 약 1천 원)의 사용료를 지불 해야 하는, 프리미엄(Freemium) 가격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왓츠앱은 수억 명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190억 달러(한화 약 20조 원)에 페이스북에 인수됐다. 1페니를 받아내는 것도 이렇게 쉽지 않은데, 0.99달러, 무려 99페니를 ‘연간’받으면서도 왓츠앱이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초기 사용자를 끌어들이는데 충분한, 1년이라는 시간 덕분이다. 왓츠앱과 같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메시징 서비스는 네트워크의 사이즈와 질이 서비스의 가치를 결정하며 빨리 네트워크를 구축하는가가 승리의 관권이다. 네트워크 비즈니스는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위너 테익스 올(Winner takes all) 게임이다. 초기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그 네트워크가 자연적으로 더 큰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기 위해 스타트업은 초기 우세를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이 초기 우세를 위해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렇게 초기 우세를 위해 비용을 지출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상품을 공짜로 제공하는 것이다.
왓츠앱은 기업 가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자연적으로 성장하는 위너 테익스 올 효과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1년 동안의 공짜 모델은 초기에 네트워크를 형성하기에 적절한 모델이며 왓츠앱은 그 비용을 감수하겠다 결정한 것이다.
두 번째, 이제 필요한 것은 1년간 사용한 유저들이 0.99달러라는 사용료를 지불하게 하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게 할 양질의 서비스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용자들을 꼬셔야 하는 것이다
왓츠앱은 소비자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데에 중점을 뒀다. 바로 광고 없는 메시징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이는 왓츠앱이 자사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글, ‘우리가 광고를 팔지 않는 이유’에서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광고에서 해방된 기업을 꿈꿨다. 광고가 보고 싶어 다음 날 아침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다음날 나누게 될 대화를 기대하며, 또는 오늘 대화하지 못한 누군가를 아쉬워하며 잠드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우리는 왓츠앱의 모든 사용자를 기쁘게 하고 그들이 매일 아침을 기대할 수 있도록 돕길 바란다.
광고가 우리의 삶에 끼어들게 되면 우리가 모두 판매되는 제품이 된다.
우리는 데이터나 사용자 정보는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WhatsApp의 모든 개발자는 새로운 서비스와 콘텐츠 개발을 위해 고민하고 세계의 모든 휴대전화에서 믿을 수 있는 메시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는 날을 꿈꾸며 노력하고 있다.
나는 앱 스토어 에서 $0.99를 보며 고민하시는 분들께 묻고 싶다. 무료 앱을 사용하며 나도 모르게 치르고 있는 대가는 생각해 보셨나요?
왓츠앱의 성공은 페니갭을 뛰어 넘은 특별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사용자들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실험과 사례는 페니갭을 인정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보라고 조언하고 있는 듯 하다. 이제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페니갭 따위에는 개의치 않는 최적화된 상품으로 정면돌파할 것인가? 아니면 페니갭을 피해갈 수 있는 영리한 마케팅 방법을 찾을 것인가?
자료 출처 : first R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