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탈 많았던 영주권 이야기
2014년 0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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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외국인이 미국에 체류하려면 누구나 다 한 번쯤은 겪어야 하는 과정이 있다. 바로 비자와 이민국이다. 한국에서 좋은 학교 나오고, 미국에서 더 좋은 학교에서 유학한 후 졸업과 동시에 한국으로 귀국해서 취업하는 사람들의 95% 이상은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서 돌아간 게 아니라 미국에서 일 할 ‘신분’이 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최소한 내 주위 사람들은그렇다). 외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일하려면 그에 적합한 비자나 영주권이 있어야 하는데 이게 아직도 그리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미국도 이제 외국인 비자를 바라보는 태도와 인식에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고, 최근 들어 실리콘 밸리를 위주로 미국 이민법 개정을 – 대표적인 게 스타트업 비자 (Startup Visa)이다 – 재촉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지만, 의회에서 어떤 결정이 날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한다.

미국이 외국인들의 미국 내 취업에 대해서 이렇게 까칠하게 구는 건 자국민의 고용 보호 때문이라고 하는데 – 채용 가능 인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외국인이 취업하면, 그만큼 미국인이 취업할 수 있는 자리가 줄어든다는 논리 – 이런 이민법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 특히 실리콘 밸리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눈에 보이고 있다. 한국, 중국, 인도 등 다른 나라 출신의 머리 좋고 능력 있는 외국인들이 미국에서 창업하고 싶어도 비자 때문에 못하기 때문에 다시 자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오히려 미국 내 고용 창출의 기회를 현재의 미국 이민법이 자발적으로 없애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인구 중 이민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13%지만, 이들은 소기업의 20%를 소유하고 있고, 이민자들이 창업한 소기업들은 2010년도에 500만의 고용 창출을 했다. 스타트업과 창업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는 코프먼(Kauffman) 재단에 의하면 미국의 가장 잘나가는 스타트업의 절반이 외국인들에 의해서 창업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투자한 스타트업들도 보면 90% 이상이 창업팀에 최소 1명 이상의 외국인이 있다. 이 회사들은 미국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미국 경기를 강화한다 (hopefully).

오바마 정부도 당연히 미국 경제를 위한 외국인들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있고, 이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으로서 학생비자, 투자비자, 영주권의 과정을 모두 직접 체험한 내가 미국 정부에 정말 바라는 건 이민법을 직접 필드에서 실행하는 국토안보부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담당자들 교육을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여기 내 경험을 살짝 공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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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마다 미국 밖으로 나가서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나는 2008년도에 영주권을 신청했다. 미국의 이름있는 학교에서 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내가 몸담은 테크 분야에 일하려면 나만의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므로 큰 문제 없이 10개월 안에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게 이민 변호사의 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2.5년이라는 길고 지루한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 나는 이민국 사람들과 여러 번 충돌하면서 그냥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까지 했었다. 문제 발생의 시작은 학교 졸업장이었다. 스탠포드 대학의 정식 명칭은 'Leland Stanford Junior University'이다 (릴랜드 스탠포드(Leland Stanford)씨가 어린 나이에 죽은 아들 주니어(Junior)를 기리기 위해서 새운 학교이다). 물론 이 이름을 쓰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고 모두 다 그냥 스탠포드 유니버시티(Stanford University)라고 하지만, 졸업장에는 이 정식 명칭이 찍혀 나온다. 그런데 내 영주권을 처리하던 이민국 직원은 이걸 전혀 모르고 시스템에 ‘릴랜드 스탠포드 주니어유니버시티(Leland Stanford Junior University)’를 입력하니까 “인가받지 않은 교육기관”이라고 나와서 나를 ‘교육 면에서 영주권을 받을 자격 미달’로 분류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비자 시스템이라는 게 참 웃겨서 이렇게 중간에 한 번 삐끗하면 수만개가 넘는 서류 맨 뒤로 다시 가서, 이 서류를 담당자가 다시 검토하려면 한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이건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은 아니고 들리는 소문이다). 분명 수천명이 넘는 스탠포드 졸업 외국인들이 영주권 신청을 했을 텐데 이 멍청한 이민국 직원은 일반 상식도 없었고, 그냥 인터넷 들어가서 검색하면 알 수 있는 내용을 그냥 지가 귀찮고 무식해서 넘어간 것이다. 이 직원한테는 내가 그냥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수만 명의 영주권 신청자 중 한 명이었지만, 그러면서 두 사람의 (나랑 내 부인) 인생에 아주 지대한 악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어이없는 일들이 있었다. 결국, 다 지난 일이고 현재 나는 미국에서 활발하게 투자를 하고 있고, 우리가 투자한 돈으로 많은 회사가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내 영주권 서류를 마무리해준 세 번째 이민국 직원도 첫 번째와 두 번째 직원만큼 멍청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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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홍 대표는 한국과 미국의 네트워크와 경험을 기반으로 초기 벤처 기업들을 발굴, 조언 및 투자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스트롱 벤처스의 공동대표이다. 또한, 창업가 커뮤니티의 베스트셀러 도서 ‘스타트업 바이블’과 ‘스타트업 바이블2’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어린 시절을 스페인에서 보냈으며 한국어, 영어 및 서반아어를 구사한다. 언젠가는 하와이에서 은퇴 후 서핑을 하거나, 프로 테니스 선수로 전향하려는 꿈을 20년째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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