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대작 MORPG C9을 만들었던 핵심 인력들이 웹젠(NHN게임스)을 퇴사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유충길 PD님을 만나뵈었고, 말씀을 들어보니 회사와는 얘기가 다 끝났고 퇴직 프로세스를 밟고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모바일 세상에는 훨씬 더 큰 시장이 존재하는데, 모바일에서 최초로, 최고로 평가 받는 RPG를 만들어보고 싶으시다고. 그리고, 당시 게임업계는 모두 간단한 게임들 위주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대작 RPG를 빨리 만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씀이었습니다. 모바일 게임도 과거 PC 온라인 게임에서 그랬듯이 간단한 퍼즐류, 캐주얼게임으로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더 헤비해지는 게임층이 생길 것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많은 모바일 게임들을 검토하고 있었지만, 대작 RPG를 준비하는 팀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팀 구성을 했는지 여쭤봤고,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C9의 PD였던 유충길님, 클라이언트 팀장이었던 김정현님, 서버 팀장이었던 김재영님, 캐릭터 팀장이었던 김성환님, 그리고 웹젠 내 다른 프로젝트의 배경팀장이었던 남기영님이 공동창업을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속으로 'C9을 만든 핵심 멤버들이 나오신다면 무조건 묻지마 투자를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첫번째 미팅을 마쳤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지인분들을 통해 공동창업자분들을 reference check했고, 실제 저 분들이 C9을 만드시고 운영하신 분들이 맞다고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C9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간단히 부연 설명을 하면, 액션성이 뛰어난 RPG로 2009년 대한민국게임대상에서 대상을 비롯해 사운드, 그래픽, 캐릭터, 커뮤니티상 5관왕을 휩쓸었던 명작이었습니다. 물론, 사업적으로 대박이 난 게임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잘 만든 게임이었습니다. 그런 게임을 만들고 운영을 해본 팀이라면 더 이상 확인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2번째 미팅을 잡았고 그 자리에서 투자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이 합의되었고, 멤버들이 퇴직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법적으로 퇴직이 처리된 이후 저희 케이큐브 관리팀에서 귀찮은 법인 설립 과정을 지원해줬고, '핀콘'이라는 법인이 설립되자마자 바로 투자 계약서를 날인하고 투자도 집행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스토리는 여러분들이 아시는 스토리입니다. iOS에서는 밀리언아서를 제치고 최고 매출 1위를 차지했고, 안드로이드에서는 최고 매출 5위권을 한달째 유지하고 있습니다. 게임업계에 계신 분들은 이 정도 순위면 어느 정도 매출이 나는 지 유추하실 수 있으실텐데, 어떻게 보면 대박이 났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가, 게임의 life cycle이 태생적으로 긴 RPG이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고요.
여기까지만 읽어보면 투자해서 성공한 스토리일뿐 왜 교과서에 실려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그 얘기는 지금부터 해보겠습니다.
우선, 핀콘은 실력이 출중하면 기회를 잡고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사실 핀콘의 공동창업자들은 소위 말하는 학벌이 뛰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학벌은 고려요소가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모든 멤버가 10년 이상의 게임 개발경력을 보유하고 있고,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을 받으신 분들이기에 바로 투자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핀콘은 시장을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보여줬습니다. 투자 검토 당시 유충길 대표님이 계속 말씀하셨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모바일에서 최초의 대작 3D RPG를 만들어서 출시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게임은 장르별로 선점효과가 분명히 존재하기에 첫번째로 출시하는 것에 대해서 큰 의미를 부여하셨고, "대작 RPG를 만들 수 있는 팀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 제대로 준비하는 팀이 없어요. 저희가 한 6개월 죽어라 만들면 가장 빨리 출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후에도 종종 제게 "혹시 업계에서 대작 RPG가 나온다는 얘기 못 들으셨나요?"를 문의하시곤 했고, 출시 일정 관련해서 자주 논의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유충길 대표님은 게임의 Key Success Factor를 경험적으로 알고 계셨던 것이죠. (물론, 핀콘의 '헬로히어로'와 같은 퀄러티 높은 대작 RPG는 두 번째, 세번째, 아니 그 이후에 나왔어도 잘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첫번째이기 때문에 덕을 본 것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핀콘은 집중을 하는 것이 얼만큼 중요한지를 보여줬습니다. 처음에 투자 금액을 논의할 때 3억 5천만원만 달라고 하시길래 제가 그래도 대작 RPG이고, 게임이라는 것은 항상 일정이 늘어지기 마련인데 (저 게임 투자 많이 해봤습니다. 일정 지연은 항상 있는 일이더라고요) 그것으로 충분하겠냐고, 더 투자해드릴 의향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단칼에 거절하셨습니다. 유충길 대표님의 말씀이 너무 인상적이라서 기억이 또렷이 납니다.
"3억 5천만원이면, 저희가 지금 잡은 개발일정에서 2~3개월 정도의 버퍼를 둔 것이예요. 그 이상 여유가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멤버들은 대부분 나이도 많고, 가정도 있고 한데 배수의 진을 치고 정말 올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차기작 같은 것은 생각도 안 해요. 이번 게임으로 성공할 것이고, 그럴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핀콘팀은 정말로 미친듯이 달렸습니다. 라꾸라꾸 침대를 사무실에 사놓고 월요일에 출근해서 금요일에 퇴근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고, 개발에만 집중했습니다. 게임업계에도 종종 네트워킹을 하는 모임들도 있었고, 크고 작은 컨퍼런스들도 있었지만 핀콘은 그런 곳을 가지 않고 게임을 만드는데에만 집중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정말 놀랍게도 처음에 계획했던 개발일정을 거의 맞췄습니다. 그리고 출시해서 유저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요. 유충길 대표님이 또 이런 저런 말씀 주셨는데 기억 나는 것 몇 가지 적어봅니다.
"스타트업은 절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쉽지 않은 길인데, 정말 전부를 다 걸고 해야죠."
"제가 지금 그 모임에 가서 뭐하겠어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 개발이고, 저희가 목표한 출시 일정 안에 최고의 퀄러티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죠. 그리고 게임은 유저들이 선택해주는 것이고. 유저들이 만족할만한 게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