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소비 자체가 능동적인 온디맨드(on-demand)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어요.
방송을 제 시간에 기다렸다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시간에 틀어서 본다는 것이죠. 한류 공연도 마찬가지입니다."
팬의, 팬을 위한, 팬에 의한 크라우드팝은 이런 바탕 위에서 탄생했다.
한류 공연계의 킥스타터, 크라우드팝
케이팝유나이티드의 리처드 주 대표는 2007년, 국내 요거트 브랜드 레드망고를 스탠포드와 구글, 야후 사옥 등 실리콘밸리 심장에 진출시킨 장본인이다. 아이템은 바뀌었지만, 핵심은 그대로다. 그는 현재 요거트가 아닌 한류 공연을 해외 팬들에게 '선주문, 후 개최' 방식으로 선사하고 있다.
한류를 다루기 때문에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라우드팝(Krowdpop)은 '크라우드소싱(Crowd Sourcing)'과 '온디맨드(On-demand)'라는 거대 소비 트렌드 변화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플랫폼이다.
"컨텐츠 소비 자체가 수동적 성격에서 적극적인 온디맨드(on-demand, 수요 중심적)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컨텐츠를 봐야 한다는 말이죠. B2C에서 C2B라는 큰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공연 컨텐츠 역시 마찬가지죠.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공연을 개최하는 크라우드팝이 탄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크라우드팝 내에서 세계의 한류 팬들은 직접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 개최를 위한 프로젝트를 만들고, 목표 금액을 모금한다. 목표금 달성에 성공하면 실제 해당 도시에서 공연이 개최된다. 킥스타터, 인디고고와 원리가 같다.
기존의 좋은 플랫폼이 그렇듯 크라우드팝 역시 플랫폼과 컨텐츠 제공자, 컨텐츠 소비자 3자가 모두 이득을 보는 구조라고 리처드 주 대표는 설명한다.
먼저 컨텐츠 소비자인 팬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가수를 실물로 볼 기회를 얻는다. 또 티켓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데, 이러한 가격 절감은 자연스레 컨텐츠 제작자인 현지 공연 기획사의 사정과 연결된다.
프로모터(Promoter)라고 불리는 외국의 현지 공연 기획사의 경우, 한류 가수의 공연을 개최하고 싶어도 후에 떠안게 될 리스크가 너무 커서 함부로 나서지 않는다. 공연이 성공한다면야 아쉬울 것 없지만, 큰돈을 들여 공연을 열었는데 예상보다 티켓이 너무 안 팔린다면 손해는 그대로 공연 기획사의 몫이다. 설상가상 조금 잘 나간다 하는 한국 아이돌을 공연에 세우기 위해서는 수 억대의 섭외 비용이 든다. 부가적으로 코디네이터, 매니저, 스텝들까지 포함하면 한 그룹당 총 3~40명의 숙박과 비행기 값이 따라붙는다.
한류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국내 기획사들이 한 회 공연 당 부르는 가격은 끝없이 솟구치고 있다. 따라서 프로모터들에게 크라우드팝은 일종의 보증수표다. 수요가 확실한 공연만 선별적으로 개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이 성사될 경우 케이팝유나이티드가 취하는 수수료는 티켓 판매 가격의 10% 정도다. 여기에 혹시 공연이 잘 안 됐을 경우를 위해 20% 정도 부과되던 리스크 비용까지 생략되므로 팬들은 자연스레 저렴한 가격에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된다.
또 다른 컨텐츠 제작자인 가수와 연예 기획사 입장에서도 수요가 확보된 시장만 방문함으로써 효율적인 해외 진출을 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단독으로 해외 공연을 하기에는 인지도가 부족한 몇몇 가수들의 협업 공연도 가능하다.
지난 3월에는 크라우드팝을 통해 에일리, 박재범, 산이가 토론토 팬을 만났다. 섞이기 어려운 세 기획사 간 다리 역할을 크라우드팝이 적절하게 해낸 결과다. 리처드 주 대표에 따르면 향후 크라우드팝 내에서는 인디 가수의 해외 공연 역시 시도될 예정이다. 현재까지의 프로젝트 성공률은 80% 정도다.
케이팝유나이티드(KPOP UNITED)의 목표는 단순히 공연 티켓을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몇 년 째 위기론에 시달리고 있는 한류 비즈니스의 불씨를 살리고, 시장 자체를 넓혀야만 계속해서 사업을 키워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있어 한류 시장은 둥지와 같다.
"지금 중국이 한국의 유명한
작곡가, 스타일리스트들을
다 데려가고 있어요.
한국의 케이팝 시스템을
그대로 배우기 위해서죠."
리처드 주 대표는 한류 컨텐츠 비즈니스를 위협하는 제 1 요인으로 중국을 꼽는다. 그에 의하면, 샤오미가 삼성을 위협하듯 곧 문화 컨텐츠 분야에서도 '제 2의 샤오미 쇼크'가 올 가능성이 크다. 명품 스펙을 베낀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는 '중국신 혁신'이 컨텐츠 분야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 중국의 엔터테인먼트사들이 한국의 유명한 작곡가, 스타일리스트들을 다 데려가고 있어요. 한국의 케이팝 시스템을 그대로 배우기 위해서죠. 좋은 것을 똑같이 만들어서, 어떻게 하면 싸게 팔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중국 문화의 특징이예요. 컨텐츠가 핵심 경쟁력인 우리나라 입장에서 이건 국가적 손실과 위기라고도 볼 수 있는데, 모두 현재 한류가 잘되고 있으니까 손 놓고 보고만 있어요. 무서운 일입니다."
이에 따라 케이팝유나이티드는 한류 시장 파이 자체를 넓히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시도 중이다. 아이돌 컨텐츠라는 버티컬한 영역을 통해 크라우드팝에 진입한 해외 팬들이 더 다양한 분야의 한류 상품을 소비하고 누릴 수 있도록 유인하는 것이 주 전략이다.
그 노력 중 하나가 크라우드 포인트 시스템이다. 크라우드팝 내에서 티켓을 구매하면, 사용자는 크라우드 포인트라는 가상 화폐를 얻게 된다. 이 포인트를 가지고 한국 화장품을 비롯해 의류, 음식 등 다양한 한국 브랜드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크라우드팝은 모든 한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통합 플랫폼이 된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드림투코리아라는 여행 분야로도 사업을 넓혔다. 케이팝 가수를 좋아하는 팬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행 상품이다. 예를 들어, SM 가수의 해외 팬이라면 해당 기획사에 방문해 직접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춤을 배워볼 수있는 식이다. 모든 여정이 한류 팬 맞춤형으로 짜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케이팝유나이티드의 궁극적 목표는 한국의 모든 브랜드 상품을 위한 총체적 마케팅 플랫폼이 되는 것입니다. 그 시작을 케이팝으로 했지만, 이것도 수많은 한류 컨텐츠 중 하나일 뿐이에요. 중국에서는 이미 한국 문화 페스티벌이 개최되고 있어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때문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 한국 치킨 브랜드부터, 화장품, 의류 등 모든 산업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죠. 거기서 가수와 음악이 빠질 수 없고요. 이 모든 산업을 연결할 수 있는 다리가 케이팝유나이티드가 될 겁니다."
케이팝유나이티드는 오는 14, 15 양일간 개최되는 '비글로벌 서울 2015' 스타트업 배틀 최종 20팀으로도 선정됐다. 해외 시장을 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국내 업계에서도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대표와 팀의 해외 비즈니스 능력과 연 매출 10억 내외라는 성과가 이들의 강점이라면, 위태한 한류 열풍과 중국의 부상은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케이팝유나이티드가 비글로벌을 넘어서 세계 무대에서 컨텐츠 비즈니스의 승자가 될 수 있을지, 이들의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