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나 명동, 사람 많은 시내에서 한 번쯤은 마주치는 스타트업이 있다. 배터리를 들고 초록색 망토를 휘날리는 고릴라가 이들의 심볼 캐릭터. ‘충전 3분 OK’를 내건 마이쿤이 그 주인공이다.
배터리 충전 서비스 ‘만땅’에 이어 충전 장소 공유 SNS ‘플러거(Plugger)’를 출시한 마이쿤이 실리콘밸리 대표 액셀러레이터인 500스타트업에 합류하게 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어느 행사에서나 캡 모자에 초록 점퍼 조끼를 맞춰 입고 나타나는 정겨운 팀, 마이쿤이 500 스타트업이라니. 늘 옆집 살던 오빠가 서울 대학에 합격해 상경하는 것 같은 이상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비론치 2014 스타트업배틀 출신이기도 한 마이쿤의 최혁재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충전에 목마른 자들이여 모두 오라, 만땅에서 플러거까지
“만땅과 플러거는 비타민 서비스가 아니라 페인 킬러(Pain killer) 서비스입니다.”
맞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나가는 순간 우리는 짧지만 강한 고통을 느낀다. 배터리 상태가 빨간색으로 변하는 시점부터 불안은 시작되고, 마침내 휴대폰이 죽고 나면 좀 과장되게 말해 나도 세상 어딘가로부터 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분명한 강박증이지만 우리는 이미 스마트폰이 선사한 연결된 삶에 길들여져 있다.
이 불편의 빈 구멍을 찾아 홍대 앞 길거리에서 최혁재, 최혁준 두 형제가 배터리를 배달하기 시작한 것이 2012년 말이다. ‘3분 충전 OK’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용자의 배터리와 완충된 배터리를 교환해주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배터리 공유 서비스’로 알려지기도 했다.
‘낯섦’이 가장 큰 장벽이었다. 길거리에서 전단을 돌리거나, 깃발을 휘날리며 목이 터져라 서비스를 알렸다. 그렇게 시작한 만땅은 올해 마침내 10만 유료이용자를 돌파했다. 여전히 대표를 포함한 모든 팀원은 낮에는 사무실, 밖에는 거리에서 일한다. 한 매체가 이들을 ‘길 위의 출발’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마이쿤이 두 번째로 내놓은 서비스 ‘플러거'는 사용자의 500m 반경 이내의 충전이 가능한 카페, 휴대폰 대리점, 지하철역 등의 장소 정보를 공유해주는 서비스다. 플러거는 애초에 해외 진출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충전에 목말라 있는 사람에게 오아시스 같은 서비스’라는 점에서는 만땅과 같지만 진입 장벽을 낮추고 확장성을 넓힌 것이 특징이다.
“만땅은 유료 서비스인 데다 안드로이드 폰밖에 지원이 안 돼서 해외 진출을 하기엔 진입 장벽이 높았어요. 충전의 불편함을 없애자는 면에서는 만땅과 같지만, 아이폰 사용자도 흡수할 수 있는 무료 서비스라는 점에서 해외 진출에 더 유리합니다.”
출시 3개월째인 플러거의 성적은 16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는 등 좋은 편이다. 열 명의 직원이 직접 발품을 팔아 1만 건의 씨드(seed) 데이터를 만들었고, 사용자들이 직접 올린 장소 데이터만 2천 건이 넘었다.
현재 플러거의 사용자는 국내보다 해외에 더 많다. 가장 두드러진 곳은 멕시코다. 별다른 홍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다운로드가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친구의 배터리 잔량을 점검할 수 있는 부가 기능 덕분이다. 이를테면 휴대폰이 꺼졌다고 변명하는 애인의 실제 배터리 잔량을 확인해볼 수 있다. 프로모션 목적으로 만든 이 기능이 오히려 앱 다운로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멕시코를 포함한 동남아 지역에서는 신기한 앱이 있으면 내려받는 경우가 많아 어필할 수 있었다는 것이 최혁재 대표의 설명이다.
세계적 액셀러레이터 500 스타트업과의 첫 만남, 비론치 2014
플러거로 해외 진출을 위한 내실을 갖춘 마이쿤에게 필요한 것은 올라탈 로켓이었다. 그리고 비론치 2014에서 만난 500 스타트업과의 연을 계기로 거리의 스타트업, 마이쿤의 해외 진출기는 이제 막 그 첫 페이지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와이콤비네이터와 함께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액셀러레이터인 500 스타트업은 매년 4회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인 배치(Batch) 팀을 선발한다. 보통 10개 내외의 팀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비트윈의 VCNC, 비키, 슬라이드쉐어 등이 대표적인 500 스타트업 출신 기업이다. 마이쿤은 내년도 상반기 '배치 12'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됐다.
마이쿤을 발굴한 500 스타트업의 채종인(Tim Chae) 파트너는 선발된 스타트업을 바로 옆에서 도와주는 상주 창업가(EIR)다. 그는 얼마 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한국 스타트업을 실리콘밸리로 데려가는 김치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비 론치 스타트업배틀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후, 그는 20개 팀과 일일이 인터뷰하며 미국으로 데려갈 만한 팀을 물색했다. 그렇게 선택된 것이 마이쿤. 실리콘밸리로 가기 전 이들에게 가장 기대되는 것과 걱정되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저희 팀 다 같이 새벽같이 영어 학원에 출석하고 있어요(웃음). 영어가 제일 걱정입니다. 팀원 중 최대 4명이 미국으로 갈 예정인데, 현지에서 1년 이상 버틸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하지만 세계에서 모인 스타트업과 얼굴 맞대고 일할 수 있다는 게 저희에게는 정말 기대되는 일이에요.”
해외 진출에 대한 팀 내 불안감이나 두려움도 있었다. 실제 만땅이 회사의 주 수입원인 상태에서 다소 소홀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500 스타트업이 제시한 계약 조건을 마이쿤 실정에 맞게 조율할 때에는 팀 내에서 ‘무리수가 아닌가’하는 우려의 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최혁재 대표는 위축되지 않고 500 스타트업과 협상했다. 그는 마이쿤 팀과 서비스에 대한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사업을 하면서 얼마간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는 불안으로부터도 의연했다.
“솔직히 확신은 지금도 없어요. 처음부터 확신으로 일하지 않았어요. 만땅 서비스도 처음에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을 때 엄청나게 불안했죠. 하지만 스스로 평가했을 때 1년 5개월 정도 스타트업을 하며 좋은 성과들을 밟아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정도 수치를 확보하고 있고, 사용자에게 유용한 서비스를 만들어나간다면 언젠가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스마트폰부터 전기자동차까지, 세상 모든 충전의 아이콘 될 것
2015년 마이쿤의 목표 매출액은 7억이다. 올해 목표했던 금액이 3억이었던 것에 비해 2배 이상 상향 조정됐다.
내년 출시를 위한 웨어러블 장치를 위한 앱도 준비 중이다. 스마트워치나 구글글래스로 충전 장소에 대한 위치 정보를 알림받을 수 있게 할 예정이다. 향후 스마트폰을 뛰어넘어, 전기 자동차 충전소 정보까지 알려줄 수 있는 ‘충전 전문 스타트업’이 되는 것이 마이쿤의 최종 목적이다. 만땅 배터리 배송을 위한 물류 시스템도 갖추고 싶다.
어떻게 이렇게 큰일들을 다 이뤄낼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거리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이 못할 게 무엇이겠느냐고 답하고 싶다. 실제 플러거를 만들며 새로 꾸려진 5명의 개발팀 팀원들은 앱 출시 한 달을 앞두고 사무실에서 동거했다.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시간과 공간의 방’ 한구석에는 그 시절을 함께 했던 라꾸라꾸 침대가 구겨져 있다.
세계 시장이라고 얼마나 다르랴. 홍대 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만땅 서비스를 알렸듯, 마이쿤은 자신들만의 헝그리 정신과 일당백 정신으로 세계 시장에 부딪혀볼 것이다. 어찌됐건 이들의 다음 목표는 충전에 목마른 전 세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