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테일(long tail)과 “좀 기다려 봅시다”
2015년 06월 05일

무언가 새로운 기술이나 움직임이 시장에서 포착될 때 대부분의 기업은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니 좀 기다려 봅시다'라는 말을 한다. 이런 기업들의 공통점들이 있다 – 모두 후발주자가 되어 선두주자를 따라잡기 위해 허덕거린다(이런 기술이나 움직임이 시장의 주류가 되는 경우)는 점이다.

왜 그럴까? 특히 나는 이 '좀 기다려 봅시다'를 대기업 분들한테 최근에 정말 많이 들었는데 이분들의 논리는 재미있는 기술이지만 아직 의미가 있는 비즈니스가 될지, 돈을 벌 수 있을지, 이러다가 그냥 조용히 사라질 것인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기 때문에 조금 더 예의주시하면서 뭔가 더 진행되거나 발전이 되면 그때 본격적으로 검토를 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분들이 간과하고 있는 건 이미 오랜 시간 동안 롱테일(long tail)들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쌓여왔다는 점이다. 시장에서 누군가 이걸 눈치채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이건 주류가 될 수 있는 확률이 그렇지 않을 확률보다 더 커졌기 때문에 더 기다리면 이미 늦었다는 걸 의미한다.

스크린샷 2015-06-05 오전 10.08.28

이 그림은 전형적인 하키스틱 성장 그래프이다(J curve라고도 하고 exponential curve라고도 한다. 오랫동안 천천히 성장하다가 – 너무 천천히 성장해서 멀리서 보면 성장하지 않는 것 같아 보임 – 한순간 갑자기 확 성장하는 그래프 모습이 하키선수들이 사용하는 하키스틱 모양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천천히 성장하다가 갑자기 확 뛰는 그 시점 바로 전까지는 누구나 다 '좀 기다려 봅시다'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조금만 더 자세히 관찰하면 이미 오랜 시간 동안 롱테일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패턴이 보인다는 점이다. 연구원들이나 박사들한테만 보이는 게 아니다. 그 누구라도 시간과 관심을 두고 보면 이런 패턴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라는 게 이 작은 롱테일들이 한방에 확 뛰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성장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비약적인 성장을 하면 그동안 언저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든 기업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며, 이게 바로 미래인 양 파리같이 달려든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누군가는 이 트렌드를 이미 파악했고 이 분야에 엄청난 투자와 집중을 했기 때문이다. 하키스틱 헤드가 시작되는 시점은 이미 늦었다. 이미 저 앞에 가고 있는 선두주자를 따라잡아야 하는 피곤하고 비싼 게임을 해야 한다.

이런 내 생각에 대한 반론 또한 충분히 존재한다. 좀 더 기다리지 않고 굉장히 많은 자원을 투자했는데, 하키스틱 커브가 위로 안가고 밑으로 가서 눈 깜짝할 사이에 이 산업이 망해버린다면? 당연히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고 어쩌면 이럴 확률이 더 높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 요샌 중소기업도 – 소위 말하는 ‘신사업’을 담당하는 전담팀을 가지고 있다. 우수한 내부 인력 또는 외부에서 주로 전략이나 컨설팅하던 분들을 영입해서 구성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런 신사업 팀들은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아무도 하지 않는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는 데 어떻게 성공만 할 수 있나? 오히려 실패하는 게 당연하다. 이들은 롱테일들이 생기는 게 보이면, 과감하게 베팅을 해야 한다. 실패해도 이 정도 투자는 회사에서 충분히 할 수 있고, 실패하면서 얻는 많은 배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명실상부한 시장의 일인자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뒤늦게 출발한 후발주자들이 하키스틱 헤드가 이미 진행된 산업에서 1등을 따라잡는 건 정말 쉽지 않기 때문에 매우 유리한 포지셔닝을 할 수 있다. 이후부터는 실행만 잘하면 기업의 제2의 성장을 위한 발판을 탄탄하게 다질 수 있을 것이다.

예전부터 이 포스팅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한국 대기업 담당자들의 '좀 더 두고 봅시다' 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또 얼마 전에 “LOSING THE SIGNAL” 이라는 블랙베리의 급성장과 몰락을 다룬 신간 도서에 대한 소개를 읽으면서 오늘 포스팅해봤다. 블랙베리야말로 '좀 기다려 봅시다'의 전형적인 사례인 것 같다. 아이폰이 나온 후 이미 시장에서는 터치스크린, 앱, 그리고 아름다운 디자인에 대한 롱테일 욕구/필요성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자세히 관찰했으면 앞으로 시장은 이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게 너무나 명확했지만, 블랙베리 임원들은 스스로의 후광에 취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계속 두고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정말 너무나 갑자기 시장이 바뀌었다.

그제야 정신 차린 블랙베리는 스톰(Storm)이라는 키보드가 없는 터치스크린 폰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 출시했다. 정말 최악의 제품이었고 완전 실패작이었다. 그리고 캐나다의 자존심이자 세계 최고의 폰 회사였던 블랙베리의 시장점유율은 8년 만에 0.4%로 하락했다.

또 뭐가 있을까? 비트코인? 한류? K-pop? 나는 개인적으로 비트코인에 한 표 주는데 다른 분들의 의견과 생각도 궁금하다.

원문 출처 :  THE STARTUP BIBLE
이미지 출처 : artimagesf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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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홍 대표는 한국과 미국의 네트워크와 경험을 기반으로 초기 벤처 기업들을 발굴, 조언 및 투자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스트롱 벤처스의 공동대표이다. 또한, 창업가 커뮤니티의 베스트셀러 도서 ‘스타트업 바이블’과 ‘스타트업 바이블2’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어린 시절을 스페인에서 보냈으며 한국어, 영어 및 서반아어를 구사한다. 언젠가는 하와이에서 은퇴 후 서핑을 하거나, 프로 테니스 선수로 전향하려는 꿈을 20년째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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