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국내 벤처계를 놀라게 한 성공사례가 있었다. 바로 KT가 ‘엔써즈’라는 벤처기업을 450억 원의 기업가치로 평가하며 인수한 사례다. 엔써즈는 동영상 검색 전문 업체로, SW 업체에 대한 평가가 비교적 높지 않은 국내 벤처 투자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높은 기업가치를 기록했다. 약 반년이 지난 지금, 김길연 대표가 KT의 인수 이후 어떠한 길을 걷고 있는지, beSUCCESS에서 그를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 우리나라에서 벤처의 M&A를 보는 시선은 사실 약간 부정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M&A를 선택할 때에도 정말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하셨을 것 같은데요. 어떤 점이 가장 큰 요인이었나요?
우리나라 문화 자체가 하나의 직업이든, 회사든 자신이 책임지고 끝까지 가야 한다는 문화가 큽니다. 그런 것에 비해 M&A는 중간에 빠지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부정적인 정서가 기본적으로 깔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저는 M&A는 기본적으로 중간에 EXIT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기회라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벤처의 코스닥 상장이 굉장히 힘든 환경입니다. 통계자료에서도 알 수 있지만 벤처 기업을 시작해서 상장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거의 15년 정도 걸리죠. 1,000개의 벤처가 설립된다고 치면, 15년 동안 버틸 수 있는 기업은 거의 5% 정도일 겁니다. 주식 상장이라는 EXIT을 하기까지 창업가들에게, 또 투자자나 고객에게도 너무나 혹독한 시간인 거죠. 다양한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여러 가지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입니다.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위해서 서버를 마련하려고 알아보면 가장 저렴한 서버 한 대가 천만 원 가량입니다. 그렇게 열 대면? 어마어마한 금액이죠. 이렇게 벤처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원 자체가 제한되어 있다 보니 과감하게 도전하기가 어려워집니다. M&A를 통해서 자원의 한계가 조금이나마 풀리면, 더 큰 사업 기회도 고려해보고 아이디어 구상이 자유로워지죠.
마지막으로는 내부적으로 새로운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입니다. 보도 기사가 많이 나고, 많은 사람에게 이야기되는 게 처음에는 부끄럽고 민망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이제 선언을 한 거나 다름없는 겁니다. 기업과 기업 간의 약속을 한 거구요.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식의 동기부여가 됩니다. 또 창업가도 아닌 벤처의 다른 구성원들이 외부 시선도 있고 해서 더욱 벤처에서 오래 일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M&A는 그런 시점에 인식을 좀 더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 M&A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벤처에 오히려 다양한 사업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돌파구가 되어줄 수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엔써즈가 2007년 설립되었으니 지금까지 6여 년이 지난 건데,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떤 기업이든지 벤처는 차별성이 있어야 합니다. 디자인을 잘한다거나, 서비스로 1등이라거나, 시장을 선점했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구분되겠지만요. 저희는 우선 기술적으로 독보적인 입지에 서자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서비스 벤처는 성공 가능성이 모 아니면 도 일수 있는데, 기술 벤처는 라이센싱을 통해서 기본 매출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람이지요. 기술에 대한 차별성은 사실 사람에서 나오는 겁니다. 저와 거의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함께 한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처음부터 비즈니스는 절대 혼자서 못한다는 믿음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고민은 항상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어야 할까?’였습니다.
- 벤처에서 10년 넘게 함께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명확한 동기부여를 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군요?
그렇습니다. 비전을 공유하는 게 제일 먼저 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말로만 ‘성공하면 잘해줄게.’하는 게 아니라 그 비전이 실현되었을 때 구성원들에게 어떤 형태로 성과가 돌아가느냐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사실 목표가 실현되었을 때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할 분배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서로 합의해서 규칙을 정하고, 나중에 그 규칙은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약속을 하는 겁니다. M&A를 하든 어떤 형태로든 EXIT을 할 때 적용할 수 있는 성과 분배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기반으로 이 회사에 내가 꼭 있어야 하고, 어떤 식으로 내 몫을 해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도록 도왔습니다.
- 비전이 실현되었을 때 구성원들이 자신의 성과에 따라 공평하게 돌려받을 수 있도록 사전에 규칙을 정하신 거군요. 그 규칙이라는 건 스톡옵션과는 다른 형태인 건가요?
회사마다 다를 텐데, 일단 제가 생각했던 건 스톡옵션의 변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스톱옵션은 신주를 발행하는데 그렇게 되면 현실적으로 느낌이 안 와서 돌려받는다는 인식이 안 듭니다. 그런 것과 달리 예를 들자면 반기에 한 번씩 평가를 하는 거에요. 일한 기간과 그동안의 성과를 살펴서 A, B, C, D, E 형태로 점수를 부여하고, 나중에 그 축적된 결과를 고려해서 M&A나 상장되었을 때 배분하자는 식의 규칙을 정하는 겁니다.
대뜸 EXIT 한 이후에 ‘고생했으니까 A씨는 몇 %, B씨는 몇 %’ 하는 식으로 하거나, 창업할 당시에 적합한 사람이라 생각해서 지분을 굉장히 많이 배분했는데, 알고 보니 스타트업 체질이 아니거나 해서 나가게 되거나 하는 상황이 생기면 이후에 떠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런 규칙을 정했던 거고, 그 덕택인진 모르겠지만, 저희는 M&A 된 후에 떠난 분이 한 분도 없습니다. 오히려 좋은 분들을 더 많이 만났죠. 그런데 보통 스타트업들은 이런 부분을 잘 모릅니다. 국내에 관련 정보가 많이 공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투자자분들이나 외국 정보를 통해서 규칙을 정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 엔써즈가 지금은 빛나는 성과를 가지고 있지만, 10년 넘게 사업을 하시면서 큰 시련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그 시간 속에서 자신에게 변화가 온 걸 느끼시나요?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인생의 성공이든 실패든 모든 걸 즐겨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죠. 특히 고비가 찾아오면 그 고비 자체가 나한테는 기회니까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현금이 떨어지거나 법적인 문제가 생겨서 소송이 생기거나 하면 마음이 흔들릴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럴 때 이게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흔들리는 모습이 아닌, 중심을 잡고 고난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내부 조직원들의 신뢰도와 대표로서의 정체성이 강해질 수 있거든요.
창업을 시작하기 전까진 안 그랬는데, 이제는 저한테 찾아오는 모든 것이 기회이고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진 전혀 고려하지 않았는데, 문제가 발생함으로써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아낼 수 있었다는 식의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게 가장 큰 변화죠.
- 첫 벤처의 실패, 그 후 10여 년 간의 사업, 이례적인 규모의 M&A 등 엄청난 경험을 하셨잖아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 아니면 현재 창업을 하고 계신 분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선 인생의 모든 걸 즐겨야 한다는 걸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아까 말했든 고난도 행복도 즐겨야 합니다. 그렇게 인생의 모든 걸 즐기려면 운동을 해서 자신을 단련시켜야 합니다. 비단 육체적인 운동뿐 아니라 심리적인 운동이 필요해요. 저 역시도 매일 운동을 하고, 여건이 안되면 아침에 10분 정도라도 운동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심리적인 운동도 빠져서는 안 돼요. 보통의 사람들은 압박이 심하면 피하거나 근원을 해결해버리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사업에서 오는 압박은 그 두 가지 모두 선택할 수가 없어요. 피하면 고민이 더 커질 뿐이고 해결할 방법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압박에서도 버틸 수 있도록, 언제나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마음을 단련시켜야죠.
마지막으로는 역시 좋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함께 하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죠.
- 창업하기 위해서 시련도 기회로 만들 만큼 인생의 모든 것을 즐길 줄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몸과 마음의 운동을 게을리해선 안된다는 말씀이시군요. 마지막으로 대표님의 미래를 향한 비전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세상에 없는 걸 만들어내서 세상을 바꿔보고 싶습니다. 음성인식도 사실 말만 해도 모든 기능이 이뤄지는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했거든요. 이미지로 동영상을 검색한다는 것도 이전에는 없었던 기술이었고요. 저희가 가지고 있는 기술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 보고 싶다는 꿈을 계속 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