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근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다양한 통찰들을 기반으로, 스타트업의 창업가들이 참고할 가치들을 찾아보고자 기획되었다. 제1편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그리고 스타트업 (1)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루키의 ‘독자'에 대한 생각
“독자를 염두에 둔다고 해도, 이를테면 기업에서 상품을 개발할 때처럼 시장 조사를 하고 소비자층을 분석하고 타깃을 구체적으로 상정하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내가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공의 독자’입니다. 그 사람은 나이도 직업도 성별도 없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있겠지만 그런 건 얼마든지 교환 가능합니다. 요컨대 딱히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예기입니다. 중요한 것. 교환 불가능한 것은 나와 그 사람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디서 어떤 상태로 이어져 있는지, 세세한 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참 저 아래 쪽 어두컴컴한 곳에서 나의 뿌리와 그 사람의 뿌리가 이어져 있다는 감촉입니다. 그것은 너무도 깊고 어두운 곳이라서 잠깐 내려가 상황을 살펴본다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야기라는 시스템을 통해 우리는 그것이 이어졌다고 감지합니다. 양분이 오고 간다고 실감합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고객의 잠재적인 니즈를 분석하기 위해 흔히 페르소나(Persona) 분석이라는 것을 사용한다. 페르소나 분석은 특정한 집단 군을 대표할 수 있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해 고객의 니즈를 분석해 나가는 과정인데, 하루키 역시 ‘가공의 독자’를 상정한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하지만 그에게 직업이나 성별과 같은 요소들은 얼마든지 교환 가능한 것들이다. 하루키에게 중요한 것은, '독자와 내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키는 이를 '한참 저 아래 쪽 어두컴컴한 곳에서 나의 뿌리와 그 사람의 뿌리가 이어져 있다는 감촉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가 창조해내는 ‘이야기’를 통해 그와 독자들은 그 시스템을 감지하며 양분이 오간다고 실감한다.
하루키가 ‘가상의 독자’를 대하는 자세의 특별함은 고객의 니즈를 심층적이고 다각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에 있는 것은 아닐까. 보편적인 사용자들의 니즈가 특정 사용자 유형에서는 뜻밖의 패턴을 보이기도 하듯이, 정량적인 분석은 전체적인 맥락(Context)에서의 고객 니즈에 대응하지 못한다.
하루키의 ‘글로벌 프런티어'에 대한 생각
“또 하나의 요인은 내가 ‘일본인 작가’라는 사실을 테크니컬한 의미에서 일단 보류해두고 처음부터 미국인 작가와 똑같은 링에서 뛰어 보기로 결심했던 것에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내가 직접 번역자를 찾아 개인적으로 번역을 의뢰하고 그 번역본을 직접 체크하고, 그렇게 영어로 번역한 원고를 에이전트에게 가져가 출판사에 판매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에이전트도 출판사도 나를 미국인 작가와 똑같은 스탠스 (stance)로 다룰 수 있습니다. 즉 외국어로 소설을 쓰는 외국인 작가가 아니라 미국 작가들과 똑같은 그라운드에 서서 그들과 똑같은 규칙으로 플레이하는 것입니다. 우선 그런 시스템을 내 쪽에서 분명하게 설정했습니다···현실 사회의 리얼리티와 스토리의 리얼리티는 인간의 영혼 속에서(혹은 무의식 속에서) 피할 수 없이 그 근저에서 상통하는 것입니다. 어떤 시대에도 대변혁이 일어나 사회의 리얼리티가 크게 교체될 때, 그것은 스토리의 리얼리티 교체를, 마치 반증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요구합니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
하루키의 작품들은 미국의 뉴욕으로 부터 시작해, 러시아 및 동유럽을 넘어 서유럽으로 퍼져나갔다. 1990년 중반, 러시아의 베스트셀러 10위 목록의 절반은 하루키의 책들로 채워진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베를린의 동서를 가르는 장벽이 극적으로 붕괴하면서 독일이 통합 국가가 된 얼마 뒤 부터, 독일에서도 서서히 하루키의 소설이 읽히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하루키의 소설이 단순히 미국 시장 로컬라이징에 성공해, 뉴욕의 거대 출판사의 유통 및 마케팅에 기반을 둬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했다는 이유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하루키는 이를 사회의 기반 및 구조의 급격한 변동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품고 있던 리얼리티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개변을 요구하며 새로운 현실에 대한 메타포(metaphor), 즉 스토리를 원하는 데에 있었다고 분석한다. 글로벌 진출을 앞둔 스타트업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로컬라이징 및 현지화, 적절한 파트너사 선정 등의 절차는 진정한 ‘글로벌 프런티어’의 시작일뿐이다. 목표 시장에 대한 사회적, 역사적 성찰과 함께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흐름을 감지해 낼 ‘촉’이 필요하다.
하루키의 ‘경청'에 대한 생각
“그래서 나도 ‘아, 어제는 이 분이 의식적으로 자신을 수동 태세로 맞춰두셨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아마도 자기 자신을 죽이고, 자기 자신을 무(無)에 가깝게 해두고, 상대의 ‘본모습’을 조금이라도 자연스럽게 이른바 텍스트로서 있는 그대로 흡수하려고 하셨구나 하고. 내가 그걸 알아본 것은 나 역시 때때로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내 쪽의 기척을 아래로 가라앉히고 상대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수용하려고 합니다. 특히 인터뷰할 때가 그렇습니다. 철저히 집중해서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나 자신의 의식 흐름 같은 건 죽여버립니다. 그런 전환이 되지 않으면 정말로 진지하게 남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없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는 귀를 기울여 경청하는 데에 있다’는 말인데, 삼성가의 이건희 씨가 선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은 휘호도 이 ‘경청(傾聽)'이라고 한다. 경청에서 ‘청(聽·들을 청)’의 자해도 두 가지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귀(耳)가 으뜸(王)이며, 들을 때는 열 개(十)의 눈(目)을 움직여 하나(一)의 마음(心)을 주시하는 것처럼 들으라’라는 것과 ‘눈(目)과 귀(耳)와 마음(心)으로 들으면 상대방은 왕(王) 같은 대접을 받는다’라는 것이다.
하루키 역시 가와이 하야오 박사와의 만남의 경험을 통해 이와 같은 ‘경청’을 통한 진정한 의미의 소통에 대한 가치를 전한 바 있다. 하루키는 가와이 박사가 "내가 던진 공을 상대가 양손으로 단단히 받아 주었다, 속속들이 이해해줬다는 감촉이 설명이고 이론이고 없이, 내 쪽에서 생생하게 피드백되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 왕(王) 같은 대접을 받는 길은 다름 아닌, 마음으로 상대를 듣는다는 지혜는 깊이 새길만하다.
하루키가 생각하는 '의지와 육체의 상관관계'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정신의 ‘터프함’이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망설임을 헤쳐 나가고, 엄격한 비판 세례를 받고, 친한 사람에게 배반을 당하고, 생각지도 못한 실수를 하고, 어느 때는 자신감을 잃고 어느 때는 자신감이 지나쳐 실패하고, 아무튼 온갖 현실적인 장애를 맞닥뜨리면서도 그래도 어떻게든 소설이라는 것을 계속 쓰려고 하는 의지의 견고함입니다. 그리고 그 강고한 의지를 장기간에 걸쳐 지속시키려고 하면 아무래도 삶의 방식 그 자체의 퀄리티가 문제가 됩니다. 일단을 만전을 기하며 살아갈 것. ‘만전을 기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다시 말해 영혼을 담는 ‘틀’인 육체를 어느 정도 확립하고 그것을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게 나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많은 경우) 지겨울 만큼 질질 끄는 장기전입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육체를 잘 유지해 나가는 노력 없이 의지만을 혹은 영혼만을 전향적으로 강고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
권투보다는 종합격투기에 가까운, 클래식 바이올린보다는 힙합과 흡사한,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성공을 일구어 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침착성, 끈기(tenacity)라는 가치는 조금 더 복합적이고 전인적인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이는 하루키가 묘사하듯이 영혼을 담는 ‘틀’인 육체를 어느 정도 확립하고 그것을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 다시 말해 ‘만전을 기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하루키는 의지를 최대한 강고하게 할 것, 또한 동시에 그 의지의 본거지인 신체를 최대한 건강하게, 최대한 튼튼하게, 최대한 지장 없는 상태로 정비하고 유지하는 과정은 우리의 삶의 방식 그 자체의 퀄리티를 종합적으로 균형 있게 위로 끌어 올리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견실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거기서 창출되는 우리의 서비스와 제품의 퀄리티 또한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지금까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다양한 통찰들을 기반으로, 스타트업의 창업가들이 참고할 가치들을 2회에 걸쳐 살펴보았다. 부디 한국의 스타트업들에게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기사에 대한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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