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이 개봉 19일 만에 천만 영화에 등극했다. 과거 B급 장르 영화의 마니아들을 위한 소재로 각인되었던 ‘좀비’라는 소재를 기반으로 블록버스터적인 즐거움과 사회비판과 풍자라는 두 가지 토끼를 잡아낸 ‘부산행’에서 스타트업이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 필자는 ‘돼지의 왕’(1만9,798명), ‘사이비(2만2,366명) 등의 2만 명 남짓한 관객과 소통하며 변방에 머물러 있었지만, 스토리텔러로서 내공을 착실히 쌓아온 연상호 감독과 ‘부산행’의 도전적인 기획을 투자·배급한 투자 배급사 뉴(NEW)의 ‘촉’에 주목하고자 한다.
연상호 감독, 한국 사회의 행(行)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다
연상호 감독의 첫 번째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 <돼지의 왕>은 그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시선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사업 실패 이후, 충동적으로 아내를 살해하고, 15년 전 중학교 동창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돼지의 왕'은 사회 구성의 처절한 권력 구조와 ‘악’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돼지의 왕>으로 2011년 부산 국제 영화제 및 칸 영화제의 감독 주간에 초청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연상호 감독은 2013년 <사이비>라는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를 통해 돌아온다.
<사이비>는 시골 마을 사람들을 꼬드겨 보상금을 타내려는 사이비 장로와 또 다른 ‘악'인 주정뱅이와의 갈등 구도를 통해, “악이 과연 악을 고발할 수 있는가?”, 우리의 믿음의 실체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을 괴롭히는 영화이다. 다분히 이질적이고, 냉철한, 의미심장한 시선을 통해 우리의 속내의 나약함을 직시하는 연상호 감독의 연출은 <돼지의 왕>에서 한층 진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이비> 이후, 미스터리 스릴러물을 준비 중이던 연상호 감독은 과거 단편영화로 준비하던 중 실패했던 '서울역 좀비'라는 아이템을 장르 영화로 발전시켜 첫 번째 실사영화 '부산행'을 만들게 된다.
<돼지의 왕>과 <사이비>라는 영화를 통해, 사회와 인간의 내면을 향한 통렬한 통찰을 길러내어 온 연상호 감독의 시선은 초고속 열차인 KTX라는 공간적인 배경과 ‘부산행’이라는 탁월한 제목으로, 블록버스터 영화로서의 진화를 꿈꾸게 된다. 속도의 상징인 KTX를 좀비와 투쟁하는 핏빛 밀폐 공간으로 전환하고, ‘빨리빨리’를 모토로 고속성장해 온 한국이 봉착한 난감한 현실을 은유한다. 주인공 일행은 좀비들로부터 안전하다고 알려진 부산을 향하지만, 결국 부산이 안전하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외길로 달려가 목표를 성취한다 해도 우리는 언제까지나 ‘생존’의 문제로부터 해방될 수 없음을, 우리 한국 사회의 행(行)의 덧없음을 연상호 감독은 이야기하고 있다.
투자 배급사 NEW의 블록버스터와 휴머니즘
사실, 블록버스터와 ‘좀비’라는 조합은 한국 관객들에게 여전히 낯설다. 두 편의 독립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가 유일한 필모그래피인 연상호 감독의 기획과 시나리오에 대한 베팅은 영화 투자에 대한 오랜 경험과 철학이 회사의 문화로 존재하는 투자 배급사 NEW이기에 가능했다. NEW는 과거 <7번방의 선물>, <변호인>등의 프로젝트를 투자·배급하며 스토리텔링 및 캐릭터의 힘으로 천만 영화를 만들어 낸 경험이 있다. 최근 자체 제작 콘텐츠 <태양의 후예>로 중국 시장에서 또 한 번의 홈런을 날린 바 있다. <부산행>은 순 제작비 85억 원으로 할리우드의 좀비 영화에 비하면 저예산 영화 축에 속하지만, 블록버스터 영화로서의 볼거리를 만들어 낸 제작의 노하우 역시 훌륭하다. 부산행’의 배급사 NEW의 관계자는 “개봉 초기에는 주로 젊은 층이 극장을 많이 찾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호평과 입소문이 나면서 가족 단위 관객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부산행>이 단순히 여름철 극장가를 겨냥한 그럴싸한 좀비물에 그쳤다면, 이와 같은 확장성을 얻어내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부성애를 자극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에 소구할 수 있는 층위(Layer), KTX를 좀비와 투쟁하는 핏빛 밀폐 공간으로 전환하며 한국 사회를 풍자해는 층위, 블록버스터 영화로서의 미스터리 스릴러가 가질 수 있는 장르적 쾌감 등 다양한 층위들이 결합하며 스토리텔링의 입체성과 완성도를 성취해 나아갔다.
<부산행>과 스타트업
연상호 감독이 단편으로 준비하던 중 실패했던 '서울역 좀비'라는 아이템을 다시 갱생시키며, 블록버스터 영화로 성장시켜 천만 관객을 확보하는 과정은 새로운 서비스와 제품을 기획해 나가는 스타트업의 창업자들에게도 다양한 통찰을 던져 준다고 생각한다. <부산행>이 스토리텔링의 입체성과 완성도를 위해 성취한 다양한 층위들은 하루아침에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4~5년 동안 <돼지의 왕>, <사이비> 등 2편의 독립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를 연출하며 연상호 감독이 쌓아 온 사회와 인간의 내면을 향한 통렬한 통찰에 더하여, 투자 배급사 NEW의 영화 배급 노하우 및 블록버스터적 장르적 쾌감과 인간의 보편적 감수성에 호소하는 기획 방향 등이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얻어지게 된 성취다.
스타트업들은 자신이 새롭게 런칭한 제품의 성공과 실패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더욱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부적으로 축적되는 차별성과 고유한 가치(Intrinsic value)에 무게중심을 두며 액셀러레이터 혹은 투자자들과 함께 제품의 유통 및 마케팅, 제품의 확장 전략을 함께 고민하여 외부의 리소스들을 내부의 역량에 결합해 나아가는 기술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미지 출처: '부산행' 제공·배급 사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