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기업들도 할 말 많다
2013년 08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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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잘 알고 내 블로그나 책을 읽으신 분들은 내가 대기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 것이다. 오늘은 대기업들의 편을 좀 들어보려고 한다: 솔직히 대기업 편드는건 아니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몇 마디 한다는게 맞을 듯. 오늘도 한 흥분하고 화난 창업가한테 한국의 대기업들이 벤처기업들을 죽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수백번 들었던 익숙한 이야기이다. 벤처기업이 좋은 서비스를 시작하니까 대기업에서는 이를 인수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들이 직접 똑같은 서비스를 시작해서 결국 유망한 벤처기업을 죽였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런것일까? 미국 대기업들은 무조건 직접 하지 않고 스타트업을 인수하고, 한국 대기업들은 무조건 스타트업을 인수하지 않고 자기들이 다 하려고 하는것일까? 겉으로만 보면 맞는 말이다. 숫자로 보면 한국에서는 작은 스타트업들이 대기업한테 인수되면서 exit하는 사례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미국, 특히 실리콘 밸리와는 너무나 대조된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분들이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미국의 M&A 시장이 활성화 되어 있는 이유는 대기업들의 마인드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아주 매력적이고 섹시한 스타트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미국의 대기업들의 문화는 다르겠지만 기본적인 생각이나 전략은 같다. 좋은 제품/서비스를 만들어서 고객을 만족시키면서 매출과 수익을 극대화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혁신이나 새로운 서비스는 작은 스타트업들이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서비스들이 시장에서 반응이 좋으면 대기업들의 레이다망에 걸린다. 돈이 될 서비스라는 판단이 서면 대기업 인력들은 여러가지 시장 조사와 내부 연구를 통해서 스타트업을 통째로 인수하는게 더 좋을지 아니면 본인들이 직접 하는게 더 좋을지 고민을 한다. 기술적 장벽도 별로 없고, 사용자들의 engagement도 아주 높지 않으면 주로 대기업에서는 무식하게 돈과 사람을 투입해서 서비스를 그대로 카피해 버린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 이런 경우가 한국 보다는 미국이 훨씬 더 많다 - 그냥 그 스타트업을 통째로 사버린다.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이유는 가지각색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유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기술적 장벽 - 대기업이 따라잡기 힘들거나 따라잡을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어려운 기술
2. 사용자 수 - 이미 tipping point를 넘었기 때문에 아무리 투자를 많이해도 사용자 수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경우
3. 사용자 engagement -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많은) 서비스를 너무 잘 만들어서 사용자들이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사용하는 서비스일 경우
4. Team - 실리콘 밸리에서 유행하는 acq-hire(acquire + hire). 제품은 별 볼일 없지만(좋은 경우도 많다) 팀원들, 특히 똑똑한 엔지니어들이 맘에 들 때

이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에서 대기업들이 작은 스타트업들을 인수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위에서 나열한 4가지를 다 가진 스타트업들은 거의 없고(있으면 말해주세요), 이 중 하나라도 보유한 매력적인 회사들이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자선단체도 아닌데 후진 스타트업들을 뭐하러 인수하는가? 본인들이 직접하면 더 빠르고 잘 할 자신이 있으면 직접 하는 거다. 근데 왜 이걸 욕하는지 잘 이해가 안간다. 언론에서는 마치 대기업들이 작은 회사들을 죽이는 것처럼 기사를 쓰는데 이건 정말 아닌거 같다. 물론, 대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돈과 영향력을 부당하게 사용해서  작은 회사들의 비즈니스를 방해하면 욕을 먹어도 싸지만 남의 서비스를 카피해서 더 빠르고, 좋고, 싸게 제공하는 건 욕을 먹어야 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소비자들한테는 좋은, 아주 칭찬 받을만한 일이다. 공산주의 국가도 아니고 자유경쟁 시장에서 남이 하는 서비스를 베끼는건 욕할 수 없다. 

얼마전에 Altos Ventures Han Kim 선배의 Snapchat 이야기를 읽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포인트를 정확히 잘 지적해 주셨다. 스냅챗이라는 LA 기반 스타트업의 소셜서비스가 10대들에게 불같이 퍼지는걸 감지한 Facebook은 'Poke'라는 똑같은 자체 서비스를 만들어서 출시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그만큼 스냅챗의 팀은 시장과 사용자들에게 사랑받는 서비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대단한 페이스북마저 스냅챗을 따라잡지 못했다. 솔직히 큰기업들이 자만하면서 스타트업을 그대로 카피했다가 재미를 별로 못 본 이런 사례들은 미국에 많다. 한국은 이와 약간 다른거 같다.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을 카피하면 훨씬 더 성공적인 서비스를 만드는데 그걸 가지고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죽인다고 욕하면 안된다. 애초에 그 스타트업의 서비스가 별로였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발생한거다. 시장에서 먹히지도 않는 허접한 제품을 만들어 놓고 대기업이 베껴서 더 잘하면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죽이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 이제 좀 질린다. 그렇게 억울하면 대기업이 따라해도 이길 자신이 있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만들어라. 그러면 큰 회사에서 인수할 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 회사는 만약에 실리콘 밸리에서 창업했다면 분명히 야후나 구글에서 인수했을텐데 한국에 있어서 exit을 못 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그럼 실리콘 밸리로 가서 야후나 구글한테 팔아보라고 말해보고 싶다. 그럴 자신 없으면 그냥 닥치고 좋은 제품 만드는데 집중해라. 한국의 M&A 시장이 활성화 되려면 대기업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하는게 아니라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섹시한 스타트업들이 많이 생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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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홍 대표는 한국과 미국의 네트워크와 경험을 기반으로 초기 벤처 기업들을 발굴, 조언 및 투자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스트롱 벤처스의 공동대표이다. 또한, 창업가 커뮤니티의 베스트셀러 도서 ‘스타트업 바이블’과 ‘스타트업 바이블2’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어린 시절을 스페인에서 보냈으며 한국어, 영어 및 서반아어를 구사한다. 언젠가는 하와이에서 은퇴 후 서핑을 하거나, 프로 테니스 선수로 전향하려는 꿈을 20년째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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