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은행 질서 깨부신 ‘렌딩클럽’, 9조 기업 가치의 비결
2014년 12월 22일

은행은 "날씨가 화창할 때 우산을 빌려 주고, 비가 올 때 우산을 빼앗아 간다"는 라는 말이 있다. 유동성이 감소하고 실물경제가 어려운 시기가 닥치면, 은행은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서민과 중소기업의 대출 비중을 줄이고 대기업의 대출 비중에 늘리는 경향을 비유한 말이다. 김영필 서울경제신문 기자는 '은행의 거짓말'이라는 그의 저서를 통해, "만약 은행이 당신에게 친절하다면 당신이 좋은 먹잇감이라는 뜻이고, 불친절하다면 더 이상 빼앗아 먹을 게 없다는 뜻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존 은행은 금융거래 당사자들의 중간 매개 기관, 혹은 플랫폼으로서의 그 경쟁력을 예금과 대출 마진에 의존한다. 화려한 빌딩의 자릿세와 직원들의 고액 연봉에 대한 은행의 부담은, 높은 대출 금리라는 형태로 고스란히 서민과 중소기업에게 전가된다.

이같은 전통적 은행의 악습에 도전하고, 은행을 혁신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최근 잇달아 뉴욕 증시에 상장되며 주목을 받고 있다. 모바일을 통해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대출사업을 하고 있는 온덱은 지난 17일, 뉴욕 증시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주가가 40% 상승하며 기염을 토했다.

한편, 미국 최대 개인 대 개인(P2P) 대출 업체 렌딩클럽은 지난 11일, 공모가 대비 56%오른 23.43달러로 뉴욕 증권거래소의 첫 거래를 마쳤다. 이번 글에서는 2007년 창업되어, 7년만에 상장 후 기업가치가 85억달러(약 9조 3559억원)으로 성장한 렌딩클럽의 성장 과정과 이를 적용해 한국의 스타트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기회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소액 대출 시장에서 기회를 찾다

2008년 전세계를 금융위기로 몰아갔던 리먼사태 이후로, 미국 은행권의 대출 심사가 까다로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은행권의 입장에서 수익성이 낮은 학자금 대출등 소매 영역의 금융 철수가 이어지자, 소액 대출이 필요한 개인들은 인터넷으로 몰리기 시작한다. 페이스북의 어플리케이션으로 시작하여, 2007년 시리즈A 펀딩을 받으며 렌딩클럽을 공동 창업한 피에르 오미디야르는 “은행권 신용대출의 고금리에 위화감을 느끼고 인터넷을 이용하고자 하는 수요를 위해 저리 융자를 고안해 냈다”고 말했다.

돈이 필요한 고객은 렌딩클럽의 웹페이지를 통해 대출 신청서를 작성한다. 렌딩클럽은 신청서들을 심사하여, 10% 정도 대출 가능한 대상을 선별하고 신용등급을 A부터 G까지 표시해 온라인 장터에서 올려 놓는다. 한편 개인 투자자들은 이와 같은 대출 신청 명단을 보고 25달러 단위로 분산 투자를 하게 된다. 대출금리는 연 6~10% 수준이며, 여유 자금을 은행보다 좀 더 높은 금리로 운용하고자 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주 고객이 된다고 한다. P2P금융은 증시시장의 영향이 거의 없고, 분산투자를 통해 위험관리가 가능하며 복리의 투자 효과를 발휘하여 올 해 들어서만 5조원이 넘는 대출금이 거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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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팅클럽의 연도별 대출 집행 금액

원동력
네트워크화된 군중의 힘, 혁신의 돌파구가 되다

동아일보의 고승연 기자는 지난 18일 "네트워크화된 군중… 비즈니스 新권력으로 전통 리더십에 도전장"이라는 기사를 통해, 미국의 사회적 기업 ‘퍼포스’의 제러미 하이먼즈 최고경영자(CEO)와 뉴욕 유대인 문화 커뮤니티센터인 ‘92번가Y’의 헨리 팀스 부대표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기고문을 통해 “권력의 본질적인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권력’과 ‘구권력’의 차이와 긴장관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항공의 이른바 ‘땅콩 리턴’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다수의 대중이 기존 권력을 위협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는 견해가 늘고 있다. P2P(개인 간 공유 시스템) 금융 플랫폼인 ‘렌딩클럽’ 마찬가지이다. 자금을 빌린 대출자는 구권력 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관, 은행과 작별할 수 있다. 이처럼, 대중 혹은 군중은 20세기를 지배했던 구권력 중개인들의 모순을 혁신하며,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도전을 공유하고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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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오미디야르의 사회적 기업가 정신과 한국의 관치 금융

렌딩클럽의 공동 창업자이자, 개인대개인 (P2P) 대출 업계에 1,200만 달러를 투자한 바 있는 피에르 오미디야르는 세계 최대의 온라인 경매 업체인 이베이(eBay)의 창업자 이기도 했다. 지난 2004년, 오미디 야르는 이베이의 이사회 의장직을 제외한 모든 직위에서 사퇴하고 그의 아내와 함께 개인 재산을 사회적기업, 소셜벤처, 비영리조직 등을 아우르는 일명 ‘임팩트 비즈니스’분야의 성장을 돕는  ‘Omidyar Network(오미디야르 네트워크)’를 설립한바 있다.

‘오미디야르 네트워크’는 진정한 혁신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맞춰 창의적인 솔루션을 기반으로, 자신의 조직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일어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오미디야르 네트워크의 ‘투자 모델’은, 각 조직이 다양한 사회적 임팩트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적절한 단계에 자본을 투자(지분 인수 및 대출 지원 등)하고 실제적인 경영 자문과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이들 조직과 그 임팩트의 확장을 꾀하는 것이다. 렌딩클럽의 뉴욕증시 상장은, 이와 같이 오미디야르가 지난 10년동안 쌓아온 오미디야르 네트워크의 구체적인 결실이라 볼 수 있겠다.

이에 반해, 한국의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다.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규제 일변도의 인터넷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에 참석한 윤종록 차관은 산업규제가 국내 인터넷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지 않도록 규제 개선에 나설 것임을 시사한 바 있지만, 한국의 금융산업계는 여전히 액티브X, 공인인증서, 관치금융이라는 3가지 단어로 정리되는 갈라파고스로 묘사될 뿐이다. 전자신문의 신화수기자는 한국 금융산업 경쟁력이 말라위, 우간다 급이라는 세계경제포럼(WEF) 평가를 인용하며, 이와같은 시대의 흐름에는 둔감한 채 금융사업 허가권을 쥔 정부만을 믿고 있는 금융산업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소비자 지향의 2.0시장을 넘어 가치가 중심이 되는 현대 3.0시장에서 사회혁신가, 체인지메이커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마켓 3.0은 마케팅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필립 코틀러가 주창한 개념이기도 한데, 그야말로 ‘가치 주도’ 시대의 부상을 의미한다. 3.0기업들은 더 이상 사람들을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이성과 감성과 영혼을 지닌 전인적 존재로 바라본다. 3.0 시대의 전인적 소비자들은 이제 네트워크를 이루어, 사회의 혁신의 동력이 된다. 렌딩클럽이라는 개인대개인(P2P) 대출 중계서비스의 뉴욕 증시 상장의 이면에는 이와 같은 3.0 시대의 소비자들에 대한 통찰과 오미디야르라는 창업자가 10년동안 쌓아온 '임팩트 비지니스' 분야의 토양이 있었음을 잊지 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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