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시장, ‘억눌린 욕망’을 건드려야 열립니다”
2014년 11월 10일

“세계에서 화려한 속옷이 제일 잘 팔리는 곳이 중동입니다. 쇼핑몰에 들어가면 한국에서는 본 적도 없는 수 많은 화장품 브랜드가 깔려있어요. 코 성형 1위 국가는 이란이고요. 종교적 억압에 억눌린 자기 표현의 욕구, 중동 시장을 열려면 거길 들여다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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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해외개발사업부의 은종실 님

중동은 '글로벌 진출'을 생각할 때 1차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나라가 아니다. 멀기도 너무 멀고, 국내 스타트업은 아직 미국과 중국, 동남아시아라는 허들도 시원하게 뛰어넘어 본 적이 없다. 이 때문에 석유와 건설 분야를 빼면, 우리에게 중동 시장은 거진 대부분이 비밀로 부쳐져 있다. 여기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메신저 라인이다. 라인플러스(LINE+)에서 중동,터키 11개국을 담당하고 있는 은종실 담당자는 직접 발로 뛰며 낯선 중동 시장을 개척해왔다.

은종실 담당자는 홍콩 블룸버그사의 애널리스트, 골린해리스사의 브랜딩 마케터 시절을 거쳐 현재 라인플러스에서 해외사업 개발 업무를 맡고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인도, 프랑스, 홍콩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어 영어, 한국어, 불어, 중국어 등 총 4개 국어에 능통하다. 애널리스트로서의 분석 경험, 마케터로서의 브랜딩 경험이 현재 라인플러스의 업무에 큰 도움이 됐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중동 사회에서는 종교적 이유로 여성에게 수 많은 제재와 억압이 가해지고 있다. 잘 알고 있는 히잡(Hijab) 뿐만이 아니다. 여자는 운전을 할 수 없다. 심지어 스타벅스에는 남녀가 나란히 앉지 못하도록 가족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종교적 억압들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요. 중동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욕구를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온라인 활동에 엄청난 열정을 보입니다. 라인 같은 메신저나 컨텐츠 스타트업에게는 오히려 기회의 땅인 거죠.”

유투브 1위 시청 국가는 미국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이고, 스마트폰 보급률 1위 나라는 한국이 아닌 아랍에미리트다. 아랍에미리트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74%다. 우리 나라가 73%로 뒤를 잇고 있다.

이를 포착한 은종실 담당자는 라인을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닌 ‘억눌린 욕구를 분출하는 놀이터’로 내놓았다. 라인이 중동 시장에 내민 슬로건은 ‘Have fun onLINE’. 전략은 적중했다. 캐릭터 말풍선을 채우는 작은 댓글 이벤트는 5분 만에 열광적인 참여를 이끌어냈고, 사용자들이 직접 스티커를 만드는 이벤트에서는 히잡을 쓰고 축구를 하는 캐릭터가 등장했다.

중동 시장에서 너무 노골적인 종교적 아부는 금물이다. 코카콜라의 경우 이슬람 성지 ‘메카’라는 단어를 활용해 ‘메카콜라’로 개명하고 패기 넘치게 시장에 들어갔지만, 마신 후 뒤처리가 문제였다. ‘신성한 메카가 쓰레기통에 처박히다니’. 화가 난 현지인들의 보이콧 때문에 현재 중동 지역에서는 펩시콜라가 승기를 잡은 상태다.

은종실 담당자는 중동 지역에서는 종교적 성격을 담고 있지만 대놓고 종교적이지는 않은 똑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7월 라마단 기간 동안 스티커 이벤트를 진행했었어요. 종교적으로 굉장히 민감한 기간이기 때문에 금식이 끝나고 먹을 수 있는 음식, 입을 수 있는 옷과 같이 문화와 맞닿아 있지만 노골적이지 않은 요소를 집어넣어 스티커를 만들었죠. 동물 스티커는 피했고요. 또 라마단은 자기 죄를 뒤돌아보면서 자숙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스티커 5개를 보낼 때마다 1달러를 기부하는 이벤트도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성공적이었죠. 정말 사소한 것 같지만 그만큼 섬세한 종교적, 문화적 접근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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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단 기간 라인이 중동에 출시한 스티커

끊임없는 현지화 노력으로 현재 라인은 이집트에서 모바일 메신저 5위, 사우디아라비에서는 7위, 터키에서는 9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현지화와 마케팅은 결국 넉넉한 자본을 가진 라인플러스이기에 실현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인력도, 자본도 없는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딴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겠냐는 질문에 은종실 담당자는 ‘저희, 굉장히 스타트업처럼 일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저희 팀이 지금 충원이 되서 5명이예요. 처음에 3명이서 시작했죠. 스타트업만큼이나 열악하지 않나요? (웃음) 지금 일하고 있는 해외 파트너들도 지인 한 명 없는 낯선 땅에서 맨 땅에 헤딩하면서 만들어온 거예요. 성공적인 현지화는 단순히 자금만 충분하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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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 발굴은 물론 자료 조사 과정에서도 직접 발로 뛰었다. 히잡을 두르고 거리에 나가 행인에게 ‘핸드폰 좀 봐도 될까요’하고 묻기도 했다. 무슨 앱을 깔았는지 알기 위해서다. 여자 대학교에 선물 보따리를 들고 가서 학생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현지인들과 만나다 보면 한국인의 장점인 눈치와 육감 덕에 좋은 마케팅 아이디어를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라인플러스 사내 결제 라인도 상당히 간결하다. 새 아이디어가 나오면 보통 2주일 안에 모든 것이 실행된다. 해외 파트너와의 의사소통은 라인 메신저를 통해 즉각적으로 하고 있다.

라인의 전 세계 사용자 수는 지난 10월 기준 5억 6천 명을 기록했다. 성공적인 사업 확장으로 1년 새 직원도 3배가 넘게 늘어났다. 조직의 몸집이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한 것은, 라인플러스 내부가 여전히 벤처스러운 업무 과정과 태도를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라인 중동·터키 팀의 향후 목표는 무엇일까.

“라인은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라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포괄한 하나의 플랫폼이 되길 원해요. 중동과 터키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메신저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제대로 된 현지화를 해 나가야 하죠. 어설픈 현지화는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결국 실패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라인 중동·터키 팀도 내년부터는 좀 더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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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새롬 기자 (201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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