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Lab Startup Story]회사가 설립되기까지
2013년 09월 11일

본 글의 10%는 극화적 효과를 위하여 과장, 허위된 면이 있다만, 거의 대부분 내 경험에 기초하여 작성되었다. 이 글은 2010년 2월부터, 2010년 6월까지. 내가 처음으로 어떻게 회사를 설립하게되었는지, 그 과정은 어떠했는지 한 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2010년 2월은 내가 회사를 설립하기로 마음먹은 때이고, 2010년 6월은 내가 외부활동을 할 만큼 회사가 안정화단계에 접어든 때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함에 따라 그 단계단계에 익혀야되는 기술이 있듯이, 사업이란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한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축복받았다고 생각하는 점이 한 가지 있다. 돈이 없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절박했다는 점이다. 대기업 부장정도가 회사 나와서 창업해서 더 잘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때에 내 경험은, 대기업 기획팀에서의 경험과 합쳐서, 큰 회사는 작은 회사를 결코 이겨낼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정확히는, 빠르고 간결하고 엉망진창인 회사가 KPI와 규정이 복잡하고 잘 정돈된 회사를 이겨낼 수 있다는 ‘감각’을 얻었다고 하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만약에 애시당초 몇천만원이나 몇억원을 펀딩받고 시작했다면, 결코 깨달을 수 없었던 경험들이다.

지금은 창업이라는게, 스타트업이라는게 널리 퍼졌지만, 2010년 초만해도 ‘회사를 세운다’ 라는건 먼 이야기였다. 무슨 인프라가 있지도 않았다.


 

1. 귀가 얇아 창업을 하다

내가 아마 회사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내가 P공대를 졸업했기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과정에 대해 상당히 확신한다. P공대라는 곳도 그렇거니와, 특히 내 주변 지인들은 트렌드와는 너무나도 먼, 갖가지 오덕질만 하던 인간들이 반인지라 (내 주변에서 가장 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아마 나였지 않을까), 나도 스펙이라던가, 취업이라거나 하는 것과는 담을 쌓고 만화책이나 게임에 파묻혀 지냈다. 그래서 애시당초 취업의 ㅊ자도 모른채 마음껏 공부하고싶은걸 공부하고, 연구하고싶은걸 연구하고, 개판 5분전인 학점을 만들어놓고서는 3중전공했다고 나름 위안을 얻으며 졸업했다. 사실 입학성적은 P공대에서 몇등이었는데, 졸업할때즈음엔 평균 4점대를 넘나드는 컴퓨터공학과나 산공과 학점과 더불어, 2점대인 교양학점과 수학과 학점을 받고 졸업했다. 내가 인문계열이었기때문에 수학과 학점은 바닥을 깔 수 밖에 없었고, 난 오기로 내가 이기나 수학과가 이기나 끝까지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난 졌다.

그 뒤, 몇 년을 붙잡고 K대학과 S모 대학에서 책상 하나를 얻어 미시경제학 논문을 실컷 썼었다. 그리고 경영학 박사 유학을 준비중, 내 스스로가 내 논문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아이덴티티는 아카데미아가 아니라 인더스트리에 있었다. 그 당시에 적당히 경영학 박사를 갔다가 돌아와서 교수자리를 하는 것도 나름의 의미는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내 자아는 그게 적성이 아니였었던 모양이다.

몇 년동안 했던 경영, 경제학을 관두고서는 작은 회사에서 코딩을했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 짤렸다. 일에 집중을 안한다라던가 뭐 그런 이유였는데, 사실 내부적으로는 회사 저 상부에서의 권력싸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그래서 졸지간에 백수가 되었는데, 사실은 옛 룸메이트가 일하는 학원에 같이 가서 일할까 생각을 했었다 (그 학원이 후에 현재의 Knowre가 된다). 하지만 옆에서 누가 뽐뿌질을 열심히 했는데, 그 당시 H모 투자증권 애널리스트였던 서울대 01학번 컴공과 최모군이 열심히 아이폰 앱 산업과 관련된 자료를 마구 퍼주는 것이었다. ‘야 너도 얼른 아이폰 앱이나 만들어라’ 라고 열심히 뽐뿌를 주니, 얇은 내 팔랑귀가 넘어간 것이었다.

사실 아무렇게나 넘어간 것은 아니고, 이미 계산해둔 점이 몇 가지 있긴 했다. 무엇보다 내가 다녔던 회사의 사장보다 내가 사장을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최소한 권력싸움은 안할테니 말이다). 둘째로는 그 동안 다녔던 회사들이 어떻게 돌아가고있는지 머릿 속에 열심히 넣어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쨌거나, 난 회사를 세우고 아이폰 앱을 만들어 보기로 한다.

사실 난 아이폰도 없었다. 내가 당시 쓰고 있던 폰은 노키아 폰. 아이폰을 사는건 돈이 없으니 최대한 미루고, 맥북부터 구입했다. 당시 최저사양의 흰둥이. 약 백만원 가량이다. 그리고 사무실은 그 당시 내가 전세 살던 서울대입구역 4번출구의 H원룸. 이게 내가 세운 첫번째 회사였다. 그렇게 단 돈 백만원에 창업을 하게 되었다. 대단한 꿈이있었다기보단, 당장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한 생계형 창업이라고 하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요즘이야 창업이니 뭐니 하면 도와주는 기관도, 설명해주는 기관도, 찾아가서 조언을 구할데도 많겠지만 2010년 봄에 그런게 있을리 없었다. 사실,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도 내 주변에 회사를 세운 사람이 없었으니 조언을 구할데도 없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개발지식을 습득하는 것. 당시에 교보문고를 가서 막 나온 아이폰 앱 개발에 대한 책 한 권을 산 다음 하루에 한 챕터씩 공부했다. 사실 내 개발 능력은 아주 나쁜 편은 아니었던지, 일주일만에 책 한권을 떼고, 그 다음 책을 한 권 더 사서 하루만에 떼었다.

앱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회사를 세우는 실무적 작업들을 병행했다. 즉, 낮에는 실무적인 일을 주로하고 관공서등이 닫히는 밤에는 개발을 주로 했다. 몇 분들은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물으시는데, 내 대답은 간단하다. 이틀에 한 번 자면 된다. 뭐 하루이틀해본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하던일이고, 후에 S대학에서 연구할때도 꽤 자주 썼던 방법이다. 문제에 부딪힐때는, 선척적 능력과는 상관없이, 이틀에 한 번 자면 거의 모든게 해결된다.

회사 이름은 ‘쉬프트원’ 이었다. 이 회사명이 생긴 이유는 후배와의 MSN대화때문이었다.

” 야 나 회사 세운다. 이름 뭘로 할까 ”

” ? ”

” 물음표라.. 쉬프트 슬래쉬냐? 아냐 그건 좀 길고.. 느낌표가 낫겠다. Shift One”

 

키보드에서 쉬프트+ 1 을 누르면 느낌표가 나온다는 이유로 30초만에 회사 이름이 지어졌다. 그 다음은 회사 로고를 만드는 작업. 다니던 미술학원 선생님한테 좀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프로그래밍에서 Shift 를 뜻하는 기호는 << 인데, 여기에다가 ! 을 붙여서 적당히 회사 로고를 만들었다. 역시 약 30분간의 날림 작업이었다. 회사 로고가 내 밥 먹여주는것은 아니다.

그리고 집 앞 KT전화국에서 전화를 한 대 들여놓았다. 그리고 복합기를 G모 마켓에서 무한잉크 개조된 것을 하나 구입하였다.

난 당시 회사라면 당연히 팩스가 있어야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달에 몇 번 쓸 지도 모르는 팩스를 위해서 전화선 두개를 설치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팩스번호와 전화번호가 같게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다. 즉, 누군가가 팩스를 보내고자 내게 전화를 하면, 난 전화선을 빼고 팩스 선을 꼽는다. 그리고 팩스를 수신한 다음 전화선을 다시 꼽고 팩스를 잘 받았다고 다시 전화를 했다. 지금 빵빵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있는 창업가들이 보면 어이없겠지만, 생계형 창업가인 나는 그렇게 문제들을 해결해갔다.

본격적으로 앱을 만들기 전, 앱을 어떻게 만들고 검수를 어떻게 받고 어떻게 아이튠에 뿌리는지 경험을 쌓기 위하여 ‘체험 데뷔전’ 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아이템은,

‘달마도’ 였다.

아, 나름 진지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앱을 켜서 달마도를 보면 신비의 오리엔탈 피라미드 파워가 내 몸안에 들어와 무병통치를 하게 만든다는 앱이었으니까.

참으로 쪽팔리지만 아직까지도 인터넷에 자료가 남아있다 (바로가기, 망할 정보화시대…… )

2

 

구글 이미지 검색에서 달마도라고 검색한 결과의 이미지를 랜덤하게 화면에 뿌려준다. 이게 끝이었다. 아, 달마도 저장 기능도 있었던가, 가격도 99달러였던가. 회사 이름 등록도 ‘큰기 스튜디오였던가’. 가격 바꾸는 버튼도 여러 번 눌러보고, 바꾸고 했는데 0.99 달러였을때는 다섯개인가 팔렸던 기억이 난다. 이 버튼 저 버튼 눌러보고는 앱 마켓에서 내렸고, 그 뒤에도 어차피 사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친구들 보여주기 위하여 마켓에 올렸다가 내렸다가 했었다 (그 와중에 미국지역에서는 가끔씩 사는 사람이 나타나곤 했다. 대체 왜…).

여기까지가 회사를 설립하고 약 이십일정도 지났을 때였다. 이젠 본격적으로 뭔가를 만들어볼 차례였다. 아이템을 찾아야했다.

 

2. 만들어야할까.

‘소비자에게 필요한 앱이 무엇입니까’에 대한 질문이 던져졌을때, 내가 다녔던 대기업에선 이렇게 했다. IDG라던가 모니터그룹이라던가 하는데에 몇천만원짜리 계정을 사고, 컨설팅업체를 지정하고, 몇천만원짜리 의뢰를 하고, 한 달 후에 결과보고서를 받는다.

아마 돈이 많으면 이렇게 할 것이다. 왜냐면, 돈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돈을 쓰는 쪽으로 머리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주 다행히도, 정말로, 나는 굉장히 운이 좋았다. 당연히도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뽑아낼 수 있었다. 돈이 있었다면 나도 전문가니 하는 사람들에게 용역을 주고, 도움이 되지 않는 보고서를 받았을 것이다.

동기 한 녀석을 내 방에서 재워주면서 간단한 브레인스토밍을 통하여 오십두개의 아이템 리스트를 뽑아내고, 말이 안되는것을 지웠다. 그리고,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2호선은 순환선이다. 서울을 뱅글뱅글 돌았다.

계속 지하철을 타면서 아이폰을 가진 사람들에게 폰을 빌려서 휴대폰의 바탕화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집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아이템을 사용하는지 경향성을 보았다. 이렇게 현장을 돌아다닐때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경험은 ‘감각’이다. 마켓 메트릭도 나름대로의 의의도 있지만, 이런식으로 현장을 부대끼다보면 책상 앞에 앉아서 숫자로 점철된 증권회사리포트나, 앱스토어랭킹을 보면서 분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직관적인 깨달음을 얻는다. 당시 증권회사에서 날아드는 정보에는 팔굽혀펴기 앱이 광고로 몇 억원을 벌었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빼곡했지만, 지하철을 뒤진 나는 다른 결론을 얻었다.

키워드는 ‘여성’이였다. 남자들은 주로 게임을 하고있고, 나름 만족하고 잘 쓰고 있었지만, 오히려 아이폰은 여성들이 많이 가지고 있었고, 역시 비슷하게 게임만 실컷 다운로드를 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한 번 다운받고 안쓰는 무료 앱만 잔뜩이었다. 아마 개발자가 주로 남성이었기에 남자들용 앱만 잔뜩 나오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마켓에서 ‘여성용 앱’ 칸은 비어있었다. 여기에 뭔가를 채워넣으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것을 컨설팅업계에 의뢰를 했으면 몇천만원은 들었을 것이다. 위와 같은 것을 FGI테스트로 돌렸다고해도 최소한 몇백은 족히 들었을 것이고, Biased되지는 않나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입구에서 타서, 서울대입구로 돌아오는 지하철안에서 단 하루만에 아이폰 마켓에 대한 모든 조사를 끝낼 수 있었다. 돈이 없다는 것은 정말로 축복이었다. 물론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아이폰 좀 보여주세요’ 라고 말하는게 엄청 쪽팔리는 일이긴 했지만, ‘생계형 창업가’인 나는 어떻게든지 식비를 벌어야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먹고 살기 위해서 뭐든지 할 기세가 아니였을까싶다.

이젠, 여자가 어디에 돈을 쓰는지를 알아야했다. 역시 통계청 사이트에 가서 뒤지거나, 여기저기 자료통계를 볼 수 도 있었지만 그런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

교보문고 강남점은 머리 아픈 모든 것은 해결하는 상당히 간편한 장소이다. 난 교보문고에 가서 여자들이 어느 서가에 머물러있는지 살펴보았다. 한 시간안에 답은 나왔다. ‘화장’과 ‘다이어트’.

화장은 내가 건드릴 수 없으니, 건드릴 쪽은 다이어트였다. 앱스토어에서 살펴보니 몇 개가 나오긴 나오는데 퀄리티가 썩 좋은 편은 아니였다. 해야할 아이템은 다이어트로 정했다. 그리고 제품의 핵심 키는 DB라고 내 나름대로 정했다. 기존의 앱보다 오류가 적고, DB를 제대로 갖춰서 제품을 출시하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일단 내가 코딩을 할 동안, DB를 입력하는 것은 XML로 형식만 정하고, 후배에게 알바를 시켰다. 인터넷 사이트있는 정보를 긁어서 XML프로그램을 통하여 입력시키게 하였다. 몇 천 개정도 입력하는데에 내 기억에 30만원정도 주고 시킨것 같은데, 나는 별로 많은 일이 아닐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후배는 팔을 혹사해서 한동안 팔을 제대로 못 쓸 정도였다. 그리고 거의 입력을 다 했을때에 그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 이거 복사 붙여넣기 해도 되네요 ㅠㅠ

 

좌충우돌의 시기, 지금 생각해보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난 그 후배에게 안타까움과 고마움의 의미로 아이폰 하나를 사줬다.

그렇게해서, 내가 만든 최초의 제대로된 앱이 마켓에 풀렸다.

삽질

3. 릴리즈, 7개의 나라에서 팔리다

제품이 릴리즈되고 두 주가 흘렀다. 당시 나는 노루라는 이름의 하얀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있었다. 첫 리포트는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단 일곱줄. 개당 700원꼴 잡으면 하루 벌이 4900원. 어쨌거나 수익에 맞춰서 먹고 살아야했다. 다행히 모아둔 돈은 좀 있었고, 이걸로 그래도 몇 달은 버텨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버는 돈에서 고양이 사료값과 화장실 모래값을 뺐다. 여차저차 계산해보니, 하루에 식비를 4000원 잡으면 먹고 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면 하루 두끼 먹는다고 계산했을때에 한 끼에 2000원. 식비를 2000원안으로 줄이면 되겠다 싶었다.

서울대 앞 내가 살던 원룸 뒤에 GS슈퍼마켓이 있었는데,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그 마켓에는 780원짜리 햇반이 있었다. CJ에서 나온 햇반이 천오백원쯤 했지만 농협을 거친 그 햇반은 무려 780원이라는 감사한 가격이었다. 780원 햇반에 계란 150원~200원을 추가하고, 야채를 좀 더 추가하면 2000원 안에서 식비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건강식을 먹었고, 덕분에 몸도 건강해졌다.

한동안 그렇게 살다가, 리포트를 다시 봤다.

애플 앱스토어 리포트의 일곱 줄은 일곱개 팔렸다는 것이 아니라 일곱 나라에서 팔렸다는 말이었다.

말이 안되던 상황의 연속이었다.

 

4. 최악의 제품으로 앱스토어 1위를 하다

막 만든 제품이 디자인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버그도 없을 리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큰 버그는 입력오류가 아닐까 싶다. 사용자가 직접 데이터를 입력한다는 당시엔 획기적인(?) 기능이 있었는데, 문제는 당시에 난 XML escape ( 꺽쇠를 입력하면 오류가 나는기능 ) 에 대한 개념도 없던 시기였다.

당시에 나는 고객제일주의의 기치안에 상당히 웃기고 진지한 고객대응을 했다. 즉, 앱의 문제에 대하여 고객은 앱 내에 있는 이메일 기능을 통하여 나한테 이메일을 줄 수 있는데, 난 그 이메일을 받고 실제로 그 고객이 있는 곳에 찾아가서 디버깅을 했다. 전국은 커버 못하지만, 서울권과 서울 근교까지는 직접 찾아갔다. 아마 국내에서 천원짜리 앱팔면서 버그가 나면 고객한테 찾아가서 사죄하고 커피사드리고 그 자리에서 디버깅 해서 고쳐드린 인간은 나밖에 없을 게다. 그러면서 꺽쇠만 입력하면 데이타가 엉망이 되는 고객을 발견했고, XML Escape라는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제품은 그렇게 수정되어갔다. 제품을 쓰는 사람들끼리는 이 앱 개발자가 열심히 한다더란 이야기가 돌았고, 정말 최악인 제품은 조금씩 나아져갔다.

초반에 제품이 얼마나 엉망이었냐고 물으신다면, 단연 최악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7000개나 되는 DB가 소팅도 없이, 검색 기능도 없이 그냥 있었고, 다음 버젼에서는 소팅이 되었고, 그 다음엔 검색이 되었고, 그 다음엔 사용자가 직접 입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제품 릴리즈 약 3주 후에는 그나마 ‘조금 사용 가능한’ 제품이 되었다.

모든게 최악이었지만, 그 중에서 최악은 디자인이였다. 개발과 경영은 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했지만 디자인은 어쩔 수 없었다. 기능들이 조금 정상화가 된 후, 난 디자인을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포샵을 사용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일러스트레이터를 쓸 줄 아는 것도 아니였다. 서울대 앞에는 야매를 컨셉으로 잡은 미술학원 하나가 있는데, 그 학원 선생님께 치맥과 앱 디자인을 바꾸자는 딜을 했고, 다행히도 먹혔다. 이왕 하는거 명함 디자인도 같이 했다. 디자이너 고용해서 몇십만원주고 몇주간 해야할 일이, 단 2시간과 치맥값 2만원으로 해결되었다.

이렇게 버티고 버티고 있었다. 이 와중이 이 앱은 계속 팔려나갔고, 급기야 앱스토어 1위를 하게되는 만행을 저지른다. 수많은 버그와 야바위급 디자인과 함께.

 

5. 안티에게 외주를 주다

고객과 개발자가 일치가 되는 제품이 있고, 고객과 개발자가 따로 노는 제품이 있다. 지금 하는 프로젝트라면 고객이 나 자신이기때문에 내가 편하고 좋은 제품 만들면 그만이지만, 다이어트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난 다이어트를 해본 적이 없었다.

다이어트앱에서 중요한 기능은 무엇일까. 난 첫번째로 웬만한 음식을 싹 담을 수 있는 DB를 생각했다. 거기까진 맞았다.

앞서 말했듯이, 앱 내에는 개발회사에게 바로 이메일을 쏠 수 있는 기능이 들어가있었다. 사실 아이폰 개발책에 예시가 있어서 예시따라한다고 한 번 넣어본 기능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이 기능덕분에 굉장히 빠른 수정과 기능추가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기능덕분에 난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가장 수정요청이 많이 들어온 것은 ‘비밀번호’였다. 메일이 없었다면 죽었다 깨나도 몰랐을 기능이다. 여성에겐 비밀번호 기능이 절실했다. 여성들끼리는 휴대폰을 서로 바꿔서 무슨 앱이 있나 한 번씩 해보곤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수많은 ‘비밀번호 기능’요청이 쏟아졌다. 이 기능은 곧 추가되었다.

의외로 들어온 수정요청도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했던 만화가 ㄱ님의 문하생이 선생님이 쓰시는데 불편하답니다 라고 메일이 왔는데, 몸무게 입력이 두자리까지밖에 안된다는 것이었다. 난 몸무게가 두자리이고, 주변 사람도 두자리이였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몸무게가 세자리이다.

그 외에는 메모장 기능이라던가, 배경화면을 예쁜 여자로 바꾸어서 의욕을 증진시킬 수 있게 도와달라는 메일도 상당수 있었다.

이런게 요즘 말하는 린 스타트업의 필요성이 아닐까 싶다.

물론, 기능과 디자인이 최악은 벗어났지만- 그리고 또 앱스토어 1위를 했지만-, 그렇다고해서 제품이 제대로 된 제품이라는것은 아니다. 개판 1분전에서 개판 5분전으로 바뀌었다고 해야할까.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나 수십통의 안티메일이 쌓여있었다.

여느 아침처럼 내 욕이 한가득 담긴 메일을 읽으면서 모닝커피를 때리고 있는데, 범상치 않은 메일이 도착했다. 내용은 여타 다른 안티메일이지만,

메일이 길었다.

이 분은 상당히 레벨높은 지적질을 하고 있었다. 앱이 유용한데, 자신의 성질을 건드려서 분노가 폭발한 듯 했다. 다른 사람들은 ‘앱 넘 성의없네요 님 제대로좀 하셈’ 정도의 메일을 보냈다면, 이 분은 얼라인 안맞는것에서부터 폰트, 색깔까지 앱의 모든 것에대해서 맘에 안들어하며 꼬치꼬치 꼰대처럼 지적질을 했다. 이 사람이다 싶었다.

난 일주일 후 그 분을 만났고, 유학파 디자이너이신 이 분께 70만원에 앱 디자인을 처음부터 다시 맡겼다.

앱은 조금 더 나은 디자인을 갖추었다.

여담이지만, 앱과 연결되는 이메일 계정은 회사의 홍보팀 계정과, 개발팀 계정과, 고객대응 팀이 각기 따로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계정은 나에게 포워딩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게 상식 이하였고, 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갔다.

 

6. 돈도 떼이고...

앱 개발 외주도 했다. 당시 아이폰 앱 커뮤니티에서는 ‘XX개발해주세요’ 라는 글만 잔뜩이었는데, 난 이걸론 안되겠다 싶어서 내가 직접 광고를 하기로했다. 레퍼런스를 넣고, 어디까지 가능한지 적어놨다.

그래서 패션쪽의 개발외주를 맡기도했기도했다. 그리고 당연히 누구나 하는 경험이지만, 돈을 떼이기도 했었다. 돈을 떼인곳은 ‘한국 전자 정보 통신 산업 진흥회’ 아래의 누군가였는데 (직원이 아니라 이쪽도 계약관계인듯 하다), 정부쪽이니까 믿을만하다고 해서 일을 해주었지만, 계약서도 안쓰고 미루고, 일을 실컷 부탁하더니 마지막까지 스펙을 변경하고, 말 그대로 배째라는 식으로 나온적이있었다.

괘씸하기도했지만, 곰곰히 왜 내가 이런 상황에 빠졌을까, 그리고 저 사람은 왜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이 사람도 아마도 처음부터 작정하고 사기칠 생각은 없었지 않을까.

이 사람은 컨설팅이라던가 강연이라던가 하는 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었다. 당시 아이폰이니 SNS이니 하는게 갑자기 널리 퍼졌고, 책상 앞에만 앉아있던 40-50대 대기업 부장님들과 정부 관계자는 이런것을 강의하는데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러다보니 당연하게 ‘전문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겐 대목철이었다.다. 나에게 돈을 떼먹은 사람이 스스로 말하기를, 아이폰덕분에 아이폰 개발자가 아니라 아이폰 개발자의 말을 듣고 산업이 어떻게 변할 것이라고 정부에 가서 말하는 사업이 더 잘된다고 했다. 직접 한 말을 옮긴다면, “요즘 무슨 비지니스가 최곤줄 알아요? 스마트폰 컨퍼런스가 최고비지니스에요. 적당히 대강 둘러대면 정부에서 와서 돈을 마구 낸다니까요”

내 기억에는 아마 한국 전자전을 대비했다던가, 아니면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정말 길다) 쪽에 강의가 있어서 잘보일려고 뭔가 앱을 만들려했다가 자기도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까 잠적을 한 거 같은데,내 가장 큰 잘못은 이러한 사람과 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낌새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손을 떼는게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말로 사업하는 전문가와는 최대한 얽히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이 때의 경험과 그 외의 경험으로 쓴 글이 http://jdlab.org/wp/?p=1 이다.

 

7. 울면 해결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회사가 설립된지 네달정도가 지나자, 여기저기에서 사고를 치면서 수익은 안정화 단계에 올랐다. 잘먹고 잘사는 회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회사의 기틀’이 형성되던 시기, 비지니스가 뭔지를 깨달은 시기,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는 대기업과 어떻게 승부하느냐에 대한 자신감을 쌓은 시기이기도 했다.

사업을 하면서 이렇게 했을때에 경쟁사가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렇게 했을때 경쟁자가 이렇게 치고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전략컨설팅에서 수백장 보고서를 보고 논리적결과를 도출해내면 벤쳐캐피탈들은 좋아하겠지만, 개인적 의견으로는 그게 답은 아닌거같다.

철저히 개인적 사견이라는 전제하에 내가 내린 답을 말하자면,

이틀에 자고 운동화가 헤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이와 비슷한 대답으로, 코딩이 안된다고 나에게 물으면 내 대답은 한결같다.

울면 해결된다.

인문계열 나와서 대학와서 사인이 미분된다는걸 깨달은 지진아인지라, 대학 1학년 때 수학과목에서 애를 먹었는데, 몇일동안 씨름하면서 이해가 안가는 페이지도 신기하게도 울고난 뒤엔 해결되었다. 나름 머릿속을 refresh시키는 효과가 있기도 하거나와, 마음이 다시 차분해지면 그제서야 내가 놓쳤던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 경험상, 코딩도 그랬다. 까만건 글자고 하얀건 배경인 논문가지고 코딩하는것도, 답답함에 우는 날은 지능지수 +50 버프를 받는 효과가 생긴다.

이 비지니스를 하면서 대기업이 똑같이 하면 어떻게 하느냐, 라는 대답에 내 대답도 그렇다. 사실, 대기업보다 못할 바에야 그냥 대기업취직하는게 낫다. 소비자 후생의 측면에서 대기업이 나으면 대기업이 시장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이기는 편이 우리편이면 좋으니, 대기업 들어가면 나도 좋고 소비자도 좋고 대기업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솔직히 더 까놓고 말하자면,

대기업보다 못하기 힘들다.

작은회사에서 하루만에 해치울 일을 대기업에가면 두 주, 세 주 씩 걸린다. 내 경험상 700원이면 될 시장조사에 몇천만원 써야되는게 대기업이다. 과정과 절차 또한 중요하기때문이다.. 느리고 복잡해서 좋은 일이 있다. 예를들면 통신이나 마케팅과 같은 일, 유통과 같은 일, 휴대폰 개발, 공공 SI개발등등은 대기업이 훨씬 잘한다. 이런 일들은 그냥 대기업에 맡겨두면 된다.

근데 웬만해선 대기업보다 못하기 힘든 일도 있다. 걸핏하면 상황이 급변하는 일, 일주일이 멀다하고 제품을 엎어야하는 일, 암중 모색을 해야하는 일은 몸집이 가벼운 작은 회사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업계에서는 대기업이 들어온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솔직히 규정과 규제에 쉽사리 움직일 수 없는 대기업보다 일 못하기 쉽지 않다.

손자병법에는 지형을 여섯 가지로 나눈다. 그 중에 작은 회사에게 맞는 구절은 아마 다음 구절일 것이다.

險形者(험형자) : 험형에서는

我先居之(아선거지) : 이편이 먼저 선점했으면

必居高陽以待敵(필거고양이대적) : 반드시 높고 양지바른 곳을 점거하고 적의 공격을 기다린다.

若敵先居之(야적선거지) : 만약 적이 먼저 점령한 경우에는

引而去之(인이거지) : 철수해 떠나야 하며

勿從也(물종야) :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 대기업이나 작은회사나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한다음에, 후발주자에게 ‘내가 침바른 일이니 너희들은 하지마시오’라는 것은 후생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들다.때문에 사업의 아이템을 선정해야한다면, 개인적으로 대기업이 쉽게 들어올 수 없는 아이템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템중에서 해자를 쉽게 팔 수 있는 아이템들이 있다. 이런 아이템들은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다 (예를들면 네트웍이펙트가 상당해서 대기업이 들어오면 마케팅만 대신 해주는 일) .

특히 산업이 격변할때는 작은회사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포지션이 된다.-by 보통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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