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의 창업 성공 사례로 분석해보는 “미국에 진출해야만 하는 이유”
2015년 03월 20일

왜 미국이어야 할까? 뉴욕 KOTRA는 지난 1년간 뉴욕 내 한인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이라는 중장기적 목표를 가지고 여러 투자자와 스타트업 전문가, 성공한 창업인과 만나 창업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해 왔다. 하지만 쉽지 않은 도전에 시행착오를 겪고 있고 특히 최근 들어 '한국 스타트업이 왜 미국 시장에 진출해야 하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겹쳐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매진 중이었다.

MIT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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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Asia Business Conference

그러던 중, 이달 초 MIT 대학에서 ‘아시아 비즈니스 대회(Asia Business Conference)'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행사의 주제가 아시아 시장과 기업, 스타트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아시아 비즈니스 리더들이 대거 모이는 자리였기에 저 상기 질문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 스타트업이 왜 미국에 와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듣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더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아시아를 조명하는 자리에서 미국 진출의 당위성을 찾고자 했던 필자의 기대가 문제였을지 모른다. 국내에서 오신 주요 스타트업 관계자분들도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 진출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을 아끼셨다. 필자는 행사 참가를 통해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제가 국내 스타트업들의 미국진출을 어렵게 만든다고 결론지었다:

1) 미국보다 아시아 시장이 훨씬 크고 성공 가능성이 높다
2) 미국에 올 만한 국내 스타트업이 없다

아시아 > 미국?

MIT 행사에서는 동남아시아 시장만을 집중적으로 노리는 Rocket Internet 대표의 발표를 비롯해 창조경제 정책에 기반한 현 한국 스타트업 열기, 일본의 도쿄 2020디자인 혁신 계획, 막대한 물적, 질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국과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라는 시장에 모든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그렇다. 국내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시간적, 지리적, 문화적, 정서적으로 가까운 시장을 바로 옆에 두고 왜 태평양을 건너 도전을 한단 말인가? 모든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한다 해도, 국내 토종 스타트업이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미국보다 아시아가 높을 것이다. 일본에서 라인의 영향력, 한류의 영향력을 힘입어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겨냥한 여러 컨텐츠, 엔터테인먼트, 식품, 코스메틱 중심 사업 등 국내 스타트업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분명한 조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아시아를 뒤로하고 왜 한국의 스타트업이 어려운 미국에 진출해야 할까?

리그 (Big League) 이니까  

MIT에서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스타트업 경험이 있는 KOTRA 직장 동료 전현재 씨가 이 고민에 답을 해주었다. 아니, 오히려 질문을 함으로써 필자 스스로 답을 하게 만들었다: “Why do you think players come to the Big League?” (왜 선수들이 계속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습니까?)

얼마 전 야구선수 윤석민이 메이저리그 도전에 마침표를 찍고, 국내리그로 복귀하였다. 국내에서, 혹은 조금 더 큰 리그인 일본에서 최고의 선수로 추앙받으며 한 '건' 할 수 있었던 그가, 메이저리그에 도전했었다. 그것은 한국 혹은 아시아 리그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아서가 아니었다. 더 큰 금전적 이익이 보장되어서도 아니었다. 세계 최고 무대에 문을 두드리는 도전, 그 자체에 가치를 둔 선택이었다.

세계적 명성, 천문학적 수익은 사실 이 도전이 잘 풀렸을 때 나오는 byproduct, 즉, 부산물일 뿐이다. 혹자는 결과적으로 그의 도전이 실패로 끝났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에겐 최고의 리그에 도전장을 냈다는 그 시도 자체가 아시아에서 그 어떤 성공보다 값진 경험이었을 수도 있다. 또한, 그의 도전으로 추후 또 다른 국내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이 개척되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미국 무대에 도전한다는 것은 사실 상당히 무모한 일이다.  한국에서 자라 한국어를 구사하고 한국적인 시각과 정서를 가지고 있는 한국인이, 미국인의 감성을 읽고 미국 시장에 진입하여 성공한다? 정말 꿈 같은 시나리오이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비영어권의 외국인이 미국에 와서 큰 성공을 이루는 ‘스타트업 성공 신화’는 극히 드문 이야기이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와 뉴욕에는 지금도 수없이 많은 외국인이 the next big thing 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바로 이곳이 세계 최고만이 모이는 Big League이기 때문이다.

실제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키도 작고 실력도 없는 국내 농구선수에게 NBA에 무작정 진출하라고 달콤한 환상을 불어넣는 것만큼 무책임한 일도 없을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상식적인 선에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기업들이라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하겠다. 만약 그렇다면, 국내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객관적으로도 볼 때 실제 '성공'가능성도 있을까? 다음 데이터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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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잡지에 수록된 Kauffman Foundation 의 도표

2014년 10월 미국 Inc. 스타트업 전문잡지에 기고된 Kauffman Foundation의 조사 기록에 의하면, 아시안계가 설립한 스타트업이 비아시안계가 설립한 스타트업들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시안계가 설립자일 경우 더 큰 회사에 인수합병이 될 가능성이 타 그룹보다 월등하게 높고, 회사가 부도날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다는 결론이었다.

왜 그럴까? 조사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우선 아시안계는 평균적으로 높은 교육수준을 자랑한다. 또 work ethic이 실제 강하다. 끈기가 있고 열심히 한다. 이런 요소들은 신생기업이 초기에 살아남는 데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들은 미국적인 바탕에서 나왔을 것이다.

즉, 미국인으로서의 감성과 트렌드를 읽는 통찰력, 문화적 이해력, 창의력, 수평적 조직문화, 프로 정신 등 미국적인 가치에 기반한 장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같은 가설은 한국계 미국인들의 성공 사례를 통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최근 주위에서 자주 언급되는 몇몇 한인 창업인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다.

기업

한인 멤버

특이한

Oculus

Eugene Chung , Director

가상현실 게임 헤드셋, 2014년 Facebook 에 2조원에 매각

Noom

정세주, CEO

구글 출신 미국인 공동 파트너와 설립한 헬스케어 분야 스타트업, 최근 Series B 투자유치 성공

16 Handles

Solomon Choi, CEO

뉴욕 프로즌 요거트 분야 최고 시장 점유율, 최근 중동시장 진출

Eone Timepieces

김형수, CEO

시각장애인들과 일반인들을 위한 시계 제작, Kickstarter 통한 6억원 초기자금 유치 주목, 스토리 기반 마케팅 전략 성공적 평가

Mink

Grace Choi, CEO

화장품 3D Printer회사, 2014년 TechCrunch 최종 결승진출 기업

Peach and Lily

Alicia Yoon,  Cindy Kim

뉴욕 기반 회사, 아시아 화장품 미국 소비자에게 온라인 유통 판매

Coffee Meets Bagel

Soo, Arum, Dawoon Kang (한인 3자매)

소셜 데이팅 서비스 기업, 최근 미국 유명 창업 프로그램 Shark Tank 에서 Mark Cuban 의 300억 투자를 거절해 큰 주목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Oculus의 경우는 차치하더라도) 대부분의 한국인이 미국인의 감성으로 소비자 (consumer) 중심의 사업에서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애초부터 이스라엘처럼 하드 테크를 기반으로 실리콘 밸리의 끈끈한 유대인 네트워크를 활용한 투자유치나, 기술 기반의 큰 IT 기업에 매각/라이선스 되는 B2B 모델이 아니고서야, 미국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미국인을 잘 알아야 되겠다. 자신이 철저하게 미국인이 되어 이들의 감성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 적어도 그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젖어있는 미국인 사업 파트너가 필요하겠다.

요쿠스 (Jocoos) 사례

마지막으로, 뉴욕이라는 아직은 국내 스타트업들이 익숙하지 않은 척박한 시장에 정면승부를 하고 있는 한 국내 기업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국내에서는 이미 여러 창업 대회를 휩쓸고 중기청 TIPS 선정 기업으로 잘 알려진 요쿠스는, 티멕스소프트와 KT클라우드웨어 출신 개발자들이 설립한 고난도 동영상 전환 기술력을 바탕으로 오디션 플랫폼을 제공하는 오디션 앱 스타트업이다.

국내 모든 정부기관과 민간기관, 스타트업들이 오로지 실리콘 밸리만을 생각하고 진출할 때, 요쿠스 최창훈 대표는 뉴욕을 생각했다. 그의 철학은 분명하다. 자신의 사업에 가장 최적화된 도시와 환경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것. 미국의 주요 미디어 기업들과 브로드웨이 뮤지컬, 오페라, 영화, 각종 공연과 MTV 본사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집약된 곳이 바로 뉴욕이었다. DJ Moon(문동지)라는 현지 사업 파트너를 필두로 현지 여러 엔터테인먼트사의 문을 두드리며 사업을 진행 중이다. 요쿠스 사례를 보며 앞서 언급했던, 필자에게 회의감을 안겨주었던 두 전제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1) 미국보다 아시아 시장이 훨씬 크고 성공 가능성이 높다 (x)

- 아니다. 성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답이 바뀔 수 있다. 박지성의 EPL 진출이 있었기에 지금의 기성용이 있고, 박세리가 있었기에 세리 키즈들이 LPGA를 점령한 것처럼, 단순히 단기적 수익이라는 기준에서 아시아 시장을 노리고 미국 시장을 등한시한다면, Big League에서 활약하는 국내 선구자 스타트업은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성공을 결과론적 성과가 아닌 일련의 쉽지 않은 과정으로도 인식할 수 있는 통찰력이 있다면, 빅리그에 도전하는 (합당한) 스타트업들의 시도에 박수를 보내줘야 할 것이다. 빅리그에서 통하는 그 순간 아시아 시장뿐만이 아닌 미국과 세계를 휩쓰는 엄청난 결과물을 가져올 수도 있다.

2) 미국에 올 만한 국내 스타트업이 없다 (x)

- 역시 아니다. 자사의 업종이나 분야에 상관없이 실리콘 밸리 시장만 고집하기 때문에 그렇다. 패션, 소셜 미디어, 이커머스, 광고, 핀텍, 화장품, 엔터테인먼트 등 소비자 중심 사업은 뉴욕이 단연 최고이다. 생명공학, 제약, 헬스케어 등 바이오 분야는 보스톤이 적합하겠다. 무조건 실리콘 밸리로 향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업에 맞는 미국시장을 찾아 진출한다면 분명 미국에 올 수 있는 스타트업들은 존재한다. 그만한 실력과 배짱, 꿈이 있다면 말이다. 요쿠스처럼.

국내 스타트업들이여, Big League로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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